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축구 황태자’ 조재진은 지난 3일 중국전에서 골을 넣고 환호하던 그 ‘조재진’이 정말 맞나 싶을 정도로 연예인 뺨치는 모습을 하고 나타나 기자를 깜짝 놀라게 했다. 올해 스물셋인 그는 사랑도 겪어봤고 야심찬 꿈도 가슴에 품고있는 ‘매력 200%’의 청년이었다. | ||
중국전이 끝난 뒤 이틀 동안 꿀맛 휴가를 즐기고 있는 조재진을 지난 4일 강남 압구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날 수 있었다. 경기가 끝난 뒤 새벽까지 축하 전화를 받고 벅찬 흥분을 진정시키느라 잠을 제대로 못 잤다는 그는 경기장에서 봤을 때와는 완전 딴 사람이 돼서 나타났다. 기자 앞에서 수줍은 미소를 띠며 “늦어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조재진을 뚫어져라 쳐다볼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순간적으로 조재진을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
깔끔하게 정리한 헤어스타일에다 반짝이는 황금빛 귀고리 2개, 그리고 패션모델 뺨치는 세련된 옷차림 등 붉은색 유니폼으로 그라운드를 질주하는 조재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잘생겼다’는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보고만 있어도 절로 기분 좋아지는(?), 드문 즐거움을 만끽한 채 스물세 살 젊은 청년의 인생 고백을 들어보았다.
“몸은 피곤했는데 잠이 오지 않더라고요. 주위에서 축하도 많이 해주시고. 그 어떤 골보다도 중국전에서의 골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거예요. 전 (최)성국이가 그냥 슛할 줄 알았어요. 만약 슛을 했는데 골키퍼 손에 맞고 나오면 그 골을 다시 집어넣어보려고 골문 앞으로 뛰어갔던 거예요. 그런데 설마 그 공이 저한테로 올 줄이야…. 날아갈 듯한 기분이란 바로 그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겠죠?”
조재진은 전날 밤의 흥분을 고스란히 꺼내 보였다.
‘쿠엘류의 황태자’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다가 부상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쿠엘류호’에서 ‘쪽박’을 차고 쫓겨난 서글픔이 중국전의 골 하나로 일시에 날아갔던 것이다. 조재진은 지난해 4월16일 처음으로 성인대표팀에 발탁돼 팀에 합류했던 상황을 결코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TV로만 봤던 선수들과 함께 생활한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인지 훈련할 때부터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올림픽대표팀과는 달리 훈련 자체가 너무 진지한 거예요. 하지 말아야 할 실수도 하게 되고, 하여튼 쟁쟁한 선배들의 유명세에 잔뜩 기가 죽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몇 차례의 대회를 통해 ‘쿠엘류호’의 차세대 스트라이커로 주가를 높였고 6개월여 동안 ‘황태자’란 칭호를 들을 만큼 기량이 급성장했지만 지난해 10월 오만전의 참패 이후 더 이상 쿠엘류 감독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지금의 ‘김호곤호’에서도 역시 ‘황태자’로 군림하는 그이지만 그릇이 큰 곳을 향해 마음이 기울어지는 건 당연지사. 설기현, 안정환, 이천수 등 월드컵을 통해 기량을 인정받은 선수들과 자리다툼을 벌이는 상황들이 ‘아직까지는’ 버거워 보일지는 몰라도 조재진은 정정당당한 경쟁을 통해 국내파의 진가를 확실히 보여주겠다고 장담한다.
조재진은 조기축구회에서 활동하는 아버지를 따라 어렸을 때부터 축구장을 들락거리다 ‘조기회’ 코치의 눈에 띄어 축구를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어렸을 때는 골키퍼부터 수비수, 미드필더, 공격수까지 안해 본 것이 없을 정도로 전천후였다. 수비하다가 골이 안 터지면 공격수로 나섰고 공격을 맡다 수비가 뚫리는 것 같으면 곧바로 수비수로 전환했다. 그러다가도 페널티킥 상황이 발생되면 다시 장갑을 끼고 골문을 지키는 등 조재진의 포지션 넘나들기는 고1 때까지 계속되었다. 스트라이커로 자리를 잡은 시기가 고2로 올라가면서부터. 대통령배축구대회에서 득점왕을 차지하며 본격적인 ‘킬러의 세계’로 접어들게 된 것이다.
언뜻 보기엔 어렸을 때 그 흔한 ‘사고’ 한 번 쳐보지 못했을 ‘범생이’ 타입인데 고1 때 힘든 운동과 선배의 구타를 못 견뎌 동기생들과 단체로 인천 월미도에서 배를 타고 을왕리 해수욕장으로 도망쳤던 경험을 털어놓는다.
“그때 처음으로 술을 마셔봤어요. 맥주에다 소주를 타서 폭탄주를 마셨는데 어휴, 다음날 정말 괴롭더라고요. 지금도 술을 좋아하지 않는 건 숙취 때문이에요. 얼마나 괴로워요. 그 고통이 싫어서 술을 못 마시겠어요. 학교 담장을 넘어 세상 속으로 탈출을 시도했지만 결국은 감독님 손바닥 안이더라고요. 마음 약한 한 친구가 부모님과 통화하다 우리가 있는 곳을 말하는 바람에 다음날 아침 감독님 손에 이끌려 다시 학교로 돌아가게 됐죠.”
조재진은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인해 진학을 포기했다. 남들처럼 대학 간판을 달고 폼나게 선수생활을 하고 싶었지만, 슈퍼를 운영하며 어렵게 뒷바라지를 해온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대학 꿈을 버리고 프로를 선택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판단이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프로 세계는 아마추어 때와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였다. 게다가 훈련 방법에서부터 선수들의 플레이, 숙소 분위기 등에 적응하기도 전에 오른쪽 무릎 부상을 당했고 수술과 재활이라는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다.
“군 입대를 자청했어요. 재활훈련기간 동안 다른 선수들이 보강되면서 설 자리가 없었거든요. 만약 삼성에 계속 남아 있었더라면 벤치워머나 2군 선수로 머물렀을 거예요. 상무에서 주전으로 뛰게 되고 마침 상무가 프로리그에 진출하면서 그라운드를 밟을 기회가 많아졌죠. 그러다보니 올림픽대표팀과 성인대표팀에 발탁되는 등 겹경사가 생기는 거예요.”
“첫사랑이었어요. 나보다 나이가 많이 어린 친구였는데 난 그 사람한테 ‘올인’했거든요. 그런데 그 여자는 나한테 ‘올인’하지 않았어요. 약속한 부분을 어겼고. 결국 헤어질 수밖에 없었어요. 한동안 마음이 울렁거려 아무 것도 못했어요. 그러나 지금은 여자친구 없는 게 편해요. 시간적인 여유도 없고, 다른 데 신경 쓰고 싶은 생각도 없고.”
지금은 편한 여자가 좋다고 한다. 그러면서 가수 백지영과 누나, 동생 사이로 친하게 지내고 있다는 뜻밖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간혹 주위에서 오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힘들 때 서로 이야기를 들어주고 용기를 불어 넣어주는 의남매지간이라고 분명한 선을 긋는다.
“누나 성격이 워낙 털털하잖아요. 남자답고. 그런 면이 더 매력적인 것 같아요. 참, 혹시 J군 얘기 아세요?”
뜬금없이 웬 J군? 조재진은 지난번 모 스포츠 신문 1면에 ‘축구선수 J군과 유부녀 톱스타 H씨의 은밀한 관계’라는 기사가 나가면서 엄청난 비난을 들어야 했다고 하소연했다. 기사에서 명시한 나이와 이니셜이 비슷했고 또 축구선수라는 사실 때문에 조재진을 J군으로 알고 전화를 해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심적 충격을 받았다는 것.
“전 정말 아니거든요. 이 자리를 통해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맹세코 H씨를 본 적도 없어요. 다른 J도 많으니까 앞으론 저를 그 J로 오해하지 마시길 꼭 당부드리고 싶어요.”
갑자기 웃음이 터져나왔다. 기자는 J로 지목된 선수가 누군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H와의 관계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조재진을 J로 오해했다는 대목에선 기가 막힌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 얼마나 힘들었으면 꼭 좀 써달라고 부탁까지 할까.
‘골잡이’다보니 경기를 치를 때마다 골에 대한 심적 부담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고 한다. 휴지통에 휴지를 집어넣을 때도 성공시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다고 말하는 것만 봐도 그 스트레스를 짐작하고도 남았다.
올림픽 본선 진출의 최대 고비가 될 이란전을 앞둔 조재진의 마음은 어떤 상태일까.
“청소년대표팀 때 연습경기에서 이란을 만난 적이 있어요. 체격이 좋은 선수들이 많아 쉽지 않은 경기가 될 거예요. 질 거라고 생각하진 않기 때문에 중국전보단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겁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니 어느새 눈이 내리고 있었다. 전신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카페의 한켠에서 멋진 폼을 잡고 있는 조재진의 머리 위에도 눈이 켜켜이 쌓여갔다. 근사한 카페의 풍치와 절묘하게 어울리는 조재진을 바라보면서 자꾸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친구 정말 축구선수 맞아?’ 순전 맥주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