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주영 | ||
월드컵 직후 축구 선수들의 에이전트들이 집중 조명을 받았다. 모두 좋지 않은 일과 관련됐다. 박지성은 FS 코퍼레이션과의 계약 해지를 발표하고 새로운 에이전트사를 차리며 FS 코퍼레이션 측과 마찰을 빚었고 백지훈이 수원 삼성으로 이적하는 과정에서도 에이전트가 문제가 되었다. 안정환 또한 계약 관계였던 에이전트가 아내 이혜원 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에이전트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은 경우도 있고 이로 인해 현장에서 뛰는 다수의 에이전트들이 피해를 본다는 지적도 있다. 일부 선수의 일이 마치 모든 에이전트들 때문인 것처럼 비친다는 것. 일련의 사태를 통해 드러나고 있는 선수와 에이전트의 세계에 대해 알아본다.
박주영
독일 월드컵 직전 스포츠 하우스 소속이었던 박주영이 다른 에이전트와 손을 잡았다. 그 에이전트는 다름 아닌 스포츠 하우스에서 박주영의 전담 매니저로 활동했던 이동엽 씨였다. 박주영이 지난해 스포츠 하우스와 계약을 맺은 기간은 5년. 4년이나 계약 기간이 남아 있는 데도 불구하고 박주영 측이 스포츠 하우스에 계약 해지를 요구했고 스포츠 하우스는 일방적인 선수의 계약 파기에 대해 아무런 이의 제기 없이 선수를 이전 직원이었던 이동엽 씨에게 보내줬다.
이 문제는 에이전트들 사이에서 크게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선수가 박주영이었고 계약 기간이 4년이나 남아 있는 데도 일방적인 계약 해지 의사에 이전 소속사에서 백기를 들고 보내줬다는 부분을 쉽게 납득하지 못한 것.
이에 대해 스포츠 하우스의 한 관계자는 “선수 보호 차원에서 이기철 대표가 그냥 보내준 것”이라면서 “회사 내부에서도 나쁜 선례가 될 수 있으니 선수에게 일정 부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이 대표가 선수를 위해 조건 없이 관계를 끝내고 말았다”고 설명했다.
이동엽 씨는 박주영이 스포츠 하우스와 결별하기 전인 지난해 이미 회사에 사표를 냈었다. 대학원에서 공부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다 박주영 어머니의 연락을 받게 됐고 박주영이 이동엽 씨하고만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하자 고민 끝에 이기철 대표에게 상의를 했다고 한다. 이 대표는 순간적인 서운함, 섭섭함 등을 배제하고 직원들의 반발을 누르며 어려운 결정을 내린 것이다. 즉 이 대표 입장에선 선수(또는 선수 부모)가 더 이상 관계를 지속하기 싫다는 데 굳이 법률적인 문제를 거론하며 억지로 계약 관계를 끌고 가기 싫었던 것.
한편 이 대표와는 달리 스포츠 하우스 직원들은 이동엽 씨에게 묘한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동엽 씨가 사표를 쓰고 먼저 회사를 나간 부분에 대해서도 의심을 하게 됐던 것. 그러나 이 씨는 사표 쓰고 나올 때만 해도 더 이상 에이전트계에 발을 담글 생각이 전혀 없었다고 주장한다.
▲ 박지성 | ||
박지성이 에이전트사였던 FS 코퍼레이션에 계약 해지를 통보하고 JS 리미티드란 새로운 회사를 차린 부분에 대해선 어떤 시각으로 봐야 할까. 박지성은 이철호 대표와 FS 코퍼레이션이 아닌 이철호 대표 개인과 에이전트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더 이상 FS 코퍼레이션 측에선 박지성에 대한 권리 행사를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박지성의 법률 담당을 맡고 있는 송주연 변호사(법무 법인 온누리)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개인과의 계약과 법인 간의 계약은 별개의 주체로 보기 때문에 이철호 대표와 계약을 맺은 부분은 선수와 개인 간의 계약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FS 코퍼레이션은 이미 보도자료를 통해 박지성과 FS 코퍼레이션이 지난 2005년 1월 1일부터 2년간 독점적인 대리인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고 선수 측의 일방적인 계약 해지는 해지의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FS 코퍼레이션은 민·형사상의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양측의 분쟁은 진정 국면을 보이고 있다. 일단 FS 코퍼레이션은 이 문제가 법의 심판에 오르기 전에 서로 감정을 상하지 않는 선에서 협의를 진행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FS 코퍼레이션의 전용준 상무는 “이런 분쟁이 일어난다면 결국엔 선수가 다친다. 우리는 그걸 막기 위해서 협의를 통해 풀어갈 계획”이라면서 “FS 코퍼레이션과 JS 리미티드가 회사의 이익이 아닌 선수를 위해 무얼 할 수 있는지를 놓고 협의를 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 백지훈 | ||
FC 서울에서 수원 삼성으로 현금 17억 원(추정)에 트레이드된 백지훈은 7월 28일 현재 선수와 선수의 에이전트가 배제된 채 트레이드가 추진된 데 대해 크게 반발했다. 더욱이 FC 서울과 6개월의 계약 기간이 남은 상황에서 단행된 전격적인 트레이드라 선수가 받는 충격은 훨씬 컸다. 더욱이 오는 12월이면 FA로 풀려 이적료 없는 ‘자유의 몸’이 될 수 있는데 17억 원이란 이적료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이적시 발목을 잡힐 수도 있다는 게 문제였다.
여기서 크게 부각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 바로 수원 삼성에서 백지훈 이적과 관련해 고용한 에이전트사 FS 코퍼레이션과 백지훈의 전담 에이전트인 텐 플러스의 이동엽 대표와의 관계다. 백지훈 측이 감정을 폭발한 것도 자신의 에이전트조차 모르게 자신의 이적이 진행됐다는 사실이었다. 이동엽 대표는 선수를 이적시키는 게 에이전트의 중요 업무인 데도 불구하고 FS 코퍼레이션에서 자신을 배제한 채 FC 서울과 직접 협상을 한 데 대해 섭섭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FC 서울이나 FS 코퍼레이션 입장에선 비즈니스적인 관점에선 전혀 문제 될 게 없기 때문에 심정적으론 미안하지만 선수의 장래를 위해 트레이드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백지훈의 트레이드를 관심 있게 지켜봤다는 에이전트 K 씨는 “선수 에이전트만 모양새가 우습게 됐다”면서 “그러나 구단 입장에선 충분히 진행시킬 수 있는 문제다. 이 상황에서 선수 에이전트가 할 일은 옮겨가는 팀과의 원활한 협상을 통해 하루 빨리 선수가 운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동엽 대표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계속해서 선수를 설득하고 있다. 순전히 선수 입장에서 수원과 협상을 벌이고 있는데 일부에선 내가 이번 일을 통해 이익을 챙기려 하는 것처럼 오해를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에이전트
이번 취재에서 만난 에이전트 C 씨는 에이전트와 선수와의 관계에 대해 이런 설명을 했다.
“이젠 더 이상 선수와 에이전트가 형, 동생 하는 가족적인 관계가 될 수 없다. 철저히 계약에 의해서만 움직여야 되고 그렇게 해야지 소송이니 분쟁이니 하는 문제가 발생되지 않는다.”
C 씨는 에이전트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친동생처럼 아끼고 최선을 다해 보살피고 보호했던 선수가 하루 아침에 등을 돌리고 다른 에이전트를 찾아 떠날 때였다고 한다.
“뒤통수 맞는 심정이라고나 할까? 하여튼 그런 배신감이 들 때 에이전트 일에 회의를 느낀다. 선수들이 옛날처럼 순진하지 않다. 부모들도 마찬가지다. 결혼하지 않은 선수들은 여전히 부모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에이전트 일을 하면서 부모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C 씨는 모든 선수들이 다 그렇지는 않지만 스타 플레이어일수록 선수 가족들의 간섭이 심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또 다른 에이전트 L 씨는 “어떤 선수는 에이전트 계약을 맺었다고 자신이 스타가 된 양 착각할 때도 있다. 에이전트 계약을 맺은 선수들 중에는 당장 에이전트가 필요하지 않은 선수들도 많다. 그러나 에이전트가 있어야 뭔가 대접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선수들을 볼 때 답답함을 느낀다”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L 씨는 “요즘 에이전트는 에이전트 일보다는 매니저 일에 더 치중한다. 선수가 원하면 강남의 좋은 미용실도 알아봐 줘야 하고 물 좋은 술집도 확보해놔야 능력있는 에이전트로 인정받는다”면서 “태극마크를 달아 본 선수일수록 이런 현상이 심하다”며 자조 섞인 멘트를 남겼다.
선수와 에이전트의 끈끈한 우정을 감동으로 승화시킨 <제리 맥과이어>란 영화는 이젠 더 이상 현실에서 존재할 수 없는 시네마 스토리일 뿐이었다.
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