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월1일 덴마크와의 칼스버그컵 결승전, 수비수 유경렬이 덴마크 선수와 공을 다투고 있다. 경기 결과는 1-3 패배였다.. 로이터/뉴시스 | ||
그리스와의 대전은 전·후반의 주도권이 극명하게 교차되는 가운데 디펜딩 유럽챔피언은 그들 나름대로의 체면을, 우리는 아드보카트 이래 처음으로 선제골을 먹은 상태서 가뿐하게 전세를 뒤집는 침착함을 학습했다.
다음 핀란드전은 거의 완전히 압도한 게임이었으며 한두 차례의 기습에 수비라인이 무너지는 모습은 보였으나 현재 실험중인 포백 시스템을 두고 나무라기에는 지나친 감이 있다. 후반에 추가골을 올릴 수 있는 많은 기회가 있었으나 어쩐 일인지 모든 슈팅이 골키퍼 정면으로만 빨려 들어갔다.
칼스버그컵 1회전은 98 월드컵 3위의 크로아티아라고 하지만 슈케르, 보반, 복시치, 야르니 등 90년대 황금 세대 이후에 아직 확실한 조직력을 갖추지 못한 팀이었기에 생각보다 쉽게 무너뜨릴 수 있었다. 원래 크로아티아는 네덜란드나 브라질처럼 수비를 경시하는 풍조가 있어 페널티 박스 침투가 비교적 용이한 팀임에는 틀림이 없다. 선수간 간격이 너무 벌어져 있는 데다 잦은 패스 미스와 집중력 약화는 우리 팀에 다양한 공격루트를 개발하면서 미드필드를 만방으로 유린케 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두 번의 득점이 모두 기습(중거리슛, 골킥의 효율적인 원터치 처리)에 의한 것이라 팀 전체의 전술적 네트워크(collective system)의 운용으로부터 도출된 것이 아니긴 하지만, 경기 전체를 지배(dominance)하고 난 다음의 자연스러운 결과인지라 우리 팀의 칭찬에 인색할 이유는 없다.
칼스버그컵 결승 덴마크와의 접전은 이기고 있는 상태에서 경기를 우리 페이스대로 끌고 가지 못하는 노련미 부족을 지적할 수 있겠다. 또한 포백라인 선수간 간격유지에 실패하면서 커버플레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틈을 타 덴마크 특유의 기습적 침투와 체력전에 밀리는 양상을 자아냈다. 처음과 끝을 패배로 장식한 것이 찜찜하긴 하나, 본선을 앞두고 취약과목을 복습하는 계기를 발견했다는 점에서는 좋은 약이 된다.
그럼 다소 딱딱한 감이 들지만 이번 중동, 홍콩 전지훈련의 성과를 세부적으로 살펴보자.
▲ 아드보카트 감독 | ||
다음, 다양한 공격루트의 개발 측면에서 창조적인 미드필드 운용은 무엇보다 중요한 전제 요건이 된다. 이호와 김남일의 수비형 미드필더 경쟁, 거기에 백지훈, 김정우, 김두현이 번갈아가며 그리는 트라이앵글은 생각보다 안정적이고 파괴력 있는 중추를 구축했다. 다만 센터포워드 바로 뒤를 받치면서 벌칙구역 근처를 휘젓는 기동력이 다소 아쉽다.크로아티아전서 세 번의 득점 기회를 놓친 백지훈은 그나마 강한 공격 성향을 보여준 것으로 해석된다.
셋째, 아드보카트의 경기 전개 방식은 히딩크보다는 훨씬 공격적이나 기본적으로는 기술, 스피드, 전술간 균형을 유지하려는 절충주의로 이해된다. 총공격 또는 극단의 수비형태를 전개한 바도 없고 역습에만 의존한다든가 윙들의 크로스에 의한 요행을 특별히 강조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고집스럽게 중앙을 뚫어 완벽한 찬스를 포착하겠다는 전술 시스템의 연마를 주문하는 것도 아니다. 유연한 패스워크를 주축으로 한 ‘압박과 지배’의 철학에 철저하면서 꽤 다양한 양태의 공수 운용을 구사했다는 점이 최근의 경기에서 매우 즐거운 대목이었다.
마지막으로 지극히 당연한 분석이지만 해외파를 제외하고도 상당한 전력을 과시했다는 점이다. 과거 쿠엘류나 본프레레 때는 국내파들이 ‘어차피 우리는 해외파가 오면 밀려 날거야’라고 자포자기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대표팀의 국내파 신진세력들은 전혀 그러한 위축도 선배에 대한 배려(?)도 없다. 따라서 해외파라고 붙박이 보직을 장담할 수 없게 돼 있다. 강도 높은 경쟁을 통한 베스트 선정이라는 측면에서는 대단히 바람직한 긴장의 연속이다.
칼스버그컵 결승에서 덴마크를 물리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이번 전지훈련은 좋은 점수를 줘도 무방할 것 같다. 다만 한 가지. 유럽챔피언 그리스나 핀란드, 덴마크는 월드컵 본선 주자가 아니며, 크로아티아가 맥을 못 추었지만 주전이 많이 빠진 상태로 본선의 그 팀이 아닐 것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이번 훈련 중 매 경기의 승패를 별도로 해부하여 희비를 동시에 느낄 필요는 없으며, 어디까지나 본선을 앞둔 조직력 강화의 워밍업이었다는 점을 명심하자.
전 축구대표팀 언론 담당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