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일이 큰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와 달리 지방 선거는 이른바 풀뿌리 정치요, 동네잔치다. 마을 잔치에서 환영받는 것은 카리스마나 미모가 아니다. 모두가 어깨를 들썩일 수 있는 구성진 노래나 걸쭉한 입담이 환영받는다. 바로 트로트 가요다.
신세대 트로트 가수 박현빈 씨는 최근 선거 덕분에 한국 기네스에 이름을 올렸다. 자신의 노래 ‘빠라빠빠’가 이번 지방 선거에서 무려 685명의 후보자들이 로고송으로 사용하면서 선거부문 기네스 기록을 세운 것. 박 씨는 자신의 노래 음원을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수많은 후보자들에게 골고루 전달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노래를 선택한 685명의 후보자를 위해 열흘 밤을 새가며 직접 노래를 부르는 열성을 보였다. 한국기록원 측은 “선거 로고송은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기 때문에 세계 기록과 상관없이 한국 기록으로 등록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로고송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당연히 ‘어머나’ ‘짠짜라’의 장윤정 씨다. 태진아 씨의 ‘사랑은 아무나 하나’도 ‘의원은 아무나 하나’식으로 바꿔 불러 인기를 모았다.
이처럼 트로트가 선거판에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가요 관계자는 “트로트는 록과 비트, 빠른 댄스가 골고루 포함돼 있어 분위기를 돋울 수 있다”며 “뿐만 아니라 누구나 어렵지 않게 따라할 수 있고 가사도 쉽게 바꿔 부를 수 있어 정치인들이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부 후보자는 해당 가수에게 저작권료를 지불하지 않고 로고송을 만들기도 해 향후 분쟁의 불씨를 낳고 있다.
트로트 가수와 정반대의 처지에 빠진 가수도 있다. ‘오 필승 코리아’로 유명한 윤도현밴드다. 최근 본의 아니게 특정 정치권의 로고송을 불렀다는 오해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은 ‘오 필승 코리아’를 로고송으로 채택하고 유세장 등에서 선보였다. 이 노래는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저작권 쟁탈전을 벌인 끝에 결국 열린우리당이 가져가게 된 에피소드가 있다. 이에 맞선 한나라당은 록비트 버전으로 편곡한 애국가를 로고송으로 선보였다. ‘한나라당 기호2번 한나라 한나라, 선진한국 지켜내어 길이 보전하세’, ‘민생정치 책임정치 충성을 다하여 국민들의 희망정당 2번 한나라당’ 등의 가사를 지닌 이 곡은 빠른 록비트로 연주되어 윤도현밴드의 ‘록버전 애국가’를 연상시킨다. 아무런 사전지식이 없는 유권자들에게는 윤도현밴드의 노래로 오해받을 소지가 다분한 셈이다.
그러나 ‘오 필승 코리아’는 현재 윤도현밴드의 손을 떠난 상태다. ‘오 필승 코리아’의 저작권은 윤도현밴드가 아닌 작곡가에게 있기 때문이다. 정당과의 사용 계약 역시 윤도현이 아닌 작곡가와 직접 체결됐다. 윤도현밴드의 소속사 다음기획은 “우리는 곡의 사용여부를 결정할 위치가 아니다. 사용금지를 요청할 권리도 없는 상태”라고 안타까워했다.
한나라당의 ‘록버전 애국가’에 대해서는 더욱 손을 쓸 수 없는 상태다. 애국가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가 쓸 수 있는 곡이기 때문에 정치권에 대해 윤도현밴드가 항의할 방법이 없기 때문. 윤도현밴드 관계자는 “정치권이 설령 기술적으로 우리 노래와 비슷하게 편곡했다 하더라도 항의할 이유가 없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따라서 윤도현밴드로서는 현재 정치권과 거리를 두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마침 윤도현밴드는 월드컵에 올인한다는 계획이다. 다음기획은 “월드컵을 앞두고 최선의 공연을 위해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종원 스포츠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