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철 전 의원 | ||
이 전 의원은 민주당과의 후보 단일화 1차 협상팀을 실질적으로 이끌었고 선거공조 이후 부산 등지에서 열성적으로 노 후보의 선거운동을 도운 데다 정 대표의 지지철회 선언 직후 통합21을 탈당, 대선 개표시 민주당사에 모습을 드러내는 등 양당간 공조에서 핵심적 역할을 해왔다. 따라서 이 전 의원은 그 누구보다 양당간 밀약 여부에 대해 많은 정보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전 의원은 19일 탈당 기자회견에 앞서 한 인터넷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양당간의 협상내용을 공개했다. 이 전 의원은 “민주당과의 정책공조 협의 과정이 사실상 공동정부 구성요구였느냐”는 질문에 대해 “분명히 공동정부 구성 요구였고 실질적으로는 ‘자리’ 보장 요구였다”며 “그 요구에 대해 노 후보로부터 명확한 답변이 안나왔지만 시간적 문제도 있고 당내 압력도 거셌고 협상의 형식과 다른 내용을 밝힐 수도 없어 당초 협상 목표가 관철되지 않았지만 선거공조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고 답변했다.
이 전 의원은 이어 “협상의 형식과 다른 내용이란 무슨 뜻인가”는 질문에 “발표는 막연한 정책공조라고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자리’ 보장 요구였다는 얘기”라고 전제한 뒤 구체적인 요구 내용을 설명했다. “총리는 물론이고 국정원장, 국방, 외무, 법무, 통일장관 이렇게 6개를 반드시 포함한 각료의 50%, 그리고 총리의 실질적인 각료 제청권, 또 정부산하단체 국영기업체 등 사실상 정부가 임면권을 갖는 자리의 50%를 달라는 요구였다.
(요구가 받아들여졌냐는 질문에) 말도 안되는 요구였다. 국정원, 국방, 외무, 법무, 통일 같은 것은 사실 이원집정부제 아래서 대통령이 맡는 권한이다. 이것을 빼고 내치를 맡으라는 것은 사실상 대통령에게 총리 역할을 하라는 말과 같은 것 아니냐. 또 국방장관 자리를 내놓으라는 것은 대통령의 국군통수권에 대한 부정이다. 그리고 국정원은 현재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되어 있는 것인데, 이걸 달라는 건 말이 안된다.”
이 전 의원은 “요구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 이후 수정됐나”는 질문에 대해 “국방장관은 뺐고, 국정원도 좀 애매해진 것 같고, 하여튼 나중엔 민주당 쪽에서 구체적인 안을 내놔라 하는 식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통합21 전성철 의장이 양당간 선거공조 합의 직전 “조율된 정책을 공동으로 실현할 수 있는 청사진을 민주당측이 제시해야 국민을 설득할 수 있다”고 말한 대목과 일치하는 셈이다.
이 전 의원은 “결국 구체적 합의는 없었고 ‘함께 하자’는 정도의 막연한 동의만 이뤄졌다”는 말로 끝을 맺었는데 이는 노 후보와 정 대표가 재회동을 통해 발표한 합의문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정 대표측에서 최운지 전 의원 등을 통해 통일, 외교, 국방분야의 각료를 요구했으리라는 것은 얼마든지 추정이 가능한 것이었다. (<일요신문> 553호 보도)
그러나 이처럼 양당 관계자를 통해 구체적인 자리 요구가 있었음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과연 이 전 의원의 말이 사실일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후보단일화 1차 협상 실패에 책임을 지고 이 전 의원이 협상팀을 사퇴한 이후 통합21 내에서의 이 전 의원의 위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 지난 13일 공동유세에 나선 노무현 대통령 당선 자와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이 같은 점을 감안하면 이 전 의원은 적어도 통합21 내에서는 정 대표와 최운지 전 의원 정도만 전모를 알고 있는 양당간 공조협상의 내용을 통합21측 인사를 통해 들었을 것으로 보긴 힘들다. 결국 이 전 의원은 평소 친분이 있거나 1차 협상과정에서 접촉한 민주당측 인사로부터 협상 내용을 확인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럴 경우 이 전 의원의 주장이 다르게 해석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양당이 선거공조 협상 결과를 서로 다르게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그것이다. 통합21의 핵심 당직자들에 따르면 정책조율 협상 과정에서 통합21측은 단 한 차례도 공식적인 당의 요구로 ‘자리 배분’을 요구한 적은 없었다. 다만 당시 통합21측 협상팀들은 바로 협상테이블에서 당의 공식 요구가 아니라 사견을 전제로 ‘민주당이 DJP연합에 비해서는 통합21에게 훨씬 더 많은 배려를 해야 한다’는 요구를 여러 차례 했다.
뿐만 아니라 당내 상당수 당직자들이 민주당과 개인적 인연을 갖고 있어 수십 개의 사적 채널이 가동됐고 이 과정에서 ‘자리 배분’에 대한 요구는 이어졌다. 이와 관련, 한 당직자는 “우리당은 거의 통제 불능의 상황”이라고 꼬집기까지 했다.
이러다 보니 비록 통합21측이 선거공조의 전제조건으로 ‘자리 배분’을 요구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민주당측에서는 당연히 통합21측이 ‘정책조율’ 등을 내세우는 속내가 ‘자리 배분’이라고 볼 수밖에 없고 그 구체적인 내용은 협상테이블이나 개인적 통로를 통해 전달된 내용을 취합해 파악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이런 분석은 이 전 의원이 선거공조 체제 가동전 양당 협상내용에 대해 언급한 것에 한해 적절한 분석일 뿐 그 이후 통합21 내부 기류에도 변화가 있을 수 있다. 실제로 공동선대위가 출범하고 최운지 전 의원이 공동선대위원장으로 등장하면서 전성철 정책위의장이 양당간 정책조율 협상을 진행하긴 했지만 물밑 협상은 최 전 의원이 전담하다시피 했다. 최 전 의원은 당 공식회의 전 거의 대부분 정 대표와 독대하는 시간을 가지곤 했다.
또 최 전 의원의 민주당측 파트너로 알려진 김원기 고문이나 김상현 의원의 주변에서 통합21측 요구를 무조건 수용해야 하며 필요하다면 각서까지 써줘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지만 노무현 후보가 거부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따라서 최 전 의원이 이철 전 의원이 밝힌 것과 같은 요구를 민주당측에 전달했고 이 내용이 민주당 인사를 통해 이 전 의원에게 흘러들어갔을 수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이철 전 의원 주장대로 통합21측 요구는 누가 봐도 결코 수용할 수 없는 내용이다.
그런데 선거공조 합의 직전 노 후보의 핵심측근들은 정 대표의 요구를 무조건 수용하라는 분위기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무리 선거공조가 긴요하다 하더라도 노 후보가 우세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이런 요구를 노 후보 측근들이 무조건 수용하라고 건의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결국 이 같은 정황을 종합하면 이 전 의원이 주장한 것은 실제 내용보다 다소 과장됐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그렇다고 이 전 의원이 거짓말을 했다는 것은 아니다. 우선 이미 분석한 것과 같이 노 후보측이 정 대표의 요구를 확대해석 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와함께 노 후보 주변에는 김원기 고문 등과 달리 정 대표와의 공동정부 구성에 반대하는 원칙주의자들도 적지 않았는데 이들이 정 대표측의 압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이 전 의원에게 다소 과장된 내용을 흘렸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김삼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