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남자친구와 함께 차를 타고 나간 후 실종된 태미 린 레퍼트. 왼쪽 작은 사진은 실종 관련 단체에서 가상으로 만든 중년 추정 이미지.
태미 린 레퍼트는 두 번째 작품에서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를 만나는 행운을 잡았다. 역시 단역이었지만, 당대 최고 감독 중 한 명인 브라이언 드 팔머가 연출하고 알 파치노가 불멸의 연기를 보여주었던 <스카페이스>(1983)에 출연하게 된 것. 여기서 그녀는 파란색 비키니를 입은 섹시한 모습을 보여주며 사람들의 시선을 모았다. 하지만 1983년 12월 9일, 이 영화가 개봉되었을 때 정작 그녀는 이 세상에 없었다. 아니, 아무도 그녀가 있는 곳을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살해 가능성이 높은 실종 상태였던 것이다.
사건의 개요는 간단하다. 1983년 7월 6일 오전 11시, 레퍼트는 남자친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플로리다의 로클레지에 있는 집을 나서 30분 거리에 있는 코코아 비치로 갔다. 남자친구는 그녀를 해변 근처에 있는 글래스 뱅크 주차장에 내려 주었다고 하는데, 당시 주변의 목격자에 의하면 두 사람은 언쟁을 벌였다고 했다. 163~166센티미터 정도의 키에 48~52킬로그램의 체중이었던 그녀는 곱슬머리 금발이었고 갈색 눈이었다. 꽃 장식이 있는 푸른 티셔츠에 데님 스커트 차림이었고, 샌들을 신고 있었으며 손엔 회색 지갑을 들고 있었다. 어머니의 증언에 의하면 레퍼트는 외출할 때 긴 시간 동안 치장을 하곤 했다는데, 이날의 옷차림과 빗질도 하지 않은 헤어스타일은 꽤 이례적이었다.
이것이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경찰 수사는 아무 단서도 찾지 못했고, 말다툼을 벌였다는 남자친구도 용의자로 볼 수 있는 그 어떤 근거도 없었다. 그런데 어머니인 린다는 경찰에게 딸이 살해당했을 거라고 단정 내리듯 말했다. 그녀의 이야기는 꽤 구체적이었다. 레퍼트는 플로리다 지역 마약 암거래 루트에 대해 알고 있었고, 범죄 조직에 의해 딸이 살해되었다는 것이다. 이상한 조짐은 2년 전부터 있었다. 첫 영화 <스프링 브레이크> 촬영이 끝나고 파티에 다녀온 후부터 레퍼트는 급격히 이상해졌다는 것이다. 그녀는 말수가 적어지고 방에 혼자 틀어박혀 있는 시간이 많아졌으며 편집증적 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이웃에 살던 오랜 동갑내기 친구였던 윙 플래너건은 당시 레퍼트에 대해 이렇게 증언했다. “나는 태미에게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느냐고, 혹시 힘든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면 그녀는 대화의 주제를 바꾸거나, 알 거 없다며 그냥 웃곤 했다.”
태미 린 레퍼트의 첫 영화 <스프링 브레이크>(위)와 두 번째 작품 <스카페이스>의 한 장면.
<스카페이스> 촬영장에서도 그녀는 문제를 일으켰다. 총격전 신이었는데, 총에 맞은 배우가 쓰러지며 가짜 피를 흘리자 그 모습을 보고 정신 착란에 가까운 반응을 보여 결국은 중도 하차해야 했던 것.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경찰에게 자신이 알고 있던 사실들을 이야기했고(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점점 불안감이 심해져 7월 1일엔 집안의 모든 유리창을 깨는 폭력적인 행동을 했다. 어머니는 태미를 데리고 정신병원에서 3일 동안 정밀 검사를 받았고, 그 어떤 이상도 없다는 진단을 받은 후 집으로 귀가했다. 그리고 며칠 후, 집을 나간 그녀는 실종된 것이다.
경찰은 연쇄살인마의 소행으로 봤다. 플로리다 지역의 미녀들을 노렸고 이후 미국 전역으로 활동 범위를 넓혔던 크리스토퍼 와일드가 용의선상에 올랐다. 경찰은 태미가 마이애미 비치에서 촬영할 때 와일더가 그녀를 보았을 것이며, 이후 스토킹을 하다가 납치한 후 살해했을 거라고 보았다. 하지만 증거는 없었고, 와일드는 1984년에 경찰과 격투를 벌이던 중 자살했다. 여성에게 성폭력을 가한 후 피를 뽑아 마신다고 해서 ‘뱀파이어 레이피스트’라는 별명이 붙은 존 크러칠리도 용의자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역시 증거는 없었다.
오리무중에 빠진 태미 린 레퍼트의 실종 사건은 시간이 흐르면서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이후 백인 여성 실종자들의 시신이 발견될 때마다 그녀의 이름이 올랐지만 모두 아니었다. 2013년엔 법의학 아티스트인 대니 솔리티와 다이애너 트렙코프가 중년이 된 태미의 모습을 추정한 이미지를 만들기도 했다. 살아 있다면 지금 51세가 되었을 태미 린 레퍼트. 전도유망했던 18세의 어린 배우는,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그렇게 사라졌다.
김형석 영화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