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탈당 후 국민의당 창당을 이끌며 급격한 상승세를 보였던 안철수 의원이 주춤하는 사이 문재인 대표가 전열을 추스르며 반전에 성공했다. 하지만 향후 정계개편 과정 수많은 변수들이 도사리고 있어 승자를 예측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지난 2012년 대선 후보 자리를 놓고 맞붙은 이후 여러 차례 난타전을 주고받았던 문 대표와 안 의원의 승부는 이제부터다. 대선의 전초전 성격을 띠고 있는 총선을 앞두고 둘 중 하나는 죽는, ‘치킨게임’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은 까닭에서다. 지난 12월 13일 안철수 의원 탈당 이후 40여 일간 숨 가쁘게 벌어진 ‘안철수-문재인’의 혈투를 돌아보며 이 승부의 앞날을 점쳐본다.
안철수 의원이 지난 12월 13일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이후 야권은 요동쳤다. 창당하지도 않은 안철수 신당이 제1야당 지지율을 넘어서며 지각변동을 예고한 것이다.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이 1월 7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신당은 21% 지지율로 19%의 더민주를 눌렀다.
야권의 성지라고 할 수 있는 호남에선 41%를 기록해 더민주(19%)보다 두 배 이상 앞섰다. 더민주 호남지역 현역 의원들이 탈당 후 속속 합류하면서 신당의 원내 교섭단체 구성도 시간문제처럼 보였다. 탈당 후 여론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웠던 안 의원 측은 2012년 정국을 강타했던 ‘안철수 신드롬’의 재현이라며 들뜬 분위기가 역력했다.
안 의원 탈당을 계기로 친노 패권주의 논란은 더욱 거세졌다. 자연스레 그 화살은 친노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 문 대표에게로 향했다. 문 대표로는 총선은 물론 대선이 힘든 것 아니냐는 비관론이 급격히 퍼졌고, 사퇴 요구도 거세졌다. 그러나 문 대표는 정면 돌파를 선언했다.
한 친노 의원은 “(안 의원이 탈당한 후) 문 대표도 물러날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었지만 쫓겨 나가는 모양새는 아니라고 판단했다”면서 “더군다나 안 의원은 앞으로 문 대표와 차기를 놓고 맞붙어야 할 상대다. 등을 보여선 안 됐다. 어느 정도 수습책을 마련한 뒤 사퇴해야 후일을 도모할 수 있는 것 아니냐. 그래서 직접 인재 영입에 나서는 등 적극적인 대응을 하기로 내부적으로 논의했다”고 귀띔했다.
문 대표는 12월 27일 안 의원이 신당 창당을 발표하는 기자회견 직후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 소장을 영입한다고 발표했다. 안 의원 측으로부터도 러브콜을 받고 있던 표 소장을 끌어들여 ‘맞불’을 놓은 것이다. 그것도 안 의원 기자회견과 동시에 말이다. 표 소장을 시작으로 ‘문재인표’ 인재 영입은 계속됐다.
그 중 백미는 김종인 전 의원 영입이 꼽힌다. 문 대표는 김 전 의원을 선거대책위원장으로 발탁하고 전권을 맡겼다. 이어 문 대표는 백의종군을 선언하고 총선에서 패배할 경우 정계 은퇴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상 배수진을 친 셈이다. 문 대표는 1월 20일 자신이 맡고 있던 인재영입위원장 후임으로 김상곤 전 혁신위원장을 임명했다.
문 대표의 승부수에 흔들리던 당은 점차 재정비돼갔고, 탈당 원심력도 약해졌다. 특히 더민주 관계자들은 국민의당 합류 여부를 놓고 고민하던 박영선 의원이 21일 잔류를 택한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더민주 중진급 의원은 “박 의원을 붙잡기 위해 김종인 위원장을 데리고 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박 의원 잔류는) 상징성이 컸다. 문 대표가 2선 후퇴를 결심하게 된 것 역시 박 의원을 설득하기 위한 차원에서였다고 한다. 박 의원 잔류가 문 대표에겐 큰 힘이 되겠지만 안 의원에겐 뼈아프게 다가올 것”이라고 말했다. 박 의원 잔류뿐 아니라 지난 12월 7일 당무 보이콧을 선언했던 이종걸 원내대표가 1월 20일 최고위원회의에 복귀한 것도 더민주의 상승세를 나타내주는 장면이다.
문 대표가 이끄는 더민주는 지지율 반등에도 성공했다. 15일자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광주·전라에서 더민주는 32%를 기록하며 2%포인트 차로 국민의당을 누르고 1위를 탈환했다. 리얼미터가 21일 발표한 정당지지율에서도 더민주는 25%로 국민의당(17%)을 앞섰다. 더민주는 호남지역에서 지지율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는 데에 고무된 모습이다. 반면 국민의당은 하락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자 더민주 현역 의원들의 탈당 속도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2월 15일까지 교섭단체 구성 조건인 20명을 돌파해 국고보조금을 받겠다는 국민의당 전략도 차질을 빚게 됐다. 권대우 정치평론가는 “어차피 지금 정치권에 뛰어드는 인사들은 총선 승리가 목표다. 즉, 지지율이 높은 정당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라며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지지율 상승세인 더민주가 인재영입 경쟁에서 유리한 입지를 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의당이 초반 기세를 이어가지 못한 것은 문 대표의 정공법 때문일 수도 있지만 자충수를 둔 탓이 더 큰 이유라는 게 정치권의 우세한 관측이다. 국민의당은 1월 8일 5명의 인재 영입을 발표했다가 불과 세 시간 만에 이들 중 3명의 입당을 취소했다. 비리에 연루됐었던 전력 때문이었는데, 이를 두고 안 의원이 인재영입을 졸속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정치권에선 문 대표와 안 의원이 벌인 인재영입 경쟁에서 문 대표 손을 들어주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한상진 공동 창당준비위원장이 1월 14일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 ‘국부’라고 칭한 것을 놓고서도 ‘집토끼’라고 할 수 있는 야권 지지자들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권대우 정치평론가는 “한 위원장의 국부 발언이 (국민의당) 하락세의 결정적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에 안 의원이 국민의당을 자신의 대권을 위한 전초기지로 활용하려 한다는, 이른바 ‘안철수 사당화’는 불을 질렀다. 당 깃발을 올리기도 전에 내부에서 잡음이 불거져 나온 것이다. 실제로 더민주 출신 현역 의원, 동교동계 등 탈당파들은 안 의원 참모그룹이 국민의당 실권을 독식했다는 불만을 터트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동교동계 원로들은 안 의원에게 면담을 신청, “이대로 가다간 성공하지 못 한다”며 쓴소리를 했다고 한다.
동교동계의 한 전직 의원은 “국민의당 창당 업무를 주도하고 있는 박선숙 집행위원장과 이태규 실무지원단장은 2012년 대선 안철수 캠프 핵심 인사들이다”며 “지금 안 의원 측근들에 밀려 소외받고 있다는 의원들이 한둘이 아니다. 친노 패권주의가 싫어 떠났는데 또 다른 패권을 목격하고 있다. 집안 단속부터 제대로 하지 못 하고 있는데 어떻게 더민주와 싸우려 하는지 걱정이다”라고 털어놨다.
안 의원 측은 일단 호남지역 민심을 다잡아 반전을 노린다는 계획이다. 국민의당은 1월 21일 ‘안풍’의 진원지라고 할 수 있는 전남과 광주에서 첫 시·도당 창당대회를 개최하며 세몰이에 나섰다. 행사에는 안 의원과 한상진 위원장 등이 총출동했다. 안 의원은 축사에서 “국민의당이 강력한 제1야당이 되면 한국정치의 혁명적 변화를 보게 될 것이다. 3당 체제로 재편돼야 한국정치가 바뀐다. 강철수가 돼 앞으로 달려 나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국민의당은 호남 민심을 끌어안기 위한 일환으로 전남 출신 3선 주승용 의원을 원내대표로 선출했다. 안 의원 측근은 “컨벤션 효과가 있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또 더민주에 비해 인재영입 작업도 부진했다”면서도 “창당을 하면서 시행착오를 겪는 것 아니냐. 오히려 이러한 시련들이 안 의원을 더 강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천정배 의원. 임준선 기자
정치권 관계자들은 안 의원과 문 대표 간 승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입을 모은다. 향후 정계개편 과정에서 수많은 변수들이 도사리고 있는 이유에서다. 국민회의 창당을 주도하고 있는 천정배 의원 스탠스도 그중 하나다. 호남 지역에서 상당한 지분을 가지고 있는 천 의원이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문 대표와 안 의원의 명암은 엇갈릴 가능성이 높다. 문 대표와 안 의원 모두 내부 비토 기류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도 둘의 대결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재광 정치평론가는 “집안이 편안해야 밖에 나가서 잘 싸울 수 있는 법이다. 누가 먼저 내부 균열을 해결하느냐가 싸움의 승패를 가룰 것”이라면서 “문 대표나 안 의원 모두 야권의 소중한 자산이다. YS(김영삼)와 DJ(김대중)가 그랬던 것처럼 건설적으로 경쟁하는 라이벌이 돼야 한다. 자칫 둘의 자존심 싸움으로 번질 경우 더민주나 국민의당 모두 국민들에게 외면 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