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방선거 공천 파문과 관련, 지난 13일 소집된 한나라당 긴급 의원총회에 박근혜 대표가 들어서고 있다. 왼쪽에 굳은 표정의 박성범 의원이 보인다. | ||
그래서 일각에서는 이번 파문이 극도로 취약해진 박 대표의 당권 장악력을 극대화시키는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또한 당의 높은 지지도 때문에 ‘대세론’이 팽배해진 시점에서 터져나온 이번 ‘사건’이 대권가도로 가는 장기적 관점에서는 오히려 당에 약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긍정적 평가도 있다. 하지만 당 내에서는 오히려 지방선거 패배의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며 걱정하는 의원들이 더 많다. 일부에서는 ‘책임론’을 들먹이며 박 대표가 그 내상을 고스란히 떠안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공천 파문 뒤에 숨은 박 대표의 ‘승부수’를 따라가 봤다.
박근혜 대표는 결국 정면돌파를 택했다. 더 이상 공천 문제로 당을 위험에 처하게 할 수 없다는 상황 논리가 있긴 했지만 박 대표의 ‘정면돌파’에는 또 다른 절박한 ‘노림수’가 숨어 있다.
먼저 자신의 팔을 내주고 상대의 목을 취하는 ‘노무현식’ 정면 돌파를 들 수 있다. 이번 공천 파문의 1차 대상자들은 거의 모두 ‘친박 계열’이다. 당내 최다선인 5선의 김덕룡 의원은 지난 2004년 박 대표 체제의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지내 친박 계열로 분류된다. 그는 박 대표의 ‘오른팔’ 김무성 의원의 지원 아래 오는 7월 전당대회에서 관리형 대표 당선이 유력시돼 왔다. 박 대표와는 둘도 없는 협력자적 관계였다. 박성범 의원도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아 박 대표와 가까운 편이었고 김덕룡 의원의 지원을 받고 있는 인물이었다.
열린우리당의 한 전략관계자는 “이번에 한나라당 지도부가 두 의원의 비리를 전격 공개한 이면에는 박 대표 보호의 의미가 크다. 김-박 의원은 모두 박 대표와도 가까운 사이라는 점에서 자칫 이 사건이 외부에서 먼저 터져나올 경우 그 화살이 박 대표에게까지 향할 가능성이 높았다. 박 대표 책임론을 미리 차단했다는 점에서 ‘읍참마속’이 아니라 ‘도마뱀 꼬리 자르기’는 아닌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또 다른 정가 인사는 박 대표가 자신의 수족을 자르는 결단을 내릴 때엔 더 큰 목적이 있다고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박 대표가 측근들의 ‘팔’을 자른 뒤 취하려 할 상대의 ‘목’은 무엇일까. 이 같은 셈법의 ‘꼭짓점’에는 물론 대권이 놓여 있다. 박 대표는 자신의 치부를 스스로 공개하는 결단을 내렸다. 이것은 곧 그가 대선 가도까지 염두에 두고 정치생명을 건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당 전략가들 사이에 ‘이보 전진(대권)을 위한 일보 후퇴(지방선거)’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최근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는 “한나라당이 지방선거에서 참패해야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이길 확률이 높아진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실제로 한나라당의 많은 의원들이 공천 문제를 걱정하며 조 전 대표의 주장에 공감을 표시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전직 고위당직자 A 씨는 “박 대표는 이번 사건을 기회로 삼아야 한다. 차떼기를 포함한 모든 오명을 이번 기회에 털어버리고 지방선거는 마음을 비우고 임해야 한다. 어차피 장기 전략으로 정권 재창출이 목적이라면 지방선거를 버릴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밝혔다.
박 대표의 또 다른 노림수는 이번 공천 파문을 통해 ‘물렁해진’ 리더십을 다시 단단하게 만드는 계기를 마련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대권으로 가는 전초전인 7월 전당대회에서 친박 세력의 당권 장악을 위해 박 대표 측이 공천 문제에 대한 정면 돌파를 ‘기획’했다는 분석도 있다.
사실 그동안 박 대표는 끊임없이 당 안팎의 견제를 받아야 했다. 특히 지난해부터 시작된 소장파와의 갈등은 위험 수위에 다다랐다. 소장파는 박근혜-이명박의 양대 축으로 형성된 대권 구도를 깨기 위해 그 한 축인 박 대표를 끊임없이 흔들어댔다.
박 대표는 박 대표대로 공천 파문을 당 쇄신의 전기로 만들 속셈이다. 소장파는 소장파대로 이번 사건을 ‘정풍운동’으로 확대 재생산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사실 요사이의 박 대표는 ‘고립무원’ 상태였다. ‘친이(친 이명박) 세력’도 현안마다 대립하며 박 대표의 발목을 잡았다. ‘이명박 대세론’이 퍼질수록 그의 리더십도 움츠러들었다. ‘탈 계보정치’를 표방한 정치 개혁 실험의 최대 희생자가 바로 박 대표란 소리도 흘러나왔다. 대권 후보 선호도 조사에서도 3위로 밀려나 ‘이대로 주저앉아버리는 것 아니냐’는 걱정스런 목소리도 더욱 커졌다. 그에게는 이런 모든 위기의 벽을 뛰어넘을 묘수가 절실했다. 바로 이때 공천 헌금 수수 사건이 터졌다. 박 대표가 승부수를 던질 수밖에 없었던 또 하나의 배경이다.
이제 박 대표로서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이번 사건을 극복하고 당을 ‘클린당’의 이미지로 재탄생시킨다면 이명박 시장과의 대권 경쟁에서도 다시 우위에 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이번 사건의 생채기가 너무 깊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과연 공천 파문은 박 대표에게 두 번 다시 올 수 없는 ‘마지막’ 기회일까, 아니면 끝없는 추락의 시발점일까.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