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30일 서울 역삼동 론스타 한국사무소에 대한 압수수색을 마친 검창 직원들이 압수한 자료를 운반하고 있다. | ||
김재록 게이트로 그동안 수면하에서 공방을 벌여왔던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논란이 전면에 등장하게 된 것으로 외환위기 이후 정권을 잡아온 DJ 정부와 참여정부의 정치인·경제관료들에 대한 전면적인 수사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김재록씨와 론스타의 연결고리
김 씨는 DJ 정부 초기부터 재계의 해결사로 등장했다. 외환위기 직후인 지난 98~99년 그가 한국지사장으로 있던 아더앤더슨과 자산관리공사가 부실채권 매각 자문사를 맡았다. 론스타는 98년 말 자산관리공사로부터 5646억 원의 부실채권을 사들였다. 부실채권 매각 자문사를 맡아 부실 채권 매각 회수에 주도적 역할을 했던 것은 아더앤더슨. 이때부터 론스타와 김 씨의 인연이 시작된 것이다.
일각에선 지난 2003년 외환은행 매각 당시에도 김 씨가 금융 로비스트로 론스타와 금융당국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한 게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2003년은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직후이고 그때까지는 김 씨의 힘이 ‘위풍당당’하던 시절이었다. DJ 정권 내내 김 씨가 부실금융기관 정리작업에 간여해 상당한 노하우를 갖춘 실력자로 통하던 때이기 때문이다.
또 지난해부터 론스타가 외환은행 재매각 작업에 나서면서부터 김 씨가 인수 후보군을 상대로 투자컨설팅을 제안하는 등 재매각 작업에도 관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김 씨가 진로 매각전에서도 재미를 못 보고 외환은행 인수후보자로 결정된 국민은행으로부터도 컨설팅료를 비싸게 불러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최근 들어 김 씨의 ‘약발’이 다했다는 얘기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외환은행 매각 미스터리
김재록 게이트는 외환은행 헐값 인수 의혹 논란을 촉발시켰다. 애초부터 인수할 자격이 없는 사모펀드인 론스타가 어떻게 금융기관인 외환은행을 인수할 수 있었느냐는 점과 외환은행을 헐값에 매각하기 위해 일부 자료를 고의적으로 왜곡하지 않았느냐는 논란으로 번지고 있는 것.
대표적인 것이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조작 논란이다. 외환은행 노조에선 진작부터 이 문제를 내세워 론스타의 헐값 인수의혹을 제기했고 투기자본감시센터는 물론 국회 재경위에서도 이 부분을 문제삼아 검찰에 외환은행 매각의혹을 고발한 상태다.
금융기관이 아닌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할 수 있었던 것은 금융당국에서 관련법에 ‘부실기관의 정리 등 특별한 사유’가 있을 때는 금융기관이 아니더라도 인수가 가능하다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외환은행이 매각 당시인 2003년에 론스타 등 외부 기관의 금융자본의 긴급 수혈이 없으면 BIS 비율이 그해 연말에 6.16%로 떨어져 부실금융기관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보고서가 바탕이 됐다.
문제는 그 보고서의 ‘조작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외환은행 쪽에선 당시 외환은행 이사회에 보고한 연말 BIS 전망치가 10%였다. 하지만 ‘누군가’ 금융감독원에 보낸 보고서에는 6.16%로 바뀌어있었다. 이 보고서 때문에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금융 당국에서 ‘부실기관의 정리 등 특별한 사유’에서 ‘등’에 해당한다고 결론을 내리고 론스타에게 인수를 허락했기 때문이다.
이 보고서로 인해 외환은행은 부실기관에 준하는 대접을 받고 론스타에 헐값에 팔렸다는 게 외환은행 헐값 매각 논란의 핵심이다.
▶외환은행 매각에 누가 매달렸나
외환은행 매각이 헐값에 론스타에 특혜를 줬다고 주장하는 쪽에선 인수자를 론스타에 내정해 놓은 상태에서 상황을 꿰맞췄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지난 2003년 7월 15일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열린 론스타 비밀 대책 회의에서 당시 변양호 재경부 금융정책국장(현 보고인베스트먼트 대표)과 김석동 금융감독위원회 감독정책 1국장(현 재경부 차관보), 청와대 주형환 행정관과 외환은행 이강원 당시 행장, 외환은행 매각작업 자문사인 모건스탠리 신재하 전무 등 10여 명이 모여 회의를 벌였다. 이 자리에서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자격문제가 논의됐다. 결국 그해 9월 론스타는 1조 4000억 원을 들여 외환은행을 품에 안는 데 성공했고 최근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3조 2000억 원 이상 받고 팔기 위해 협상을 벌이고 있는 상태다.
문제는 외환은행 부실화의 전제가 된 외환은행에서 보냈다는 5장짜리 팩스에 들어있는 외환은행의 BIS비율 6.16%이다. 이 팩스가 공식 문서가 아님에도 외환은행의 운명을 결정했고, 팩스를 보낸 이의 존재도 불분명하다는 점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그날 회의에 모였던 인물들은 모두 이른바 이헌재 사단으로 불리는 인물들이다. 기아그룹 계열사인 기아포드할부금융 사장 등을 지내던 이강원 씨의 경우 기아가 망하면서 기아그룹 회장에 부임한 진념 씨와 연이 닿으면서 DJ 정권 내내 승승장구한 인물이다. 금융권의 무명인사이던 그는 2002년 매각작업을 앞둔 외환은행장에 발탁되더니 2005년에는 한국투자공사 초대 사장에 부임하는 등 DJ 정부 이후 금융권의 실세 중의 한 명으로 떠올랐다.
때문에 외환은행 론스타 매각건을 수사하다 보면 DJ 정부 이래 재경부나 금융당국의 인맥을 휩쓸고 있는 금융인맥에 대한 수사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이럴 경우 김재록 게이트가 아닌 론스타 게이트로 외환위기 이후 금융기관 구조조정에 개입했던 정·관계 인사와 인수전에 참가한 기업들에 대한 전면적인 수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남은 의문
금융계나 재계의 관심사는 왜 론스타에 그런 특혜를 줄 수밖에 없었느냐는 점이다. 당시 금융당국에선 국민에 부담을 주지 않고 외환은행을 정상화시키기 위해선 외자유치밖에 없다는 주장을 폈었다. 하지만 BIS 비율이 조작되지 않았다면 외환은행 매각과 그로 인한 외부자금 신규유입(외자유치)의 필요성에 대해선 의문의 여지가 많다.
게다가 그때 막 출범했던 노무현 정부가 외자유치에 필사적으로 매달려야 할 이유도 없다. 왜 관료들이 논란이 될 것이 뻔한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를 결과적으로 도와준 것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는 대목이다.
때문에 일각에선 론스타 펀드의 실체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있다. 사모펀드는 누가 돈을 냈는지 알 수가 없다. 외환위기 이후 미리 해외에 빼돌려졌던 이른바 ‘검은머리 외국인’의 돈이 외자유치라는 명목으로 국내에 유입된 경우가 제법 많았던 것도 이런 의문을 부채질하고 있다.
론스타가 텍사스 댈러스에 본사를 둔 사모펀드라는 것 외에는 알려진 게 전혀없다. 게다가 론스타는 외환 위기 이후 스타타워를 매입한 후 재매각을 통해 큰 재미를 보는 등 국내 실정을 꿰뚫는 듯한 투자활동을 벌여왔다. 외환은행 매입 건도 론스타에서 먼저 외환은행이 필요했던 자금을 거의 정확하게 제시하며 접근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을 정도다.
론스타 게이트로 발전하고 있는 김재록 게이트가 국내 경제관료와 금융계 인맥 지형도를 바꿔 놓을지 아니면 매각 차익에 대한 세금 추징으로 타결될지 주목받고 있다.
김진령 기자 kj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