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을용타’를 부탁해 많은 고민 끝에 K-리그로 복귀한 이을용은 “이을용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그의 묵직한 플레이를 기대해본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그런 그가 지난 7월 20일 FC 서울 입단 기자회견에 나타났다. 보도자료에 의하면 ‘돌아온 튀르크 전사 이을용 FC 서울 전격 입단’이었다. 기자회견 중 뜨거운 조명 빛에 땀을 비 오듯 흘렸던 이을용. 그를 다음날 FC 서울 훈련장인 구리 챔피언스파크에서 만났다.
월드컵과 관련된 얘기는 가급적 꺼내지 않으려 했지만 월드컵 이후 처음으로 속마음을 털어놓는 자리라 그런지 그도 기자도 이미 과거가 된 월드컵 스토리에 조금씩 목소리를 높이며 흥분 지수를 느껴갔다.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축구 인생의 꿈이었던 프리미어리그를 포기하는 것도 그렇고 끝까지 자신을 원했던 터키 트라브존스포르와의 재계약에 마침표를 찍은 것도 그렇다. 프랑스와 독일 프로팀의 구애를 무시한 채 한국으로 복귀하기까지 이을용은 ‘번민의 바다’에 빠져 지냈었다.
FC 서울 유니폼을 입게 된 사실이 알려지자 일부 팬들은 ‘실패한 유럽파’로 폄하하기도 했지만 이을용은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 복귀를 결정하면서도 이런 시각을 가장 염려했던 그였다. 그러나 진실이란 단어에 희망을 버리지 않은 덕분에 이을용의 결정은 후회와는 거리가 멀었다.
‘공식’이란 타이틀에서 벗어나 모처럼 이을용과 여유있게 인터뷰를 나눴다.
―어제 입단 기자회견에서 FC 서울로 복귀하게 된 배경을 밝혔지만 여전히 진짜 속사정이 따로 있는 게 아니냐는 시각이 많아요.
▲진짜 속사정이요? 제가 프리미어리그 진출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는 건 아시죠? 진짜 그랬어요. 월드컵 전까지만 해도 도장만 찍으면 될 만큼 완벽한 상태로 계약이 진행됐었죠. 그러다 기왕이면 월드컵 때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그 다음 계약해도 늦지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영국 쪽 에이전트들도 마찬가지였구요. 그런데 월드컵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한 까닭에 이후 그 조건들이 큰 폭으로 수정됐어요. 한마디로 마이너스였죠. 이전 조건과 너무 차이가 나니까 결정을 못하겠더라구요. 굳이 이런 조건을 받아들이면서까지 그곳으로 가야 하나 하는 고민이 시작됐습니다.
선택의 폭이 컸다고 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트라브존스포르와의 재계약도 있었고 다른 리그에서의 콜도 기다렸다. 한국 복귀는 당시만 해도 생각지 못했던 카드였는데 3, 4일 만에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을용의 결심 때문이다. 고민 속에서 헤엄쳐 나온 이을용은 한국행을 결정했고 마침 그의 복귀를 원했던 FC 서울과 절묘하게 의견 일치를 봤다. FC 서울 외에도 그를 원한 팀이 또 있었지만 그는 친정팀을 원했다. 이을용의 해외 이적을 위해 몇달 간 영국에서 고생을 했던 에이전트 김양희 사장이 오히려 한국 복귀를 다시 생각해 보라고 만류하는 상황이 벌어졌는데도 이을용은 더 이상의 고민을 거부했다고 한다.
▲전혀요. 월드컵 이후 운동을 쉬어서 체력을 회복하려면 시간이 필요해요. 그 외엔 몸에 문제는 없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터키에서 뛰는 동안 참 서글펐어요. 한국에 중계가 안 되니까 이을용이란 선수 자체가 어디에서 뛰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더라구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운동하는 데 따른 외로움 쓸쓸함 등이 무척 컸습니다. 팬들에게 제 존재를 알리고 싶었어요. 이을용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구요. 그래서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자고 결론을 내린 거였죠.
―이상하게 2002년 월드컵 이후 대표팀과 인연이 없었어요. 감춰진 사연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쿠엘류 감독으로부턴 자주 호출을 받았었죠. 그러다 본프레레 감독과는 이상하게 꼬였어요. 2004년 10월인가? 독일월드컵 아시아2차예선 레바논전 이후 아드보카트 감독이 부임할 때까지 13개월 동안 대표팀에 들어가지 못했어요.
―이유가 뭐예요? 본프레레 감독과 무슨 문제가 있었나요?
▲많은 사람들이 저한테 본프레레 감독님과 싸웠냐고 물어보더라구요. 물론 싸운 선수들도 있지만 전 싸우지 않았어요. 그냥 본보기였다고나 할까? 레바논전을 앞두고 허정무 감독님(당시 수석 코치)이 게임 준비하라고 지시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선발 출전을 생각하고 있었죠. 그런데 경기 전날 이춘석 코치님이 오셔선 ‘을용아, 그냥 쉬었다 가야겠다’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허 감독님과 이 코치님이 절 라인업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도 본프레레 감독님이 고집을 꺾지 않으셨대요. 오히려 저에게 물어보시더라구요. ‘너 감독님과 무슨 일 있었냐?’하시면서요. 후보는 고사하고 명단에도 들지 못해 김동진이랑 관중석에 게임을 지켜보다가 그 다음날 새벽에 바로 터키로 출국했어요.
―독일월드컵 얘기 좀 해요. 물론 이미 지난 일을 놓고 왈가왈부하는 건 옳지 않지만 아직도 풀리지 않는 부분이 많아요. 팬들도 궁금해하구요. 선수 입장에서 이번 월드컵을 어떻게 봤나요.
▲솔직히 말해요? 한마디로 한국 선수들 플레이 너무 못했어요. 물론 감독의 지시를 따른 것이지만요. 토고전만 해도 선수들 대부분이 내려와서 경기를 했어요. 미드필드 위로는 올라갈 엄두도 못냈죠. 무조건 수비 위주였어요. 회한도 많고 아쉬움도 많아요. 기대가 너무 커서 그런가?
▲ 사진 =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의아해 했죠. 3, 4일 전부터 스리백으로 연습을 했다면 좀 달랐을 거예요. 아무리 익숙한 포메이션이라고 해도 계속 포백으로 훈련을 하다가 경기 전날 갑자기 포메이션을 바꿔버리면 선수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어요. 더욱이 월드컵이란 큰 대회였잖아요. 과연 될까? 싶었는데 전반전에 골을 먹더라구요. 우리가 이겨서 다행이었지만 만약 졌더라면 선수단 분위기가 엄청 달라졌을 거예요.
―프랑스전은 어떤 기억으로 남나요.
▲대학과 프로팀 경기? 좀 서글프더라구요. 너무 수준 차이가 나니까. 전반전에 골을 허용한 후 후반전부터는 선수들이 알아서 플레이를 펼쳤어요. 그러니까 좀 살아나더라구요. 전 정말 안타까웠던 게 벤치에 앉아 있는 선수들 중에서도 실력이 출중했던 선수들이 많았거든요. 정경호나 조원희, 김두현 등은 후반 조커로 얼마든지 활용 가능했고 분위기 반전 카드로도 적절했다고 봐요. 그런데 감독님은 아예 외면을 하시더라구요. 월드컵 기간 내내 뭔가 모를 답답함이 가득했어요. 이 답답함을 호소하고 싶은데 사람이 없는 거예요. (안)정환이나 (김)남일이, (이)영표랑 모이면 걱정만 늘어놨었죠.
이을용은 스위스전에는 선발로 못 뛸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러나 후반에는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갖기도 했다. 벤치에서 옆에 앉아 있는 선수들이 “을용이 형이 뛰어야 하는데”라며 더 안타까워했지만 이을용은 묵묵히 0-2로 지고 있는 스위스전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아드보카트 감독에 대한 원망이나 아쉬움이 있겠어요.
▲원망은 안해요. 누구 탓을 하면 뭐해요. 다 제 탓이죠. 제가 못한 탓이구요. 하지만 스위스전 끝나고 감독님이 인터뷰에서 K-리그 수준 운운하셨던 부분은 정말 서운하더라구요. K-리그가 뭐 어때서요? K-리그도 그만의 색깔과 특징이 있는데 K-리그 자체를 수준 없는 리그로 전락시킨 내용은 아주 아쉬웠어요. 어떻게 보면 전 이번 월드컵에 나가지 말았어야 했어요. 어차피 뛰지 못했을 거라면 그냥 팀에 남아 있었던 게 개인적으론 더 좋았을 거예요. 그런 점에선 아드보카트 감독님을 잊을 수가 없겠죠.
―2010 남아공 월드컵에 대한 기대가 남아 있나요?
▲무슨 말씀. 전 이번이 마지막 월드컵 출전이었어요. 4년 후면 한국 나이로 서른여섯 살인데 에이, 못 뛰어요. 아니 뛰라고 해도 안 뛰어요. 그냥 소속팀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FC 서울 유니폼을 입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어요. ‘난 용병이다’라고. 그냥 묻혀 가는 게 아니라 용병이란 인식을 갖고 K-리그에서도 좋은 모습 보여 드릴 겁니다.
운동이 하기 싫어 공사판을 전전하고 팀에서 도망쳐 나오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던 철부지 시절도 있었다. 좋은 스승들을 만난 덕분에 지금의 온전한 축구 선수가 됐다는 얘기를 듣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푸근해졌다. 그동안 이을용과 여러 차례 인터뷰를 했지만 오늘 만난 이을용이 가장 이을용다워서 반가웠다.
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