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2일 정동영 열린우리당 당의장(오른쪽)이 고건 전 총리를 만나 연대를 제의했지만 거절당했다. 이후 양쪽의 갈등은 전북 방문을 계기로 상호 비방전까지 치닫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 ||
대권주자들에게 지역기반만큼 든든한 버팀목은 없다. 과거 김영삼(영남)- 김대중(호남)- 김종필(충청) 등 이른바 ‘3김’이 오랜 세월 권력을 향유할 수 있었던 원동력도 바로 지역기반이었다.
3김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 보스정치·지역감정 등 한국정치의 고질적 병폐가 다소 해소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차기 대권을 꿈꾸는 잠룡들이 여전히 자신의 출생지나 연고지를 내세워 정치적 지지기반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정 의장과 고 전 총리가 공통적 지역 기반인 전북 지역 민심을 끌어안기 위해 치열한 기 싸움을 벌이고 있는 현실은 이를 대변하고 있다.
정 의장의 고향은 전북 순창이고 고 전 총리는 서울 출신이지만 선친의 고향이 전북 옥구로 사실상 전북 인사로 인식되고 있다. 지방선거와 마찬가지로 두 사람의 대권 연대도 불가능할 것이란 정치권의 분석 배경에는 ‘전북’이라는 태생적 한계가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차기 대권을 놓고 물밑 경쟁을 펼치고 있는 두 사람 입장에서 이번 5·31 지방선거는 향후 대권행보와 맞물려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누가 진정한 전북지역 맹주이고 나아가 호남을 대변할 차기주자인지를 가늠하는 첫 번째 전장이기 때문이다.
물론 고 전 총리는 이번 지방선거에는 개입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대권가도의 분수령이 될 이번 선거를 뒷짐지고 방관만 하지 않을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고 전 총리는 정 의장이 지역순회 일정으로 전북지역을 방문한 3월 23일 똑같이 전북을 방문해 새만금 현장을 둘러보고 전북대에서 특강을 했다.
▲ 지난 23일 정동영 의장과 김한길 원내대표가 새만금방조제를 헬기로 시찰한 뒤 내리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 ||
정치권 관계자들도 고 전 총리의 일련의 행보 이면에는 중장기적 대권 노림수가 어느 정도 투영돼 있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전북지역 정가 주변에서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고건 전 총리와 강현욱 지사, 한화갑 민주당 대표간에 물밑 연대가 진행되고 있다는 이른바 ‘3자 연대론’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강 지사는 고 전 총리의 후광을 등에 업고 열린우리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하고 민주당은 전북지사 후보를 내지 않는 대신 김세웅 무주군수를 전주시장 후보로 내세운다는 게 3자 연대론의 골자다.
정 의장은 열린우리당 전북지사 후보로 김완주 전 전주시장을 적극 지원하고 있어 강 지사가 탈당을 결행할 경우 전북지사 선거는 정 의장과 고 전 총리 간의 대리전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정 의장 측은 전북지사를 비롯한 이 지역 지방선거에 총력전을 펼친다는 각오다. 자신의 출생지인 이 곳에서 고 전 총리나 민주당 후보에게 밀릴 경우 대권 입지는 급격히 위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호남지역 민심 동향과 관련해 <전북도민일보> 이경주 정치부장은 “전주지역은 아직까지 열린우리당이 강세를 보이고 있지만 전남 인접 지역은 민주당과의 박빙의 승부가 예상된다”며 “고건 전 총리가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면서 차기주자 선호도에서 고 전 총리가 정 의장을 앞서고 있는 게 이 지역의 현 민심”이라고 전했다.
전남지역은 민주당의 지지율이 열린우리당을 20%포인트 가까이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대선때 절대적 지지를 보냈던 노무현 정부에 대한 실망감이 민주당 지지로 유턴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현재 민주당에 이렇다 할 차기 대권주자가 없는 만큼 전북을 연고지로 하고 있는 고건 전 총리를 호남을 대변할 차기주자로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호남매일> 김영수 정치부장은 “전남은 20%포인트, 광주는 10%포인트 정도 민주당이 열린우리당을 앞서고 있다”며 “고 전 총리가 민주당과의 관계를 재설정하고 본격적인 대권행보를 걷는다면 전남 민심은 고 전 총리 쪽으로 급격하게 기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북지역 맹주와 호남 차기주자 자리를 놓고 본격적인 대권 경쟁을 펼치고 있는 있는 정 의장과 고 전 총리. 그 첫 번째 격전지가 될 이번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은 누구를 선택할지가 두 사람의 향후 대권 구도와 맞물려 또다른 관전 포인트로 부상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