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 대표팀 클린스만 감독. 그의 자질에 대한 논란이 월드컵을 얼마 남기지 않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사진 로이터/뉴시스 | ||
대 이탈리아전 이후 항상 침착하고 품행 방정하던 독일 언론들이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을 잘라야 된다고 들끓기 시작했고 독일월드컵 조직위원장인 베켄바우어마저 노골적인 비판을 해댔다.
클린스만 감독에 대한 비판과 비난은 이탈리아전 결과가 나오기 이전부터 계속되어 왔었다. 감독으로서의 경험이 전무한 데도 독일 국가대표팀을 맡을 수 있느냐하는 것, 어떻게 미국 캘리포니아에 살면서 아르바이트 삼아 간간이 날아와 대표팀을 지도할 수 있느냐는 것, 그리고 이름 있는 베테랑 선수들을 배제하고 무리하게 대표팀의 평균 연령을 낮추고 있다는 것 등으로 요약된다.
이에 클린스만은 자신은 앞서 거쳐 간 다른 감독들과 달리 코치로서의 전문 자격증이 있다는 점을 부각시켰고 미국에서도 위성방송을 통해 유럽 경기들을 항시 볼 수 있는 인터넷 시대에 반드시 독일에서만 살아야 되느냐고 되받아쳤다. 더욱이 선수 기용에 대해서는 자기가 전권을 위임받았으니 쓸데없는 소리 말라고 기자들과 일반인들의 협박을 일축했다. 이 양반 잘 생기고 성격 좋게 보이지만 고집이 이만저만 아니다. 앞의 두 가지 사항은 그렇다 치더라도 선수 기용에 관한 부분은 여전히 논쟁이 끊이질 않고 있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베테랑 수비수 뵈른스와의 불화는 그 대표적인 예. 클린스만은 동료 선수들을 비난하는 뵈른스의 행위는 팀워크의 문제상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고 판단, 뵈른스를 결코 쓰지 않겠다고 잘라 말했고 뵈른스는 이에 질세라 클린스만을 잘난 체하는 거짓말쟁이라고 몰아붙였다. 이탈리아에게 1 대 4로 지면서 ‘역시 경험이 충분한 뵈른스가 있어야하지 않을까’ 하는 여론이 득세하다가 대표팀이 다시 미국을 격파하자 ‘괜찮겠네’ 라는 분위기로 일시 반전된 바 있었다.
그런데 독일의 가장 권위있는 축구저널 키커(Kicker)지가 뵈른스를 3월의 선수로 선정(물론 공개 투표에 의한 결과)하자 다시 묘한 갈등과 논박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 기사 제목은 ‘클린스만만이 뵈른스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라고 의미를 잔뜩 담아서 표현했다.
▲ 올리버 칸(왼쪽), 옌스 레만 | ||
레만은 그동안 칸의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하다 드디어 월드컵 대표팀의 수문장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이로써 전 세계 축구팬들의 큰 관심을 끌었던 두 동갑내기의 치열한 콜키퍼 주전 경쟁은 결국 레만의 승리로 끝났다.
일단 클린스만은 미국전을 계기로 자신감을 되찾으면서 자신을 비판했던 여러 세력들을 향해 직설적인 불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지난 이탈리아전 이후 위기 때에는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베켄바우어 조직위원장과 합석한 자리에서 클린스만을 신임한다는 말로 감독 경질 가능성이라는 혼란스런 분위기를 진정시키는 역할을 할 정도로 전국이 어수선했던 게 사실이다.
우리가 2002년 월드컵 본선 무대를 준비할 무렵에는 히딩크 감독에 대한 불신과 의혹이 하나하나 해소되면서 대표팀에 대한 신뢰가 급피치로 올라갈 때였다. 그러나 독일은 이제 두 달 남짓 남은 상태에서 감독의 기본적인 자질을 평하는 논의를 다시 속개하고 있다는 점이 대조적이다.
독일 현지 상황을 알리는 국내 언론의 기사는 대부분 월드컵 관계자들에 대한 인터뷰를 통해 표준화되고 있어 이곳의 실제 썰렁한 분위기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 모두들 독일은 개최국이니 잘 할 것이고 결승에서 브라질과 만나 2002년의 설욕전을 치른다는 다소 과장된 레토릭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나 들어 보라. 테오 츠반치거독일축구협회장이 독일이 8강에만 가면 감독을 유임시키겠다는 매우 겸손한 발언을 하는가 하면 필자가 몇 달 전 독일로 이사했을 때 짐을 옮겨준 8명의 이삿짐 센터 직원들은 하나같이 4강은 힘들다고 고개를 흔들 정도이니 이번에 독일이 어느 정도의 성적을 낼 것인지는 대충 짐작이 된다.
내가 근무하는 베를린 대사관의 축구광 중 한 명은 개막전인 코스타리카전이 정말 걱정이라고 한숨을 쉬고 있고 우리 이웃의 몇몇 일반 전문가들은 괜히 2006년에 개최해서 마음 고생이 심하다고까지 난리다. 이 사람들이 비전문가라서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그러면 전문가들은 2002년 개막전에서 프랑스가 세네갈에 질 줄을 누가 알았으며 그 위대한 프랑스가 단 한 골도 못 넣고 조 꼴찌로 보따리를 쌀 것을 예측이나 했었나. 한국이 4강까지 갈 줄 어느 도박사가 베팅했으며 유로2004에서 그리스가 우승할 거라고 장담한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는지 들어 보자.
현대사회가 불확실성의 시대라 불려 온 것처럼 현대축구 역시 찰나에 의해 결정되는 불확실성의 시공간에 위치해 있다. 필자는 월드컵 개최국이 이렇게 불안에 떨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본선에서 단 한 번의 승리도 올리지 못한 일본과 한국도 개최 직전엔 살기등등 하지 않았던가. 어쩌다가 독일이 이런 지경까지 됐나.
클린스만의 독일대표팀이 지금 필요한 것은 기술 분석이 아니라 우리 ‘붉은악마’의 굿거리와 같은 신나는 분위기 업 한판이다.
2002월드컵 한국대표팀 미디어 담당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