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동 주민센터 내 한파쉼터(위)는 1층 민원창구 앞 개방된 공간에 15개 좌석만 배치한 게 전부였다. 한파쉼터로 지정된 평창동 주민센터는 야간에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한파쉼터? 어제 구청 직원들이 한파쉼터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오긴 했는데 여기 경로당이 그거래? 그건 모르겠고 가스비 아끼느라 난방을 덜했더니 아침에 추워서 혼났어.”
송파구 마천동에 소재한 마천제일경로당에서 만난 김양림 씨(여·75)가 기자에게 건넨 말이다. 20일에 찾은 경로당에서는 할머니 열 분이 5명씩 짝을 맞춰 화투를 치기도 했고 TV시청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해당 경로당은 송파구가 지정·운영하는 한파쉼터 중 한 곳으로 경로당 회원을 포함한 모든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경로당 회원들조차 한파쉼터인지를 모르고 있는 터라 일반 시민들의 발길이 경로당으로 이어지지도 못하고 있었다. 한파쉼터 지원은 따로 없고 서울시에서 지원해주는 운영비의 일부로 난방비를 충당해야 한다. 매달 받는 지원금 30만~40만 원 중에서 난방비를 써야 하기 때문에 마음 놓고 난방을 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영등포구 대림동의 대림경로당을 관리하는 박이순 씨(여·81)도 “경로당이 여름에는 무더위쉼터로 밤 10시까지 운영했었는데 올해 들어 며칠 동안 꽤 추운데도 한파쉼터 관련해서는 어떤 방침도 들은 것이 없다”며 “경로당에 오는 사람은 100% 노인들이기 때문에 구민들을 위한 장소라는 취지는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취재팀이 방문한 대다수의 경로당에는 지난여름에 운영했던 무더위쉼터 안내판만 붙어있을 뿐 한파쉼터에 대한 안내는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등산로 인근에 위치한 미아경로당에는 경로당 노인들 이외에 등산객들도 하루에 20명씩 화장실을 이용하고 추위를 피해 방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 역시 그곳이 한파쉼터인지 알고 오는 것은 아니었다.
주민센터에서도 쉽게 한파쉼터를 찾을 수 없었다. 한파쉼터가 있는 강북구 미아동 주민센터에 도착해서도 한파쉼터를 한참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주민센터 직원에서 물어보고 나서야 안내받을 수 있었는데 한파쉼터는 1층 민원창구 앞 개방된 공간의 15개 좌석이 전부였다. 한파쉼터가 실내 공간에 위치할 것이라는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종로 주민센터의 한파쉼터는 로비 의자 4개뿐이다. 익명을 원한 한 할아버지는 “평소 탑골공원에서 지내는데 겨울을 맞아 너무 추워 바깥에 있을 수가 없어 주민센터 도서관에 들어와 있다”며 “한파쉼터가 있는지도 몰랐고 로비 의자에 앉아있느니 도서관 안에 들어와 있는 게 훨씬 낫다”고 말했다. 주민센터 관계자는 “바깥보다 실내가 따뜻하기 때문에 이곳에서 충분히 추위를 피할 수 있다”고 궁색한 변명을 내놨다.
‘한파쉼터’ 경로당에는 노인들만 있을 뿐 일반 시민들이 찾지 않고 있었다. 오른쪽은 무더위 쉼터라는 안내판이 붙은 경로당.
한파쉼터 중 일부는 기온이 영하 15°C 이하로 내려갈 경우 야간 연장 운영을 하거나 24시간 운영을 하도록 돼 있다. 주민센터에는 당직자가 있기 때문에 24시간 운영을 해 노숙인이나 취약계층이 쉴 수 있도록 돼 있는 것. 그렇지만 기존 취지와는 달리 연장 운영은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늦은 밤 취재팀이 찾아간 경로당과 주민센터 내 한파쉼터는 문이 닫혀 있었다. 한파쉼터는 해당 구에서 관리 및 운영을 하고 있다.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서울시에서 총괄하지만 구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정해진 운영시간이 있는 것은 아니다”며 “한파경보가 아닌 한파주의보였기 때문에 연장 운영을 하지 않았고 24시간 운영을 하더라도 이용하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야간에도 운영을 하려면 자원봉사자가 필요한데 이에 대한 예산이 없어 시행되고 있지 않다. 예산 없이 근무시간 외에 운영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말로는 시민들을 위한 한파쉼터라고 이름 붙여졌지만 홍보가 없어 아는 사람이 없고 운영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한파쉼터에 주어진 예산이 없기 때문에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결과를 낳고 있기도 하다. 경로당에는 난방비가 지원되고 있지만 주민센터와 복지관에는 이름만 한파쉼터라고 지정돼 있을 뿐이었다. 게다가 대다수 복지관은 해당 복지관이 한파쉼터로 지정돼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복지관 내 한파쉼터는 물리치료실이나 식당이었다. 복지관을 이용하는 대상이 아니면 복지관 내 시설을 이용하는데 제한이 있기도 했다.
한 복지관 관계자는 “복지관 안에 난방기가 있으니까 복지 차원에서 누구든지 와서 쉬게 하라는 건데 체계적인 계획이나 시뮬레이션 없이 하려고 하니 제대로 될 리가 없다”며 “비용의 문제가 아니고 관심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 시민은 “날이 추워지니 무언가는 해야 할 것 같아 한파쉼터를 대충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냐”며 “사실상 지금 한파쉼터 자체는 경로당이나 다를 바가 없다. 홍보도 안 되고 있으며 수요를 고려할 생각도 없는 것 같다”이라고 불만의 목소리를 냈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