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기의 고삐를 죄고 있는 기아 이종범. 타격의 선봉장인 그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 ||
최강팀으로 평가받든, 꼴찌 전력으로 지목되든 감독이 스스로 우승할 수 있다고 응답하는 경우란 없다. 섣부른 예견을 했다가 망신당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기도 하지만, 감독의 눈에는 자기 팀의 약점이 너무나 크게 보이는 탓이다. 대부분 이렇게 얘기한다. “○○○가 잘해주면 4강도 노려볼 만하지요.” 이른바 키플레이어를 거론하며 일종의 ‘책임회피’를 하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각 팀 감독들이 꼽는 올시즌 기대주는 누구일까. 바로 각 구단의 올시즌 운명을 거머쥔 인물들 말이다.
[삼성] 선동열의 황태자여 부활하라
투수 김진웅이 제 몫을 해주는 게 중요하다. 선동열 감독은 시범경기 동안 걸핏하면 “진웅이가 잘해야 할 텐데”라며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나타냈다. 김진웅은 시범경기 들어 제구력 난조를 보이고 있다. 급기야 선 감독은 김진웅을 선발로테이션에서 제외시켰다. 정규시즌 들어서도 당분간은 중간계투로 활용할 계획이다.
김진웅이 제 컨디션이었다면 삼성은 배영수-바르가스-김진웅-해크먼으로 이어지는 선발 로테이션에 임창용과 권오준 가운데 한명을 포함시켜 최강 5인 선발 체제를 짤 수 있었다. 그러나 김진웅이 이탈하는 바람에 정규시즌 초반에는 4인 로테이션을 돌리거나 안지만 전병호 등을 임시 선발로 기용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포수 진갑용의 건강도 선 감독에겐 관심사다. 백업포수의 기량이 많이 떨어지는 팀이기에 진갑용이 부상하지 않고 한 시즌을 버텨줘야 한다. 선 감독은 ‘지키는 야구’를 표방했다. 젊은 투수들이 많은 삼성 마운드를 추스리려면 베테랑 진갑용의 힘이 절실하다.
▲ (왼쪽부터) 김수경, 정민철, 노장진 | ||
기아는 올시즌 리오스-존슨-김진우로 이어지는 선발 마운드가 탄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결국 타선이 얼마만큼 해주느냐가 관건. 타이거즈 공격의 선봉장인 이종범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상황이다.
이종범은 지난해 타율 2할6푼에 17홈런, 52타점으로 부진했다. 프로에서 9시즌을 뛰면서 이종범의 타율이 2할8푼 밑으로 떨어진 건 처음. ‘야구 천재도 나이는 못 속인다’는 말이 나올 만도 했다.
기아는 장성호 마해영 홍세완 심재학 등 중심 타선의 파워가 세다. 따라서 그 앞쪽에서 얼마나 자주 살아나가느냐가 관건이다. 톱타자 이종범의 임무가 중요해진 셈이다.
[SK] 뉴페이스의 뉴파워
조범현 감독은 신인 오른손타자 정근우에게 올인했다. 부산고-고려대를 졸업한 프로 1년차 선수에게 비룡군단의 3루수, 그리고 1번 역할을 맡겼다. 발이 빠른 데다 공을 맞히는 재주가 뛰어난 점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SK는 병역 파동 때문에 전력에서 이탈할 것으로 보였던 이진영 이호준 등이 경기 출전이 가능해지면서 라인업이 전체적으로 화려해졌다. 박재홍 김재현 등 굵직한 이적파 선수들의 합류로 외야는 오히려 선수가 남아도는 형국. 결국 라인업에서 유일하게 팬들에게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정근우가 기존 멤버들과 얼마나 호흡을 맞춰주는가가 관건이다. 조범현 감독은 또한 상무에서 제대한 외야 요원 조동화에게도 큰 기대를 보이고 있다.
[현대] Again 2000
김수경이 수술 후유증을 어떻게 극복하는가에 관심이 모아진다. 김수경은 지난해 부상 때문에 11승8패, 방어율 4.01로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는데 결국 지난 11월 독일서 무릎 수술을 받았다. 당초 올시즌 초반 출전이 불투명해 보였지만 예상외로 재활 과정이 빨라 김수경은 시범경기에서 한결 나아진 구위를 선보였다.
현대 마운드의 거목인 정민태가 어깨 근육 사이에 생긴 물혹 때문에 4월 한 달간 출전이 어려워졌다. 98년 신인인 김수경의 어깨에 너무도 큰 짐이 얹혀진 셈. 김수경은 지난 2000시즌에 18승8패, 방어율 3.74로 ‘몬스터 시즌’을 겪었다. 그때만큼 활약해준다면 어느새 우승 후보 대열에서 사라졌다는 평가를 받은 현대도 희망이 있다.
[두산] 11억원의 가치를 증명하라
두산 마운드는 한마디로 엉망진창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신임 김경문 감독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정규시즌 3위라는 쾌거를 이뤄냈지만 올시즌은 4강 도전이 힘들지 않겠냐는 평가를 받고 있다. 타선은 지난해와 비교해 변화가 없다. 그러나 이재영 구자운 이경필 등 병역 파동으로 자취를 감춘 투수들의 몫을 두 신인투수, 김명제 서동환이 대신해야 한다. 4선발로 내정된 김명제는 6억원, 마무리 임무를 맡은 서동환은 5억원의 계약금을 받고 올시즌 두산 식구가 됐다. 두 선수는 신인 계약금 1,2순위인 만큼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하고 있다.
▲ (왼쪽)조범현 SK 감독은 올시즌 프로무대에 데뷔하는 정근우를 팀의 ‘기대주’로 꼽았다.김명제(가운데), 서동환 | ||
2루수 박경수를 주목해야 한다. 프로 3년차인 박경수는 올해 톱타자 임무도 동시에 맡았다. LG의 외야진은 그럭저럭 구색을 갖췄다. 박용택 이병규 마테오로 구성될 외야는 다른 팀에 비해 손색이 없다. 그러나 내야에선 박경수만이 거의 유일한 붙박이 주전으로 활약할 것이라는 게 이순철 감독의 진단. 공격야구를 추구하는 이 감독이지만 내야의 짜임새를 무시할 순 없다. 이 감독은 “박경수가 부상이라도 당한다면 사실상 내야는 궤멸 수준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2년 연속 4강 진입에 실패한 LG가 10여년 전의 신바람 야구를 부활하기 위해선 박경수 같은 저연차 선수들의 활약이 필요하다.
[한화]미우리 갈 때만큼만 해다오
어느덧 33세가 된 정민철이 부활해야 한다. 김인식 감독은 정민철의 구위에 대해 반신반의하고 있지만 넉넉하지 못한 팀 사정 때문에 그에게 2선발이란 중책을 맡겼다. 송진우가 시원찮은 컨디션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정민철이 팀 마운드의 중심을 잡아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민철의 지난해 성적은 무승 6패. 가장 좋았던 해인 1999년에 18승8패를 기록하고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했었다. 그때가 그리운 건 정민철뿐만이 아니다. 김인식 감독의 첫 번째 소망이기도 하다.
[롯데] 4강 향한 포탄 ‘장진’
마무리 투수 노장진이 없었다면 올시즌에도 4강에 대한 꿈도 못 꿨을 듯하다. 시범경기에서 돌풍을 일으킨 양상문 감독은 노장진이 마무리를 맡고 있어 한결 여유를 찾은 모습이다. 노장진은 지난해 삼성에서 시즌을 맞았지만, 1승1패1세이브에 그친 뒤 시즌 중 롯데로 트레이드됐다. 이후 후반기에만 16세이브를 기록했다. 취약한 롯데 마운드를 감안하면 16세이브의 가치는 그만큼 크다.
노장진이 있기 전에는 에이스 손민한이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며 죽을 고생을 했다. 노장진은 “우리팀 선발투수가 다승왕이 되도록 만들겠다”며 소방수로서의 각오를 밝혔다.
김남형 스포츠조선 야구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