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주연, 강수연, 이미나, 장정(왼쪽부터) | ||
그날 저녁, 로드랜드GC 클럽하우스엔 골프채 대신 핸드백을 들고 저마다 멋지게 성장을 한 골퍼들이 나타나 흥미를 모았다. 골프대회가 있기 전 전야제 형식으로 열린 만찬에 참석하기 위해 평소완 달리 의상과 헤어스타일에 잔뜩 신경을 쓴 ‘한국 낭자’들 때문이었다.
프로암대회 출전자인 신승남 전 검찰총장 옆에 앉아서 탁월한 입담으로 좌중을 웃긴 장정과 ‘필드의 패션모델’답게 검은색 원피스 차림으로 뛰어난 패션 감각을 선보인 강수연 등은 사진기자들의 집중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입담과 재치가 뛰어난 ‘첫 승 4인방’의 사연들을 들어본다.
첫 승 하고 가장 많이 변한 것 세 가지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대부분 비슷한 경험을 해서인지 내용들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장정(장): 많은 사람이 알아본다는 것, 그리고 아주 바빠졌다는 것, 마지막으로 주변 사람들을 의식하다보니 잠옷 입고 돌아다닐 수 없다는 게 좀 불편해요. 아, 참 그리고 난 우승하면 우승컵에다 맥주 따라서 마셔보고 싶었거든요. 그렇게 해보니까 맥주가 진짜 맛있더라구요.
이미나(이): 기자들 인터뷰 요청 횟수, 인사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점, 그리고 또 우승해야 한다는 기대감이 높아진 것 같아요.
김주연(김): 김주연은 당연히 잘 칠 거라는 기대감이 커졌구요, 그로 인해 스트레스가 쌓인다는 부분, 또 난 변한 게 없는 데 주위 분들이 많이 변했다는 점 등은 첫 승 이후 달라진 것 같아요.
강수연(강): 첫 승 하고 나면 모든 게 다 변할 것 같았는데 막상 하고 나니까 크게 변한 게 없어요. 아, 한 가지 있다면 우승을 해도 계속 배가 고프다는 걸 깨달았죠.
미국 생활하면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을 때가 언제였는지에 대해 질문했는데 이 부분은 각각의 사연들이 남달랐다.
김: 작년에 상금 랭킹에 들지 못해서 다시 Q스쿨(퀄리파잉스쿨)에 가야했을 때, 그땐 모든 걸 포기하고 보따리 싸서 한국 들어오고 싶었어요.
장: 미국 처음 가서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느꼈을 때 골프고 뭐고 그냥 돌아오고 싶었죠. 미국 가기 전 한 1년 정도 영어 과외를 받았거든요. 그런데 막상 미국에 딱 도착하니까 내 입이 얼어버렸어요. 도대체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 들을 수가 없는 거예요. 말 그대로 ‘쌀라쌀라’였죠. 하루는 호텔 예약을 하러 들어갔는데 난 내 얘기만 하고 호텔 직원은 뭔가를 나한테 열심히 설명하고, 서로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밖에서 기다리고 계시는 아버지한테 이렇게 말했어요. “아빠, 여기 방이 없대!” 하하.
강: 볼이 안 맞아서 너무 너무 힘들었을 때 당장 때려치우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어요. ‘내가 지금 한국에서 골프를 했더라면 돈도 더 많이 벌고 우승도 하고 대우도 잘 받으면서 생활하고 있을 텐데 뭐 하러 여기서 고생하고 있나’ 하는 갈등으로 인해 많이 괴로웠죠.
이: 미국 처음 가서 동계훈련을 받는데 마치 ‘창살 없는 감옥’처럼 느껴지더라구요. 외국생활이 처음이었고 혼자 연습하는데다 스윙 교정을 받기가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어졌죠.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게 현실이잖아요. 그래서 ‘창살 없는 감옥’이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첫사랑의 추억도 있을 것이다. 이미 이십대를 넘어선 터라 밝히기 어려운 추억들이 있을 것 같아 그 궁금증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미나와 김주연은 첫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남자친구가 없었다며 ‘오리발(?)’을 내민다. 반면에 장정은 너무나 재미난 추억담을 공개했다.
“중학교 때 남녀공학을 다녔거든요. 정말 좋아했던 친구가 있었어요. 골프하는 애들은 수학여행 안가는데 난 아빠한테 졸라서 수학여행을 갔을 정도였죠. 그 친구 보려고. 김민종씨랑 너무 비슷하게 생겼거든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그 친구가 군대에 갔다고 해서 면회까지 갔었는데 그때 너무 실망하고 말았어요. 전혀 자라지 않았더라구요. 중학교 때의 키가 그대로였죠. 거기다 너무 말랐어요. 완전히 나랑 반대의 상황이라 그림이 나오질 않는 거예요. 그때부턴 친구로만 생각해요. 호호.”
한편 강수연은 초등학교 때 아버지 친구의 아들을 좋아했는데 첫사랑보다도 짝사랑이었다는 게 더 정확하다고 털어놓았다.
미국에서 고생할 각오를 하고 마음을 다진 후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던 4인방이다. 그러나 현실로 부딪히는 생활은 상상 이상의 어려움과 숱한 난관들과 맞닥뜨려야 했다. 미국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를 물었다.
장: 올시즌 초에 코치가 목표가 뭐냐고 물어보더라구요. 그래서 골프장에서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우승 한 번 못해보고 그냥 웃기가 정말 어려웠어요. 다른 사람 웃는 거 쳐다보면서 남몰래 부러워하고 질투했던 내 자신이 참으로 한심해 보였던 지난 시간들이었죠.
강: 날 알아보는 사람들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어요. 한국에선 그래도 잘나가는 강수연이었는데 미국에 가니까 나란 존재는 별 볼 일 없는 무명의 골프 선수가 되더라구요. 심히 상처입고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어요.
▲ 지난 8월31일 로드랜드컵 매경여자오픈 전야제에서 맵시를 뽐낸 강수연 장정 이미나 김주연(왼쪽부터).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김: 아마추어를 오래 경험하지 못한 덕분에 프로에서 고생이 많았어요. 한국에서 프로 입문 후 제일 좋았던 성적이 7위였으니까요. 그런 이유로 한국에서도 힘들었는데 미국에선 더더욱 심했죠. 아마추어 시절이 좀 더 길었으면 미국에서의 골프도 훨씬 빨리 적응하고 편해졌을 거예요.
4인방 모두가 20대 중후반이다 보니 어느새 ‘결혼’이란 단어가 자연스레 떠올려지게 된다. 결혼이란 걸 화제로 삼자 갑자기 말들이 많아진다.
이: 결혼은 현실이잖아요. ‘단칸방에 살아도 행복하다’는 말은 거짓말인 것 같아요. 운동선수를 잘 외조해줄 수 있는 남자가 나타나면 좋겠어요. 남자친구요? 나만 빼놓고는 다 있을 걸요? 남자 만날 기회가 없는데 어떻게 연애를 하겠어요.
김: 나만 쫓아다닐 수 있는 남자를 만나긴 어렵겠죠? 결혼 후에도 떨어져 지내야 한다면 아예 (결혼)하고 싶지 않아요. 지난번 <일요신문>과 인터뷰할 때 밝혔잖아요. 독신주의자라고. ㅋㅋ
강: 지금은 결혼을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우승 좀 더 한 뒤에 생각해도 늦지 않을 것 같아요. 솔직히 말해서 내 입장에서 누굴 만난다는 건 그 사람을 너무 힘들게 하는 일이잖아요. 항상 떨어져 있어야 하고 내 스케줄에 맞춰야 하니까. 남자친구는 많은데 애인이 없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에요.
장: 브리티시오픈대회에서 우승하기 전까지만 해도 결혼은 안중에도 없었어요. 그런데 우승 후 인터뷰 때마다 결혼 얘기를 물어보셔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내 나이가 많긴 많더라구요^.^ 어느 방송에선 나한테 ‘중년 골퍼’라고 부르는 거예요. 어찌나 화가 나던지. 난 결혼해서 나랑 같이 다닐 수 있는 남자는 싫어요. 무능력해 보여서. 그렇다고 떨어져 사는 것도 싫고. 어떻게 해야죠?
개성이 강한 4인방한테 성형수술을 한다면 제일 먼저 고치고 싶은 부분이 어딘지를 물었다. 역시 장정은 이 질문에서도 기자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장: 쌍꺼풀은 이미 했잖아요. 또 한다면 지방 흡입이요.ㅋㅋ 뱃살을 집중적으로 빼야할 것 같아요. 어느 인터넷 게시판에 이런 글이 올라와 있는 걸 봤어요. ‘장정 선수, 운동하는 사람의 몸이 그게 뭡니까? 하마가 보면 친구하자고 하겠네요’라는 내용이었죠. 나 그 글 읽고 상처 깊게 받았답니다.
이: 볼살이 두툼한 편이거든요. 얼굴이 좀 갸름해 보이는 게 소원이에요.
강: 특별히 고치고 싶은 데 없어요. 내가 잘나서 그런 게 아니라 날 좋아해주는 팬들한테는 강수연의 고정된 이미지가 있는 거잖아요. 지금 이 얼굴에 복이 있어서 우승도 한 건데 이걸 고치면 그 복이 달아날 것 같아요. 난 지금 삶에 만족하고 있고 이대로 살고 싶거든요.
김: 치아교정이요. (박)세리 언니가 자기가 수술받은 곳에 가서 쌍꺼풀 수술을 하라고 권유했는데 겁이 나서 마음의 결정을 못 내렸어요. 일단 치아부터 정리해 놓은 다음 눈도 생각해보려고요.
마지막 질문이 남았다. LPGA에서만이 아닌 인생의 목표가 무엇인지 거창하게 물어봤더니 다들 ‘거창한’ 대답을 쏟아냈다.
강: 세계 상금 랭킹 1위요.
이: 시합도 중요하지만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쳐 보고 싶어요. 그 전에 LPGA 명예의 전당에 이미나란 이름을 올려놓고 싶구요.
장: 쉽게 포기하지 않는 선수가 돼야 해요. 지난번 시합(웬디스챔피언십)에서 나인 홀을 돌았는데 1위 선수가 17언더고 내가 13언더를 쳤거든요. 그때 캐디한테 1위는 포기해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가 엄청 혼났어요. 캐디 왈, “앞으로 9홀을 더 돌아야 하는데 벌써부터 시합을 포기하냐?”며 뭐라고 하더라구요.
김: 세계 최고 골퍼가 되고 싶어요. 너무 빨리도 아니고 너무 늦지도 않은, 적당한 시기에 그 목표를 달성하고 싶어요. 그리고 난 할머니가 돼서도 골프 치고 싶어요. 내가 좋아하는 세리 언니랑. 아마 나이가 들면 세리 언니한테 이렇게 말하겠죠? “형님, 공이나 한번 때리러 가시죠. 큭큭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