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대구를 찾은 기자에게 50대 이 아무개 씨가 한 말이다. 새누리당 공천이 속속들이 확정되고 있던 대구 지역에서는 공천을 두고 말들이 무성했다. <일요신문>이 만난 대부분의 시민들은 공천 결과에 비판을 쏟아냈다. 대구 지역의 ‘진짜 민심’을 들어봤다.
김부겸 전 의원이 출마한 대구 수성구갑.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3월 중순임에도 대구는 그 명성대로 뜨거워지고 있었다. 날씨만이 아니다. 대구 지역은 오는 총선에서도 가장 ‘핫’한 지역이다. ‘친박의 성지’답게 ‘진박 마케팅’이 기승을 부렸다. 박근혜 대통령과 얼마나 친한지를 두고 친박, 진박이라고 어필하거나 상대방을 가박(가짜 친박)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이에 대한 시민들의 생각은 어땠을까. 대구 북구에서 만난 20대 권 아무개 씨의 말이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짓이다. 20대는 정치에 관심도 크게 없지만 요즘 후보들 보면 없던 관심마저 사라지게 만든다.”
진박으로 꼽히다 공천까지 받은 정종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이 출마한 동구을 지역에서 만난 50대 이 아무개 씨도 불만은 마찬가지였다.
“공천이 이래서야 되겠나. 정종섭이 대구에서 한 게 뭐가 있다고 공천을 받나. 난데없이 대구 찾아오더니 진박이라고 해서 공천 주는 건 대구 사람 자존심을 꺾는 일이다. 대구 사람들이 자존심이 아주 세다. 이번 선거에선 새누리당이 아니라 무소속을 찍을 수도 있다.”
물론 비판만 있지 않다. 염매시장에서 만난 50대 정 아무개 씨는 새누리당의 공천을 적극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정운영을 야당이 발목잡는 것도 모자라 여당에서도 발목 잡은 의원들이 많았다. 이번 선거에서 대구 지역만큼은 확실하게 박근혜 대통령을 밀어줘야 앞으로 국정운영이 원활할 것이다.”
대구 지역 여론을 세밀하게 관측하고 있는 지역 언론 기자는 이번 선거가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측했다.
“(새누리당 공천 파동 때문에) 수성갑에 김부겸, 수성을에 정기철 후보는 가능성이 있어보인다. 지역 언론사들도 이번엔 야당으로 넘어갈 것 같다는 기사를 많이 쓰는 것 같다. 물론 공천 파동도 있었지만 ‘새누리당이 해준 게 뭐가 있나’ ‘찍어봐야 쓸모 없다’는 여론이 많아지고 있다. 한번도 보지 못한 신기한 현상이다.”
설왕설래가 많은 대구 지역에서도 단연 화제는 유승민 의원의 공천 여부였다. 기자임을 밝히면 많은 시민들이 역으로 ‘유 의원이 공천 받을 것 같느냐’는 질문을 하기도 했다. 동대구역에서 만난 30대 송 아무개 씨의 말이다.
“새누리당 공천을 보면 다른 후보들은 속속 확정이 나는데 유승민 의원 공천 발표만 안 나오고 있다. 주변 사람들끼리도 만나면 언제 공천을 받을지 이야기를 한다. 자를 거면 빨리 자르고, (공천을) 줄 거면 빨리 줄 것이지 시간을 질질 끌어서 오히려 말만 무성해지는 것 같다.”
여론의 바로미터라는 많은 택시기사들도 ‘친유’ 성향을 보였다. 택시기사 60대 김 아무개 씨는 “유승민 의원이 공천을 못 받고 있는 것 보고 엄청 화가 났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해도 너무한다고 생각한다. 2008년 선거에서 친이계 학살 당시 박 대통령이 탈당해 친박연대로 출마한 후보들에게 ‘살아서 돌아오라’는 말을 했던 때를 돌아봤으면 좋겠다. 생각이 다르고, 의견이 다른 것을 배신이라고 규정하는 게 이해가 안 된다.”
이 택시기사에게 기자가 “그래도 대구는 박 대통령 좋아하지 않느냐”라고 묻자 곧바로 “누가 좋아한다 그래”라며 벌컥 화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대구 지역에서 야당이나 무소속 후보들 얼마나 선전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는 대부분 확신을 갖지 못했다.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근거는 바로 ‘습관’이었다. 지역 언론사 기자의 분석이다.
“유 의원은 무소속 출마하면 당선될 것 같다. 또한 대구 지역에 출마한 무소속 후보 중 2명 정도는 당선될 것 같다. 그럼에도 대구라는 지역의 특성 때문에 선거 결과를 쉽게 예측하기는 힘들다. 김부겸 후보가 아무리 여론조사 이긴다고 해도 투표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지난 2014년 선거에서 권영진 시장을 찍었다는 60대 전 아무개 씨는 “습관이란게 무섭다. 당시 후보로 나온 김부겸 전 의원을 찍을까 고민했지만 정작 투표장 가니까 새누리당 찍게 되더라”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과연 20대 총선에서 대구 유권자는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선거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대구 민심이 요동치고 있다.
대구=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