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용택의 슬라이딩 모습. 스포츠서울 | ||
톱타자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도루왕’ 타이틀을 가장 근접한 상황에서 ‘찜’하고 있는 선수는 4번 타자를 맡고 있는 박용택(LG)이다. 7월29일 현재 30개로 2위 윤승균(두산)과는 5개로 격차를 벌여놓았다. 박용택은 팀 사정상 중심 타선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중심타자로서의 역할도 훌륭히 해내고 있다. 2위 윤승균은 시즌 초반 주전으로 나섰다가 방망이가 부진해 현재 교체멤버로 출전하고 있지만 이것이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25개의 도루 중 무려 20개를 대주자로 출전해 성공했기 때문. 그 뒤를 이어서 정수성(현대) 정수근(롯데) 이종범(기아)이 1번 타자로서 양보 없는 자존심 대결을 펼치고 있는 중이다.
무조건 발이 빠르다고 해서 대도(大盜) 계보에 이름을 남길 수 있는 건 아니다. 일단 출루를 해야 하고 이후에는 센스 있는 주루 플레이로 뛰어서 살아남아야 한다. 과연 도루왕 후보들은 어떤 필살기를 보유하고 있을까. 정수근은 순간적인 ‘필’을 꼽았다. 정수근은 “루상에 나가 있다 보면 시합 분위기나 투수의 동작을 보면서 뛰어야 한다는 계시(?)를 받을 때가 있다”면서 “상대 투수의 폼을 읽으면서 순간적으로 반응하는 속도가 빠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윤승균도 도루 타이밍을 언급했다. 윤승균은 “변화구를 던질 경우라든지 견제 없이 투구할 것이 분명한 시기를 읽는 능력이 좋은 것 같다”며 ‘비결’은 아니라는 전제로 말했다.
▲ LG 박용택, 두산 윤승균, 현대 정수성, 롯데 정수근, 기아 이종범(위에서 부터). | ||
이들 5인방은 감독의 특별한 작전 지시와는 상관없이 언제든지 자발적인 도루 시도를 허락받은 ‘그린 라이트’ 선수들이다. 이들이 뛰고 싶을 때에는 언제든지 뛸 수 있는 말 그대로 ‘파란불’이 보장돼 있다. 하지만 이들의 도루 스타일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다.
박용택의 경우는 단독 도루가 90% 이상을 차지한다. 박용택은 “중심타자라는 책임감 때문에 방망이가 아니면 발로서라도 한 루 이상 더 나가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며 도루하는 4번 타자에 큰 의미는 없다고 말했다. 윤승균도 “작전에 의한 도루는 거의 없었다”면서 자신의 발에 대한 믿음을 내비쳤다. 정수성의 경우는 5:5 정도로 작전과 자발적인 도루 비율을 유지하고 있다. 정수성은 “올해 처음 주전으로 올라왔기 때문에 감독님으로부터 (도루) 사인을 받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도루 성공률에도 차이가 있을까. 이종범은 “아무래도 작전이 걸려서 도루하게 되면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라면서 “사인보다는 자발적인 도루가 성공률에서도 월등히 앞설 것”이라고 평가했다.
‘도루왕’을 노리는 대도들에게도 뛰는 것과 관련된 징크스가 예외일 수는 없다. 스피드가 있는 선수일수록 신발에 민감한 것도 사실. 선수들은 보통 2~3켤레 이상의 스파이크를 동시에 소화하는데 대부분 신발과 관련된 징크스가 많다.
정수근은 “방망이가 잘 안 맞거나 도루하다 죽는 경우가 생기면 신발을 가차 없이 바꿔 버린다”면서 “새 신을 신으면 뭔가 잘 될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결국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고 소개했다. 윤승균 역시 신발과 무관하지 않다. 윤승균은 “구단에서 제공하는 스파이크가 두 켤레 있는데 징이 박힌 그 신발이 더 가벼운 게 사실”이라면서 “하지만 도루가 실패한 경우에는 꼭 가벼운 그 신발을 신고 있었다”며 웃었다.
징크스는 아니지만 박용택은 날씨에 따라서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다. 박용택은 “비오는 날에는 그라운드 상태가 안 좋기 때문에 가급적 도루를 자제하는 편”이라고 귀띔했다.
성공하는 도루에 필요한 여러 요소 중 하나는 투수의 투구폼을 읽는 센스다. 쉽게 생각해도 투구 동작이 큰 투수가 나오면 시간을 더 벌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날쌘돌이 5인방이 말하는 궁합이 맞는 투수와 도루하기 껄끄러운 투수 스타일은 어떻게 다를까.
정수성이 언급한 가장 피곤한 스타일은 인터벌이 긴 투수다. 볼 하나를 던지기 위해 볼을 오래 갖고 있는 투수일 경우 순간적으로 타이밍을 잃어 뛰기가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덧붙여 정수성은 “견제와 투구 동작에 차이가 없는 렌들(두산), 최원호(LG)의 경우는 견제구가 오면 상당히 위협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종범은 “투구 동작이 작거나 순발력이 있는 투수는 상대하기가 훨씬 까다롭다”며 송진우(한화)를 대표적인 투수로 꼽았다.
투수들이 타자들의 버릇을 연구하는 것처럼 주자들도 투수들의 동작을 관찰하다 보니 눈에 보일 듯 말 듯한 버릇이 도루의 성공 여부를 가름하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박용택은 “견제구와 투구가 확연히 다른 투수가 있다”면서 “견제 직전에는 고개를 끄덕이거나 글러브 위치가 달라지는 버릇을 보인다”며 보이지 않는 치열한 눈치싸움을 언급했다. 한편, 정수근은 “웬만한 승부는 1.25초 사이에서 결정되는 터라 말 그대로 순간적인 선택이 생사를 좌우하는 것 같다”는 입담을 자랑했다.
LG 박용택
팀이 편하게 이기는 상황에서는 ‘아쉽다’는 생각이 앞선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고비에서 아웃되었을 때에는 일단 ‘후회’부터 든다. 가령 좀 더 리드할 걸, 또는 조금만 더 스타트를 빨리 끊을 걸 하는 생각 등이다.
두산 윤승균
한 마디로 민망하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아웃 카운터 하나를 늘려놓은 셈이 되었고 가끔 타석에 들어서 있는 타자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공수 교대를 불러올 때도 있으니 말이다.
현대 정수성
지난해 대주자로 기용되던 때가 자꾸 떠오른다. 그때에는 힘이 펄펄 넘쳤던 것 같은데 올해 주전으로 기용되면서 힘을 분배하는데 아쉬움을 느낀다.
롯데 정수근
아웃되었을 때 인상을 보면 알겠지만 ‘아쉬움’ 그 자체다. 특히 다리가 먼저 들어가는 슬라이딩을 하다 아웃되는 경우 무지 후회스럽다.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할 걸’하는 생각이 더그아웃으로 들어올 때까지 계속된다.
기아 이종범
그 동안 참 많이 ‘살기도’ 했고 동시에 많이 ‘죽기도’ 했다. 그래서 덤덤하다. 팀 분위기에 마이너스 영향을 미쳤을 때에는 많이 미안하지만 말이다.
‘대도’ 5인방 신상비교
박용택 | 정수근 | 정수성 | 이종범 | 윤승균 | |
나이 | 26 | 28 | 27 | 35 | 22 |
입단년도(연차) | 2002(3) | 1995(10) | 1997(8) | 1993(12) | 2005(신인) |
연봉 | 9,000(만원) | 25,000(만원) | 4,000(만원) | 43,000(만원) | 2,000(만원) |
신장/몸무게 | 185/85 | 178/78 | 173/68 | 177/80 | 184/80 |
혈액형 | B | B | O | O | O |
100m 최고기록 | 11. 8 | 11.0 | 11.5 | 11.0 | 11.7 |
보물1호 | 방망이 | ? | 2003, 2004 한국시리즈우승 메달 | ? | 다리 |
취미 | 음악, 영화 | 영화, 보드 | 음악, 영화 | 음악 | 농구 |
좋아하는 음식 | 보양식 | 잡식성 | 고기, 회 | 고기 | 탕수육 |
별명 | 쿨가이 | 날쌘돌이 | 미친개, 에디슨 | 바람의 아들, 야구천재 | 발승균 |
도루 부문 5인방 타격 비교 (7월 29일 기준)
도루 | 타율 | 타수 | 안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볼넷 | 삼진 | 출루율 | 장타율 | |
박용택 | 30 | 0.304 | 335 | 102 | 13 | 54 | 70 | 26 | 65 | 0.360 | 0.493 |
윤승균 | 25 | 0.159 | 69 | 11 | 0 | 4 | 20 | 3 | 29 | 0.194 | 0.174 |
정수성 | 23 | 0.289 | 266 | 77 | 0 | 18 | 43 | 11 | 51 | 0.351 | 0.372 |
정수근 | 21 | 0.310 | 314 | 94 | 0 | 26 | 58 | 41 | 39 | 0.385 | 0.373 |
이종범 | 20 | 0.299 | 306 | 95 | 3 | 26 | 51 | 35 | 34 | 0.397 | 0.415 |
김남용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