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침통한 표정의 박근혜 대표와 얼굴을 감싸쥔 이재오 원내대표. 2월 27일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 모습이다. 최연희 의원 성추행 사건으로 한나라당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 ||
사실 정치인은 직업 특성상 누구보다도 술자리가 잦은 편에 속한다. 불가피하게 마셔야 할 경우도 많다. 오죽했으면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정치하면서 가장 서러운 순간이 억지로 술 마실 때다”라는 푸념까지 했을까. 그럼에도 술은 정치인의 정치력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가장 유용한 도구 중의 하나로 통한다.
그 술 중에서도 폭탄주가 단연 인기 ‘메뉴’다. 폭탄주의 ‘경제성, 평등성, 단결성’ 등을 따를 술이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폭탄주도 좋게 마시면 ‘화합주’이지만 자칫 도를 지나쳐 실수라도 하게 되면 그것은 ‘자폭주’로 돌변한다. 정치권에 떠도는 술자리 뒤에 숨겨진 에피소드들을 모아봤다.
한나라당은 유독 ‘술’에 약한 모습이다. 지난 2004년 김태환 의원의 골프장 경비원 폭행사건, 2005년 곽성문 의원의 맥주병 투척사건, 주성영 의원의 술자리 폭언 논란 등 ‘술’과 관련된 사건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리고 2006년에도 어김없이 ‘한 건’이 터져버렸다.
사실 한나라당 주변에서는 이번 최연희 의원 사건 외에도 지금까지 5~6건의 술자리 관련 파문이 더 있었다는 이야기가 나돈다. 당에서는 이때마다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혼쭐이 났던 것으로 알려진다.
A 의원은 낮술을 잘 하기로 소문이 난 사람이다. 특히 그는 막걸리나 소주를 물 마시듯 마시는 ‘두주불사형’으로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런 그가 지난해 한 신문사와의 술자리에서 술잔을 기자에게 집어던져 말썽이 났던 사건이 있었다. 술잔을 맞은 기자가 부상까지 당해 자칫 문제가 커질 수도 있었지만 당직자들이 간신히 ‘막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B 의원은 지난해 또 다른 술자리에서 여기자들에게 격에 떨어지는 추태를 보여 한때 문제가 심각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 의원은 평소 품행이 방정한 사람으로 주변 평판도 좋았지만 술 때문에 그 ‘명성’에 흠집이 났던 것으로 알려진다. 또한 전날 과음을 하면 모임에 지각은 물론 주변에 술 냄새를 풍겨 눈살을 찌푸리게 한 적도 적지 않다고 한다. 그가 정치인으로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술과 관련해 자기관리가 좀 더 철저해야 한다는 게 주변의 평가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정쟁 뒤풀이로 마련한 술자리가 오히려 파문을 키우기도 한다고 전한다. 다음은 그가 털어놓은 문제 술자리의 한 장면.
“C 의원과 D 의원이 노래방에 갔다. 그런데 그 날 낮에 서로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한 사안이 있었고, 그걸 갖고 발언의 수위를 넘는 공격들이 서로 오갔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풀려고 노래방에 갔던 것이다. 그런데 C 의원이 속상하니까 계속 노래를 불렀던 것 같다. 노래를 혼자서 10곡 정도 불렀을 것이다. 좀 많이 불렀다. 그런데 D 의원 또한 ‘가뜩이나 낮의 일로 앙금이 남아 있는데 여기 와서까지 저렇게 독단적으로 한다’면서 시비가 붙어서 거기서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왜 너만 노래를 부르냐’고 서로 욕하면서 싸웠다. 그때도 병이 깨지고 난리도 아니었다.”
지난 정권의 실세 중 한 사람이었던 E 의원은 술자리 분위기를 띄우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고 한다. 술은 그리 세지 않지만 자신의 몸을 불사르는(?) 희생정신으로 술자리를 즐겁게 했다고 한다. 그는 폭탄주로 술자리가 무르익을 즈음 테이블 위로 올라가 스트립쇼를 펼쳤다고 한다. 그런데 하루는 기자들 사이에 신참 여기자가 끼어있는지도 모르고 한창 ‘쇼’에 열을 올렸다고 한다. 영문을 모르고 참석했던 여기자. 결국 충격적인 장면을 보다 못해 밖으로 뛰어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그 사실은 곧 정보기관에 포착돼 ‘상부’에 보고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E 의원은 그 뒤 청와대로 불려갔다고 한다. 권력 핵심부의 ‘엄중 경고’에 E 의원은 몸둘 바를 몰랐다고 한다. 하지만 청와대에서는 기자들과의 간극을 좁히려는 눈물겨운 그의 노력을 가상히 여겼던지 내심 흐뭇해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전해진다.
하지만 술자리에 얽힌 이야기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사건들이 더 많았다.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JP)는 술자리를 좋아했다. 그리고 술자리 횟수에 비례해 그만큼 해프닝도 많았다.
하루는 JP와 충청권 의원들이 술자리를 가졌다. 그런데 두 의원 사이에 의견 충돌이 있었다고 한다. 육사 출신의 아무개 의원은 상대 의원에게 “이 더러운 XXX 같은 놈아”라면서 맥주잔을 던져버렸다고 한다. 이를 본 JP도 매우 화가 나서 “어느 안중인데 그따위 짓을 하느냐”며 호통을 쳤다고 한다. 이런 종류의 술자리 충돌은 요즘도 종종 벌어진다고 한다.
지난 14대 국회의 F 의원은 평소 성격이 굉장히 과격했다고 한다. 소문에는 그가 ‘넝마주이’(넝마나 헌 종이 따위를 주워 모으는 일, 또는 그 일을 하는 사람) 출신이라고 알려지기도 한다. 그는 술자리에서 취기가 올라 화가 나면 마시던 맥주잔을 아작아작 씹은 뒤 확 뱉어버려 주변 의원들을 ‘공포’에 몰아넣기도 했다고 한다.
이번 최연희 의원의 성추행 파문은 정치인과 기자들 간의 왜곡된 술자리 문화의 한 단면을 보여준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한 중진 의원은 폭탄주를 스물두 잔까지 마시며 그때까지 ‘살아남은’ 기자들에게만 고급 정보를 주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래서 기자들에게도 술 자리는 고역인 동시에 정치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특히 여야의 중진급 의원들 가운데엔 국회 출입 여기자들과의 ‘식사’ 자리를 선호하는 사람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한나라당의 한 보좌관은 이에 대해 “의원들 중에는 부드러운 여기자들과 술자리를 가지면서 ‘기분’을 내고 싶어하는 사람도 많다. 취기가 오르면 가끔 짓궂은 행동도 많이 한다. 하지만 여기자들이 웬만하면 참는 편이다. 기분은 나쁘지만 편안한 분위기에서 의외로 고급 정보가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중국속담에 ‘술은 마셔도 술에 먹혀서는 안 된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술에 먹히는 의원들이 늘어날수록 홧김에 술을 마시는 국민들도 덩달아 늘어나지는 않을까.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