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3일(한국시간) 안정환(배번 9)이 역전골을 넣은 뒤 이호(17번)와 조재진(19번)이 뒤엉켜 환호하고 오른쪽에서 김남일(5번) 이천수(14번) 박지성(7번)이 달려오고 있다. 연합뉴스 | ||
독일 월드컵의 최종 목적지를 향해 힘찬 항해를 하고 있는 아드보카트호에 대한 궁금증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토고전 승리로 월드컵 열기가 더욱 뜨거워지면서 한국대표팀과 관련된 다양한 스토리와 추측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다. <일요신문>이 코칭스태프를 비롯, 대표팀 관계자들의 설명을 토대로 그 궁금증들을 풀어봤다.
▶베스트 11의 ‘허무’
토고전의 ‘뚜껑’이 열리기 전 기자들의 최대 관심사는 누가 ‘원톱’으로 출전하느냐 하는 점이었다. 대표팀 훈련 과정을 종합해 보면 조재진의 선발이 가장 유력했다. 토고전 전날 믹스트 존에서 만난 조재진의 얼굴은 밝았다. 선발 출전에 대한 기대를 한껏 부풀리면서도 선수 입장에서 이런저런 단언을 할 수 없기에 조심스런 전망만 내놓을 뿐이었다.
경기 당일 기자들은 경기 시작 1시간 전에야 발표되는 베스트 11 리스트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는데 한 스포츠 신문에서 ‘조재진을 원톱으로 한 베스트 11 확정’이라는 기사를 미리 내보냈다는 게 알려졌다. 코칭스태프 외엔 전혀 알 수 없는 베스트 11이 어떻게 기자에게 전달될 수 있었을까. 그 기자의 설명에 의하면 선수의 에이전트를 통해 베스트 11 정보를 입수했다는 것이다.
이게 가능한 일일까. 언론 담당관인 이원재 부장은 ‘불가능하다’고 못 박았지만 선수 에이전트가 정보를 줬다는 말에 ‘선수들 입 단속을 시켜야겠다’며 불편한 감정을 노출했다.
토고전이 시작되기 전 경기장 근처에서 만난 박지성의 아버지 박성종 씨도 이미 베스트 11을 꿰고 있었다. 아침에 박지성과 전화 통화를 하면서 알게 됐다고 했다. 앞으로 경기 시작 직전에야 알려지는 베스트 11은 더 이상 무의미한 시간 끌기가 될 것 같다.
▶이호 데뷔전의 ‘배후’
토고전 전날 프랑크푸르트 스타디움에서 적응 훈련을 마치고 나온 김남일은 “비로소 월드컵이 실감난다”면서 2회 연속 월드컵 출전에 대한 기대를 한껏 드높였다. 선발 출전에 대해 자신은 없었지만 어떤 상황이든 감독의 지시에 따르겠다는 각오도 밝혔다. 그러나 주전은 김남일이 아닌 이호였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16강 진출의 고비로 점찍은 토고전에서 왜 경험있는 김남일 대신 이호를 선발로 내세웠을까.
이에 대해 독일 현지에서 대표팀 선수들을 독려하고 있는 대한축구협회의 가삼현 총장은 “핌 베어벡 코치에게 물어보니 김남일의 몸이 90분을 뛸 상황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면서 “아마도 후반전 팀이 어려운 상황에 투입할 카드로 남겨둔 것 같다”고 해석했다.
경기 후 이호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엇갈렸다. 그러나 이호는 월드컵 데뷔전에서 승리한 데 대해 들뜬 표정으로 “4년 전 월드컵을 TV로 보면서 과연 나도 저 자리에 설 수 있을까 싶었다. 경기 내용보다도 월드컵 데뷔전을 치른 데 대해 의미를 두고 싶다”며 만족스런 소감을 밝혔다. 반면에 후반전에 교체 투입돼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준 김남일은 믹스트 존 인터뷰를 거부하고 곧장 선수단 버스에 올라탔다.
▶한순간에 날아간 ‘포백’
아드보카트 감독은 월드컵에서 포백 대신 스리백으로의 전환을 꾀했다. 그동안 대표팀을 맡은 이후 줄곧 포백으로 전술 훈련을 했던 그가 월드컵 직전에 포메이션을 변화시킨 가장 큰 이유가 뭘까.
핌 베어벡 코치에 의하면 가나와의 평가전 이후 아드보카트 감독의 전술이 불가피하게 바뀔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개인기와 스피드가 뛰어난 G조 상대팀들의 공격을 무력화시키려면 포백보다는 스리백이 더 안정적이라고 판단했던 것.
많은 기자들이 이 부분에 대해 의아함과 걱정을 나타냈지만 코칭스태프에선 이미 K-리그에서 스리백을 경험한 선수들이 많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로이터의 피터 루더포드 기자는 토고전 이후 “아드보카트 감독의 갑작스런 포메이션 변화로 한국 특유의 색깔이 나타나지 않았다”면서 “조직력과 투지가 실종된 듯 했지만 프랑스전부터는 한국적인 플레이가 살아날 것으로 기대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돌아오지 않는 ‘체력’
월드컵이 열리기 전까지만 해도 대표팀 선수들의 체력 회복에 대해 의혹에 찬 시선을 보낸 게 사실이었다. 월드컵 시작 전까지 많은 이동 거리를 소화한 데다 독일의 무더운 기후 등이 태극전사들에게 심한 부담으로 전해질 수 있다는 예상이었다. 핌 베어벡 코치, 김현철 주치의 등은 “지금 계속 올라가고 있는 상태다. 프랑스, 스위스전에는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면서 자신감을 나타냈다.
체력의 중요성이 새삼 강조되는 이유는 수비할 때 압박의 강도에 차이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특히 프랑스는 선수들 개개인의 기량면에서, 스위스는 조직력에서 우리보다 한수위로 평가되는 터라 체력이 어느 정도 회복되고 완성되느냐에 따라 경기 결과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핌 베어벡 코치는 체력과 정신력이 결국은 자신감으로 연결된다고 풀이했다. “설령 프랑스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고 해도 스위스전이 남았다. 토고전 승리 이후 자신감이 한층 업그레이드됐기 때문에 오히려 쉽게 풀어갈 수 있다. 부담이 덜한 경기는 체력적인 면에서도 도움이 된다. 지금까지가 80%였다면 남은 경기는 100% 이상의 체력을 발휘할 것이다.”
▶가족 초청의 비밀
아드보카트 감독은 토고전 이후 선수들에게 24시간 자유 시간을 주면서 숙소에 가족들을 초청해도 된다고 발표했다. 단 같이 자는 건 허용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붙었다. 베르기시 글라드바흐에 위치한 슬로스 벤스베르크 호텔에 선수들을 만나기 위해 찾아간 가족들 중 관심을 모았던 부분은 결혼한 안정환과 최진철이었다. 다른 기혼자들은 가족들이 아예 독일에 오지를 않았지만 두 선수의 가족들은 독일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에 만남이 가능했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이걸 염두에 둔 것일까. 한국에선 가족들과의 동침을 허락했지만 독일에서의 만남은 ‘얼굴만 보는 것’으로 못을 박았다.
이에 대해 다양한 추측들이 난무했는데 대표팀 관계자의 말을 종합해 보면 월드컵을 앞두고 부부 생활을 하는 것이 경기력에 지장을 줄 수도 있다는 아드보카트 감독의 생각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했다.
재미있는 건 같이 자진 못해도 다음날 아침 식사를 같이 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다. 벤스베르크 호텔은 이미 방이 다 차서 협회 관계자들도 인근에 숙소를 정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가족들이 따로 방을 얻어서 지낼 수는 없는 일. 도대체 아드보카트 감독은 다음날 아침 식사를 같이 해도 된다는 조건을 왜 붙였을까. 이에 대한 대표팀 관계자의 해석이 흥미롭다. “알아서 하라는 것 아니겠나. 공식적으론 허용 못하지만 적당히 알아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라는 뜻인 것 같다.”
쾰른=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