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식목일 강원도 일대에 큰 산불이 발생했을 때도 이 총리는 골프채를 들었다가 ‘식목일 골프’로 곤욕을 치렀다. 근신하겠다던 이 총리는 그로부터 3개월 후 남부지방에 집중호우가 내릴 때 다시 제주도에서 라운딩을 즐기다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 지난해 6월 연천 총기난사 사건이 있기 하루 전 군 수뇌부,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 등과 골프를 친 것으로 밝혀져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또한 김진표 교육부총리도 경제부총리 시절인 2004년 태풍 ‘매미’가 한반도를 강타하는 동안 제주도에서 2박3일 일정으로 골프휴가를 즐겼다가 곤욕을 치렀다.
그렇다면 차기 지도자로 거론되는 대권 잠룡들의 경우는 어떨까. 혹시 그들도 ‘골프광’의 잠재 유전자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잠룡들의 ‘골프 애정도’를 한번 측정해보았다.
우선 이명박 서울시장이 가장 돋보인다. 이 시장이 정치에 입문하기 전 기업인 생활을 오래했고 또 젊은 나이에 대기업의 임원이 됐기에 골프 구력도 가장 앞선다. 김병일 서울시 대변인은 “현대건설 사장이던 80년대 초반부터 골프를 시작한 것으로 안다”며 “사업상 접대 등의 이유로 골프를 시작했고 또 해외생활도 오래해 자연스럽게 골프를 즐겼다”고 전했다.
기업에서 한창 골프를 칠 때 이 시장은 “제법 잘 친다”는 소리도 들었지만 서울시장 취임 후 라운딩할 시간도 연습할 시간도 없어 실력이 현격히 떨어졌다고 한다. 김 대변인은 “시장이 된 후에는 라운딩할 기회가 1년에 한 두 번밖에 되지 않아 실력이 예전 같지 않다. 그래도 이 시장의 운동신경이 좋은 편이어서 기본 수준은 유지하는 것 같다”라고 전했다. 이렇게 연습도 제대로 못하는 상태에서 이 시장이 유지하는 ‘기본수준’은 80타대. 웬만한 정치인들이 매일 골프연습을 해도 넘보기 힘들 정도로 수준급이다.
기자 출신의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은 LA 특파원으로 나가 있던 80년대 후반 처음 골프에 입문했다고 한다. 당시 국내에서는 골프가 귀족스포츠였지만 미국에서는 대중스포츠여서 자연스럽게 입문했다. 종종 골프를 즐겨왔지만 지난해 6월 연천 총기난사 사건 직전 군 수뇌부와 골프회동을 가진 것이 문제가 된 이후 자제하는 편이다. 특히 요즘은 5·31 지방선거에 ‘올인’한 상태라 선거가 끝나기 전까지 골프장 출입을 스스로 금하고 있다. 골프실력은 보기플레이어로서 90타 내외다.
정계 입문 뒤에 골프를 배우기는 했지만 별다른 매력을 못 느끼는 주자들도 있다. 손학규 경기지사와 천정배 법무장관의 경우가 그렇다.
손 지사는 90년대 중반 골프에 입문한 것으로 전해진다. 손 지사 측은 “손 지사가 신한국당 대변인 시절 기자들과의 라운딩을 위해 골프를 시작했다고 들었다. 그러나 본인이 골프에 흥미가 없어 실력은 별로다”라고 말했다. 평균 120타대이고 핸디캡은 너무 많아서 계산하지 않는다고. 골프를 치는 잠룡들 중 가장 형편없는 실력인 셈이다. 경기도의 한 관계자는 “남들이 홀인원 하면 기뻐하듯 손 지사는 파 한 번 잡으면 굉장히 좋아하는 수준”이라며 “손 지사의 골프 실력은 여전히 비기너(초보자)다”라고 전했다.
천 장관은 손 지사보다는 조금 나은 편이다. 100타대를 겨우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천 장관의 한 비서관은 “인권변호사로 활동할 때는 시간도 없었고 골프를 배우려고도 하지 않았다. 정계로 들어온 후 골프를 시작했는데 실력이 별로 늘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천 장관이 국회 법사위 간사이던 2004년 동료 의원들에게 “내가 90타에 입성하면 법사위 의원들에게 선물을 돌리겠다”라고 호언했지만 끝내 선물을 돌리지 못했다고.
법무부 수장을 맡은 후로는 골프 칠 일이 별로 없지만 장관 취임 전에는 실내골프연습장에 자주 나갔다고 한다. 천 장관의 한 비서관은 “실력 향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천 장관이 오십견이 있는데 골프가 좋다고 해서 스윙연습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반면 열린우리당 김근태 최고위원,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아예 골프채를 잡아 본 적이 없다.
김 최고위원 측은 “국회의원이 된 후에도 시간도 없고 돈도 없어 골프를 배우지 않았다. 배울 생각도 없다”라며 “시간이 날 때엔 축구를 한다”고 전했다. 박 대표 측은 “그동안 골프를 배울 기회도 없었고 같이 골프를 칠 사람도 없었다. 다만 테니스나 요가 정도로 건강을 관리한다”고 말했다. 유 장관 측은 “그냥 안 친다”라고 답했다.
고건 전 총리의 경우 좀 특이하다. 그의 측근인 김덕봉 고려대 연구교수는 “(고 전 총리는) 지난 70년대 말 골프를 그만뒀다”고 전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당시 전남도지사였던 고 전 총리는 어느 날 골프 약속이 있어 근처 골프장으로 향하던 도중 한해(寒害)가 든 논에서 일하고 있던 농민들을 보고 골프에 대한 생각을 접었다고. 농민들이 피해 복구를 위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명색이 도지사가 한가롭게 골프나 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자리에서 고 전 총리는 골프장으로 가던 차를 돌려 집무실로 돌아갔다고 한다. 김 교수는 “고 전 총리는 그 후론 골프를 그만두었다”고 전했다.
김지훈 기자 rapi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