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똥은 부산으로 튀었다. 지금 부산의 민심은 한마디로 ‘울고 싶은데 뺨 맞는’ 심정이다. 부산의 내로라하는 기업인들이 총리의 ‘골프 친구’가 되기 위해 안달복달하는 행태에 분노하고 있다.
사태의 진원지 부산에서 바라보는 이번 파문의 성격은 의외로 명료하다. 의기투합한 ‘정권유착형’ 기업인 3명으로 시작, ‘5인’이 결성됐고, 여기에 이 총리와의 윤활유 역할을 위해 필요한 측근 교육계 인사들이 동원됐다. 급기야 ‘5인’은 권력 실세와의 친분을 매개로 그 세를 십여 명 이상으로 불렸고, “‘27회’라는 이름에 걸맞게 27명으로 불리자”고 한껏 목소리를 드높였다. 이를 두고 “권력의 냄새를 향유하기 위해 접근하는 기업인들을 조심해야 할 ‘권력자’가 제대로 처신을 못한 것”이라는 비난의 목소리도 높다.
충남 청양 출생으로 서울에서 학교를 졸업한 이 총리는 얼핏 부산과 직접적인 연고는 전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부산 현지에서는 달랐다.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운수업을 해 온 처가 때문. 부산에서 이 총리는 나름대로 ‘자식’은 아니지만 ‘사위’ 대접은 받고 있었다.
이 총리의 장인은 지난 2002년 5월 사망하기 전까지 부산에서 꽤 큰 규모의 운수업을 했다. 재산도 상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이 사업은 장남인 김 아무개 씨(63)가 이어받아 계속 운영하고 있다.
이 총리는 지난 2002년 대선 때도 부산이 고향인 노무현 대통령의 선거 유세에 도움을 줬을 정도로 처가 인맥 덕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의 한 기업인은 “이 총리의 돌아가신 장인이 부산에서 사업을 오래한 탓에 기업인 인맥이 제법 있었다”고 전했다.
그래서일까. 이번 골프 파문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개가 부산의 기업인들로 채워져 있다. 강병중 넥센타이어 회장, 신정택 세운철강 회장, 박원양 삼미건설 회장, 이삼근 남청 대표, 류원기 영남제분 회장 등이다. 이들은 ‘27회’의 창립 멤버들로 알려져 있다. 부산의 한 상공인은 “27회를 놓고 서울에서는 ‘27인회’니 뭐니 잘못 알고 있는데, 실제로는 ‘5인회’라고 하는 것이 맞다”며 “이들 다섯 명이 현 정부와의 친분을 무기삼아 부산 경제계에서 힘을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다섯 명 가운데 특히 강, 신, 박 회장 등 ‘3인’은 요즘 한마디로 부산 경제계를 쥐락펴락하는 꽤나 거물급들”이라고 밝혔다.
‘5인’ 가운데 현재 류 회장에 대해 의혹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그가 지금껏 저질러온 부적절한 처신 때문이다.
하지만 부산에서는 강 회장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한 상공인은 “강 회장은 지난 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부산상의 회장을 무려 10년 가까이 했다. 그 후임 회장들도 강 회장의 의중에 따라 좌우될 정도로 이제 부산 경제를 대표하는 막강한 영향력을 갖는 인사가 됐다”고 밝혔다. 부산 재계에서는 ‘강병중 사단’이니 ‘마피아’니 하는 말도 나올 정도라는 것.
YS 정권은 물론, DJ 정권 때에도 권력과 밀착된 관계를 유지해 온 강 회장은 특히 현 정권 들어 그 위상이 상당히 고무된 것으로 알려졌다. 역대 어느 정권보다 더 권력 실세와 가까워졌다는 자부심이 그것.
현 정부 출범 당시 강 회장의 위상이 어떠했는가를 짐작케 하는 자료도 발견됐다. 2003년 대검 중수부의 ‘대선자금 수사’ 기록 내용이 그것. 당시 부산의 유력 기업인이었던 K 씨는 검찰 조사에서 “2003년 1월경 K 회장이 나를 불러 ‘부산상의 회장 선거와 관련해서 대통령의 뜻은 강 회장이 다시 회장으로 선출되는 것이니 선거에 출마하지 말고 강 회장을 지지해 주라’고 말해 출마를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K 회장은 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이에 대해 부산의 한 상공인은 “안 그래도 당시 정권이 부산상의 회장 선거에 개입하려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실제로는 강 회장을 지지했던 K 회장이 대통령의 뜻인 것처럼 과대포장해서 말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다만 그가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이다 보니 마치 대통령의 뜻이 강 회장 지지인 것으로 비친 측면이 있었다”고 밝혔다.
부산 재계의 ‘대부’격이 되어버린 강 회장 주변에는 많은 기업인들이 오고 갔지만 현재로선 신 회장과 박 회장이 가장 가깝다는 전언이다. 이들 ‘3인’은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노 후보의 측근인 최도술 씨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나란히 검찰 조사를 받았다. 강 회장과 박 회장은 같이 3000만 원 벌금형을 선고받았고 신 회장은 벌금형은 면했다.
아무튼 이들 3인은 이후 부산 경제의 거물로 급성장해갔다. 박 회장이 당시 지역 경제계의 최대 화제가 됐던 삼미 인수를 위한 컨소시엄을 강, 신 회장과 함께 형성한 것도 2003년 2월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그해 6월 삼미를 인수했다.
▲ 강병중, 신정택, 박원양, 류원기, 이삼근(왼쪽부터) | ||
부산 재계에서도 어느 정도 알려진 ‘27회’는 2004년 9월 27일, 이 총리의 부산 방문 시 식사 자리에 함께한 ‘3인’ 외에 류 회장, 이 대표를 더해서 ‘5인’이 즉석에서 만든 조직이었다. “총리님과의 이런 자리를 계속 기념하기 위한 모임”이었던 것.
이번 골프 파문의 근본적 원인이 된 ‘5인’과 이 총리와의 만남에 누가 매개체 역할을 했는지가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당초 이기우 교육차관을 비롯한 교육계 인사들이라는 얘기가 설득력을 얻고 있는 가운데 최근에는 류 회장과 이 총리와의 개인적인 인연이 가장 오래됐다는 새로운 증언이 나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골프 멤버인 이 차관과 정순택 전 청와대 수석은 각각 ‘5인’과 남다른 인연을 갖고 있다. 물론 두 사람도 경남 출신에 부산고 선후배 동문 사이로 상당히 친하다.
정 전 수석은 DJ정권 시절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을 지낸 이후 부산아시안게임 조직위원장을 역임하면서 부산 지역 상공인들과 상당한 친분을 쌓은 것으로 지역에서는 알려져 있다. 정 전 수석은 동아대 법학과를 졸업한데다 석박사 학위까지 모두 여기서 받은 ‘동아맨’이다. 공교롭게도 ‘3인’이 모두 동아대 출신이다. 특히 강 회장과 박 회장은 정 전 수석과 법학과 선후배 관계다. 류 회장 또한 동아대 경영대학원 최고과정을 수료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차관은 “(골프 회동 참석자 가운데) 원래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이는 정 전 수석과 함께 박 회장”이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그는 류 회장과도 이전부터 몇 차례 골프를 쳤을 정도로 친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총리가 98년 교육부 장관을 하던 당시 친분을 맺은 이 차관과 정 전 수석은 이후 ‘3인’을 이 총리에게 소개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이 총리와 강 회장은 2000년 새천년민주당 당무위원도 함께했다.
류 회장과 이 총리의 관계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당초 이 총리와 류 회장의 관계도 98년경부터라고 알려졌다. 이때 서울의 한 골프장에서 두 사람이 골프를 함께 치는 것을 봤다는 얘기도 나왔다. 하지만 최근 류 회장과 가까운 사이였다는 한 측근이 “이 총리가 야당 의원하던 시절부터 류 회장이 그를 많이 도와줬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새로운 주장을 내놓았다. 즉 어려운 야당 의원 시절 도움을 받은 것 때문에 이 총리가 그 이후 류 회장의 부적절한 처신이 구설수에 올라도 쉽게 외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총리실 측에서는 “류 회장은 교육부 장관 시절 정 전 수석으로부터 소개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 같은 가능성을 부인했다.
류 회장도 97년부터 부산상의 의원을 지냈다.
부산 지역에서는 이 총리의 처남이자 현재 부산상의 임원을 맡고 있는 김 아무개 D산업 대표를 거론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 상공인은 “김 대표가 2004년부터 부산상의 임원을 맡았지만 이번에 문제가 된 경제 인사들과 특별히 가깝게 지낸 것 같지는 않다”고 밝혔다.
부산 지역의 최대 관심은 ‘27회’로 알려진 조직의 실체와 함께 참가자들의 면면이다. 15명 정도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으나 회장도 회칙도 없는 탓에 소문만 무성할 뿐이다. 여기에는 대선자금 수사 당시 거론됐던 부산 지역 상공인의 핵심인 K 회장과 또 다른 K 회장, 부산시장 출마설이 나도는 전 장관의 친형 O 회장과 사돈 K 회장도 함께 거론된다. O 회장은 97년 부산상의 회장 선거 당시 강 회장에 맞서 마지막까지 치열한 접전을 벌이다가 막판에 회장직을 양보하고 후보를 사퇴한 전력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파문을 접한 부산 지역 상공계에서는 “부산에서는 이번 파문을 정권 실세와 선을 닿기 위한 일부 정권유착형 기업인들의 ‘로비성’ 골프 접대로 보고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총리 역시 이런 점을 간파하지 못하고 특정 인사들과 연이어 골프 회동을 한 것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부산=감명국 기자 km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