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현욱 전북지사. | ||
당내 경선 방식에 불만을 표출해 왔던 강 지사는 지난 3월 23일 고건 전 총리를 만난 다음날 전격적으로 경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 때문에 강 지사가 조만간 탈당한 뒤 전북지역 맹주 자리를 놓고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고건 전 총리의 후광을 업고 무소속 내지는 민주당 후보로 도지사 선거에 출마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강 지사는 지난 4일 이승우 정무부지사를 통해 예상 밖의 ‘선거 불출마’ 의사를 밝혔고 그후 며칠간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무성한 뒷말을 낳았다. 대체 강 지사는 왜 갑자기 선거 불출마를 결심하게 됐을까. 또 그 과정에서 여권의 회유 및 강압은 없었을까. 강 지사 불출마 선언을 둘러싼 각종 의혹을 파헤쳤다.
강 지사가 고심 끝에 선거 불출마를 결심하게 된 이면에는 정 의장과 고 전 총리의 보이지 않은 대권 파워게임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란 관측이 적지 않다. 대권을 꿈꾸고 있는 두 사람이 고향인 전북지역 맹주 자리를 놓고 벌인 첫 대결에서 강 지사가 희생됐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로 고 전 총리는 ‘지방선거 불개입’이라는 기존 입장과는 달리 전북지역을 순방하는가 하면 강 지사와 회동하는 등 복선이 깔린 행보를 해왔다. 특히 강 지사가 고 전 총리와 회동한 직후 경선 불참을 선언한 배경을 두고 두 사람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맞물려 있을 것이란 관측이 무성했다. ‘고건-강현욱 밀약설’ 내지는 민주당과의 ‘3자 연대론’이 불거졌던 것도 이러한 관측과 무관치 않았다.
정 의장과 열린우리당은 강 지사와 고 전 총리의 아리송한 행보가 눈에 거슬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특히 전북지사 선거 결과가 자신의 대권 명운과 직결될 수밖에 없는 정 의장 입장에서는 두 사람의 밀접한 관계가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대권 경쟁자인 고 전 총리와 전북지사 선거 향배에 큰 변수로 작용할 수 있는 강 지사가 한 배를 탈 경우 정 의장의 대권가도에는 적신호가 켜질 수밖에 없다. 정 의장과 그 측근들이 강 지사가 경선 불출마를 선언하자 직·간접적으로 선거 불출마를 강력히 권유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실제로 정 의장은 몇 차례 강 지사에게 전화를 걸어 탈당을 만류했고 당내 전북지역 의원들도 강 지사와 접촉하며 필사적으로 불출마를 설득해 왔다.
그런 까닭에 정가에서는 강 지사의 무소속 출마로 지역민심 향배를 저울질하려 했던 고 전 총리의 복심과 대권 사활을 걸고 이를 저지하려는 정 의장의 절박감이 정면 충돌하면서 이른바 ‘강현욱 파문’의 단초를 제공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적지 않다.
‘강현욱 파문’과 관련해 정치권 주변에선 갖가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협박설’ ‘감금설’ ‘비리 폭로설’ ‘빅딜설’ 등이 대표적이다.
민주당 이상열 대변인은 5일 논평을 통해 “강현욱 지사는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의 압박 전화와 전북지역 의원들의 회유가 협박이 아니라면 더 나아가 정치적 테러와 감금상태가 아니라면 직접 전북도민 앞에 나서서 자신의 진퇴를 분명히 해야 한다”며 “경찰과 선관위는 강 지사의 선거 불출마→출마→불출마→잠적으로 이어지는 과정에 외부의 회유와 협박, 테러와 강압은 없었는지 명백히 밝히라”고 주장했다.
지역 정가에선 협박설까지 그럴듯하게 나돌고 있다. 정 의장과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강 지사의 개인 비리 등 X파일 카드로 불출마를 압박했을 것이란 게 주 내용이다. 이와 관련해 강 지사의 한 측근은 기자에게 “정 의장의 측근 A 씨가 강 지사의 자금담당 측근인 B 씨의 개인비리를 강 지사 부인에게 알리면서 출마를 강행할 경우 이러한 비리 문제가 터져 상호 상처만 입게 될 것을 강조하고 불출마를 요구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A 씨의 이야기를 전달받은 강 지사 부인은 가족회의에서 남편의 명예퇴진을 권유했고 강 지사가 가족들의 만류를 받아들여 불출마 쪽으로 결심을 한 것 같다고 이 측근은 주장했다.
▲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 국회사진기자단 | ||
민주당 전북도당도 “열린우리당이 강 지사에게 정부 고위직 제공을 약속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며 “강 지사가 수행원 없이 행방을 감춘 경위 및 강 지사가 하루 만에 불출마로 번복한 이유 등을 밝히라”고 요구하고 있다.
물론 열린우리당 측에서는 세간의 ‘협박설’과 ‘빅딜설’ 등이 강 지사의 불출마에 불만을 품은 세력의 ‘흑색 선전’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그러나 지역 정가에 이 같은 입소문이 빠르게 퍼지고 있는 데 대해선 곤혹스러워 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지난 4일 불출마 선언을 강 지사가 직접하지 않고 정동영 의장 측근으로 알려진 이승우 정무부지사가 대신한 것과 관련한 뒷말도 무성하다. 강 지사는 이 부지사의 불출마 선언 발표 하루 전까지만 해도 열린우리당의 전략공천 움직임에 반발해 무소속 출마를 강행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었다. 실제로 강 지사가 출마를 강행하려 하자 최규성·채수찬·이광철 의원 등은 전북지역 의원들은 3일 전주로 내려가 강 지사를 설득하기도 했다.
여기에 전북도청은 이 지역 언론사에 4일 오전 10시 강 지사의 출마 기자회견이 있을 것이라는 내용의 보도자료까지 배포했다. 언론사 기자들도 강 지사 출마를 기정사실화하면서 전북도지사 선거 판세를 재분석하는 등 분주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4일 기자회견장은 강 지사의 불출마 성명서 발표라는 정반대 상황이 연출됐다. 강 지사 지지자들은 “강 지사가 3일 밤 여권 인사들을 만난 뒤 잠적해버렸다”며 납치·감금 의혹을 제기했다.
또 강 지사가 ‘잠적’하자 전주 시내 주택가와 대로변, 관공서 등에는 ‘강현욱 지사가 무지막지한 권력의 협박에 의해 납치를 당했는지 행방불명이 됐다’ 등의 내용이 담긴 전단지가 대량 배포되기도 했다.
강 지사의 갑작스런 불출마 선언과 잠적, 정 의장 측근인 이 부지사의 성명서 대독 등 일련의 과정이 석연치 않다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는 실정이다.
지역 정가 일각에서는 ‘검찰 외압설’도 제기되고 있다. 전주지검이 3월 31일 전북도에 지방세 특별교부금 관련 자료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강 지사의 불출마 성명서가 같은 날 작성됐다는 점에서 불출마 배경에 검찰의 외압이 있지 않았나 하는 의혹이 일고 있는 것.
이에 대해 전주지검은 “자료를 요청한 사실은 있지만 선거나 정치와는 전혀 무관하다”며 외압설을 일축했다. 혈세인 국고가 보조금 형태로 투명하게 집행되고 있는지 등을 파악하기 위해 지원 규모가 큰 전북도와 전주시에 자료를 요청했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최근 강 지사 측은 세간의 의혹이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자 ‘조만간 강 지사 본인이 불출마의 변을 밝힐 예정’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강 지사의 갈지자(之) 행보가 남긴 의문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미스터리로 남을 듯하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