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승객이 문을 열다 오토바이와 충돌한 경우 택시에게 65%의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는 법원 판단이 나와 논란이 되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사고가 발생한 곳은 많은 차량들로 정체가 빈번한 서울 중구 흥인우체국 앞 편도 3차선 도로. 의류 기술자로 근무하던 이 아무개 씨는 지난 2010년 7월 27일 인도 쪽에 바짝 붙어 3차선과 인도 사이 갓길을 달리고 있었다. 당시 차량은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정체됐던 상황. 그런데 주행 중이던 이 씨 오토바이 앞에 정차해 있던 택시 뒷문이 갑자기 열렸고 이를 피하지 못한 이 씨는 뒷문에 부딪혔다.
아킬레스건 등 왼쪽 발목과 발꿈치를 다친 이 씨는 6개월간 입원 치료를 받았지만, 퇴원 이후에도 만성 통증에 시달렸고 전국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를 상대로 “노동력 상실, 치료비, 위자료 명목 등으로 2억 7810만 원을 물어내라”는 소송을 냈다. 법원은 “전체 손해액 중 연합회가 65%, 이 씨가 35%를 책임져야 한다”며 오토바이 운전자가 아닌, 택시의 잘못을 더 크게 인정한 판결을 내놨다.
“쉽게 볼 수 있는 사건은 아니지만, 유사한 사건이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실제로 과거 판결과 비교해보면 이 정도 책임을 인정하는 수준에서 판결이 나곤 했는데 갑자기 왜 화제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서울중앙지법에서 공보를 담당한 판사의 설명이다. 이어 그는 “법원 입장에서는 문제가 될 소지가 없는 판결”이라고 선을 그었다. 사건을 담당한 서울중앙지법 민사60단독 이병삼 판사의 판단을 쉽게 정리하면, 사람의 행위를 제외하고 이동 주체에 대한 잘잘못을 택시와 오토바이로만 구분해 따졌을 때 택시의 책임이 크다는 것. 이 판사는 판결문에서 “사고는 택시의 운행에 기인한 것으로 택시 측이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적시했다.
판결문을 읽어본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판결문이 다소 친절하지 않은 경향이 있어 논란이 더 불거진 것 같다”며 “택시를 구성하는 운전기사, 승객, 그리고 그들의 각 행위를 크게 구분하지 않은 것을 가정했을 때 비상등을 켜지 않고 있던 택시의 문이 열린 점(택시 측은 비상등을 켰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뒤에 오토바이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주의시키지 않은 택시의 잘못이 크다는 게 담당 판사의 판단”이라고 풀이했다.
오히려 통상의 경우보다 갓길 운전에 대해 엄격히 본 판결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한 판사는 “보험사에서 처리되는 사례까지 고려할 때 보통 갓길 운행 중 택시와 오토바이의 사고는 7 대 3 정도로 택시 측의 잘못이 인정된다”며 “이번 판결에서 택시에게 물은 65%의 책임은, 오히려 5% 정도 더 원고 측의 과실이 인정했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 판사 역시 판결문을 통해 “오토바이 운전자인 이 씨 역시 당시 택시가 3차로에 정차 중이었기 때문에 승객이 내릴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논란이 불거진 것은 원고 측이 소송을 건 피고를 제한했기 때문이라는 게 법원 내 중론이다. 피고를 택시연합회 측만 넣었다보니, 승객의 잘못까지 택시 측이 다 지고 가게 됐고 그러다보니 더 억울하게 비칠 수 있다는 것. 재경지역에서 민사를 담당하고 있는 한 판사의 설명이다.
“이번 소송의 경우 문을 연 승객을 피고에 포함시키지 않았죠. 그냥 연합회만 상대로 걸었는데 만일 승객까지 있었다면, 승객과 연합회 측이 공동 책임을 졌을 겁니다. 배상해줘야 하는 금액만큼 연합회와 승객이 공동책임을 지라고 했겠죠. 이 판결의 경우 연합회 측에서 승객에게 다시 소송을 걸어 그 책임을 나눌 가능성도 있습니다.”
단순한 사건이지만, 사법부가 생각하는 법과 국민들이 생각하는 법 감정 차이에서 오는 문제라는 비판도 있다. 한 변호사는 “오토바이 운전자에게 갓길 운행은 불법이 아니지만 국민들은 불법에 준할 만큼 위험하다고 인식하기 때문에 더 납득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법이 왜 국민들의 인식과 다른지, 더 자세한 설명이 판결문에 적시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오토바이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적인 인식이 판결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그는 “위 사건에서 오토바이를 자전거로 바꿔서 생각해보면, 이번 판결은 그렇게 이상하지 않다고 느낄 겁니다. 오토바이도, 자전거도 모두 이륜차에 속하는데 오토바이의 위험한 주행으로 불편을 겪은 시민들이 많다보니 법원 판결에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라며 “실제로 자전거 역시 자전거 전용 도로가 없는 곳에서 인도와 차도의 갓길에서 달리는데 똑같이 이륜차에 속하는 오토바이의 갓길 주행을 제한하려면 자전거도 제한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법의 맹점을 지적했다.
남윤하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