▲ 지난 18일 전당대회에서 연설하는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 대권을 향한 그의 레이스가 본격 시작됐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우선 당 지지율이 여전히 바닥을 기고 있는 상황에서 당장 지방선거가 코앞에 닥쳤다. 또 집권당 수장이라지만 대권주자로서 그의 지지율은 야당 주자들에 비해 턱없이 낮다. 여기에 당내 다른 주자들과의 ‘의무 방어전’도 남아 있다. 불안한 선두를 달리고 있는 셈이다. 그가 수많은 도전과 난관을 극복하고 대권의 결승점에 설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당의장으로서 DY가 부여받은 첫 임무이자 대선 관문은 5·31 지방선거다. 여기서 승리하면 대선주자로서 입지는 강화되겠지만 참패할 경우 대권행보에 치명상을 입게 된다. 그래서 전당대회 이전에 일부 참모들은 DY에게 ‘당의장직을 GT에게 양보하고 곧바로 대권을 준비하라’는 주문도 했었다. 하지만 그는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여당 지지도가 최악인 상황을 감안하면 지방선거에서 ‘완승’이 아니더라도 ‘선전’ 수준이면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당내의 여론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바닥에 붙어 있는 지지도를 일으켜세워야 한다.
DY는 당의장 취임 직후 한나라당의 ‘심장’이라 할 대구를 방문하며 한나라당과의 각을 날카롭게 세웠다. 긴장도를 높여 전열을 정비하겠다는 의도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정국의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양극화 해소를 위한 민생행보에도 열심이다. DY는 지난 경선과정에서 “간판과 중심을 다시 세워서 한나라당과 예각을 세우면 전통적 지지층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를 행동으로 옮기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여론은 아직 그를 주목하지 않고 있다. 전당대회 이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열린우리당 지지도는 오히려 하락했다. 전당대회를 계기로 지지율 5~10%를 끌어올리려던 당초의 계획은 일단 빗나간 것이다. 열린우리당이 앓고 있는 ‘병세’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당내에서 고건 전 총리와의 연대 문제가 계속 거론되는 것도 낮은 지지도와 무관치 않다. 고 전 총리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명박 서울시장과 함께 뚜렷한 2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DY에게 고 전 총리는 ‘기회’인 동시에 ‘위협’이라는 의미를 함께 갖고 있다.
DY는 경선과정에서 GT의 ‘양심세력 대연합론’에 반대하며 ‘선(先)자강론’을 주장했다. 열린우리당이 중심을 먼저 강화해 향후 전개될 세력 간 연대에서 주도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복잡한 속내들이 숨어 있다. DY의 한 핵심참모는 ‘연대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DY는 민주개혁세력, 평화세력, 미래세력의 연대를 주장한다. 이들 세력은 병렬적인 개념이 아니라 입체적인 개념이다. 기본적으로 반(反)한나라당 세력 결집이라는 점에서 GT가 주장하는 범양심세력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문제는 순서다. DY가 말하는 연대는 당을 강화한 이후의 일이다.”
GT계로 분류되는 한 초선의원의 설명을 들어보면 DY와 GT가 주장하는 연대론의 본질적인 차이가 드러난다. 그는 “강금실 전 법무장관의 영입을 추진하면서 GT는 기득권을 버리겠다고 말했지만 DY는 최고위원직을 주겠다고 제의했다. 즉 GT는 동등한 입장에서 연합하자는 것이고 DY는 자기 밑으로 들어오라는 것이다. DY가 고 전 총리에게도 기득권을 주장한다면 연대는 생각보다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고 전 총리를 계속 외면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당 지지율이 계속 바닥권을 맴돌고 지방선거 승리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당내에서 고 전 총리와의 연대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커질 수밖에 없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한사연) 관계자는 “현재 열린우리당 지지층 내에서는 ‘외부인사 영입론’이 높은 지지를 얻고 있는 상황”이라며 “구체적으로는 고건 전 총리가 주요 대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특히 지방선거에서 참패할 경우 책임론이 대두되면서 ‘외부인사 영입론’은 더욱 힘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덧붙였다.
한사연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열린우리당이 차기 대선에서 정권을 재창출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후보로는 안 되므로 고건 전 총리를 영입해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한다는 응답이 52.4%에 달했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당내에서는 고 전 총리를 대선 후보로 옹립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고 전 총리의 정치적 외곽단체를 자임하는 ‘한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의 이용휘 위원장은 “여당 현역 의원 가운데 7~8명가량이 한미준이 추진중인 신당에 가입하겠다는 의사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DY로서는 ‘고건 대안론’은 받아들일 수는 없는 안이다. DY의 한 참모는 “현 시점에서 ‘고건 대안론’은 열린우리당을 고 전 총리에 갖다 바치자는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이는 당내에서도 결코 동의를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김혁규 최고위원은 이와 관련해 “고 전 총리는 대권 후보로 공천하겠다는 약속이 없다면 열린우리당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라며 “이 때문에 고 전 총리 영입은 당의 공론을 거쳐 공감대를 얻어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DY는 지난 2·18 전당대회에서 당의장에 당선됐지만 이것으로 당내 도전이 끝난 것도 아니다. 중도파로 분류되는 수도권의 한 재선 의원은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지만 5월 지방선거와 7월로 예정된 미니 총선급 재선거에서 승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당 지지도에 변화가 없고 선거에서 패배한다면 지도부 교체 요구는 당연한 수순”이라고 내다봤다.
3선의 한 중진 의원도 “DY와 GT 외에도 당내에는 이들과 견줄 만한 잠재력을 가진 인물이 분명히 존재한다”며 “DY는 대선 후보로서 자질을 검증받는 과정에서 차례로 이들의 도전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즉 ‘대권주자’ DY의 시험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정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