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4년 고건 당시 총리가 김수환 추기경을 총리공관으로 초청해 만났다. 아내가 독실한 불교 신자인 덕분에 고 전 총리는 불교에 대한 이해도 깊다고 한다. | ||
대권주자들도 마찬가지다. 종교생활이 어디까지나 사적인 영역이지만 공인인 대권주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종교에만 편파적이라는 오해를 받지 않도록 다른 종교에 대한 포용력을 보이기 위해 힘쓴다. 우리나라의 경우 세계적으로 드물게 가톨릭, 개신교, 불교 등 3대 종교가 서로 막강한 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대권주자들의 행보에 적잖은 영향을 끼친다. 오죽하면 정가에서 “내 종교는 ‘기불릭’(기독교+불교+가톨릭)”이란 얘기가 나돌까.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권주자들은 부부 간에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진 경우도 있고 한 종교 내에서도 여러 교회나 성당, 사찰을 돌아다니는 경우도 있다. 또 부단하게 다른 종교에 대해 우호의 손길을 내밀기도 한다. 자신의 종교에만 집착하다가는 자칫 타 종교로부터 섭섭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어 대권주자들이 ‘알아서’ 처신하는 것이다.
유력 대권주자들은 과연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고 신앙인으로서의 그들은 어떤 모습일까. 또 대권주자들은 다른 종교와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떻게 이미지를 관리할까. 대권주자들과 종교에 얽힌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자.
고건 전 총리는 25년째 신앙생활을 해오고 있는 개신교 신자다. 주일마다 서울 명륜동의 창현교회에서 예배를 드린다. 창현교회의 한 관계자는 “고 전 총리가 명지대 총장 시절부터 우리 교회에 나왔다. 그후 국무총리 때는 물론 총리에서 물러난 뒤에도 주일마다 빠짐없이 예배에 참석하고 있다”고 전했다. 고 전 총리는 이 교회의 권사를 맡고 있다. 교회 관계자들이 고 전 총리에게 장로를 맡아 줄 것을 권했지만 과분한 자리라며 본인이 정중히 거절했다고 한다.
창현교회에는 고 전 총리의 지인들이 많이 다닌다. 고 전 총리의 대표적인 씽크탱크인 ‘미래와 경제’의 대표인 이세중 변호사와 정경균 서울대 명예교수 등 ‘동숭포럼’ 멤버 몇몇도 이 교회를 함께 다닌다.
반면 부인인 조현숙 씨는 독실한 불교신자로 부부간에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다. 조 씨가 불교신자가 된 데는 시아버지인 고 고형곤 박사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고 박사는 서양철학을 전공한 학자로 말년에 불교에 심취해 <선의 세계>라는 책까지 썼다. 조 씨는 노환을 앓고 있던 시아버지를 보살피면서 자연스레 불교에 귀의했다고 한다. 조 씨는 법정스님이 창건한 서울 성북동의 길상사를 자주 찾는다. 고 전 총리 측은 “이런 사정으로 고 전 총리는 기독교 신자이지만 불교에 대한 이해도 깊다”고 전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대권주자 중 가장 두드러지게 신앙 활동을 하고 있다. 강남의 대표적인 대형교회 가운데 하나인 소망교회에서 장로를 맡고 있다. 이 전 시장은 시장직을 수행하면서도 주요 교회 행사에 단골로 참석했다고 한다.
이 전 시장은 소망교회가 생긴 지난 77년부터 다닌 ‘초창기 멤버’다. 이 전 시장의 부인과 형인 이상득 국회 부의장도 이 교회에 함께 다닌다.
▲ 지난 2004년 3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조계사를 찾아 극락전에서 108배를 올리고 있다. 전날은 교회와 성당을 찾아 참회기도를 드렸다. | ||
특히 불교계의 ‘눈총’이 심했다. 이후 이 전 시장은 불교계와의 불편한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공을 많이 들였다. 불교계 각 종단의 민원사항에 대해 행정적으로 적극 지원하는 모습을 보였고 올 초에는 조계종 총무원장인 지관 스님을 찾아 새해 인사를 하기도 했다. 또 ‘봉헌 발언’ 이후 일부러 유명 사찰을 찾아다니며 ‘불심 잡기’에 노력하고 있다. 실제로 이 전 시장은 지방행사가 있을 때는 새벽마다 인근의 큰 사찰을 찾아간다. 지난 5월 부산에서 초청 강연을 할 당시에는 삼광사, 범어사, 감로사 등을 돌며 아침 공양을 하기도 했다.
또 이 전 시장은 자신과 동향인 TK출신 불교계 인맥을 구축하는 데도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측근이며 불심이 깊은 정태근 전 서울정무부시장이 많은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교계의 시선에선 아직 냉랭한 기운이 감돈다. 조계종의 한 관계자는 “‘봉헌 발언’ 후유증이 신도들에게 여전히 안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 전 시장 측으로선 ‘불심 다잡기’가 향후에도 숙제로 남을 듯하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공식적’으론 종교가 없다. 가톨릭 재단의 중·고교를 다녔고 서강대 재학 시절엔 세례(세례명: 율리아나)도 받았지만 성당에 나가지는 않는다. 이는 어머니 고 육영수 여사의 영향이 컸던 탓으로 보인다. 딸인 박 전 대표를 가톨릭 재단의 학교에 보낸 것도 육 여사의 ‘배려’라는 후문이다. 육 여사는 본인이 불심 깊은 불자였지만 영부인이 되고 나서는 어느 한 종교에 기울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교회와 성당도 자주 찾아다녔다.
돌아보면 박 전 대표의 지난 행보도 어머니와 비슷하다. 한나라당 대표로 취임하던 2004년 3월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와 대통령 탄핵으로 당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위기에 처했을 때 박 전 대표는 하루는 교회와 성당을 찾아 참회기도를 하고 다음 날은 사찰을 찾아 108배를 드렸다.
▲ 지난해 6월 평양을 방문한 정동영 전 의장(왼쪽)이 북한의 광법사에 도착해 주지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가톨릭 신자인 정 전 의장은 통일부 장관을 그만뒀을 때와 당의장 직에서 물러났을 때는 절을 찾아 마음을 달랬다. | ||
한때 정치권 일각에서는 박 전 대표의 선덕화라는 법명이 신라 27대 선덕여왕(善德女王)의 이름과 같다는 점에서 ‘대권’과 연계해 해석하는 시각도 있었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도 개신교 장로회 신자다. 그러나 특정 교회를 정해놓고 다니지는 않고 수원의 여러 교회를 짬짬이 찾는다. 손 전 지사는 70년대 기독교 진영에서 민주화운동과 빈민운동을 하면서 신앙에 눈을 뜬 경우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 유학도 기독교 장학재단의 도움으로 다녀왔다. 그러나 손 전 지사가 교회만 다니는 것은 아니다. 주말이나 휴식이 필요할 때는 절에 들어가 하룻밤씩 묵기도 한다.
열린우리당의 김근태 의장은 종교가 없다.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개혁적인 신부, 목사, 스님들과 친분이 두텁지만 신앙을 가지지는 않았다. 뒤집어 보면 모든 종교와 가까운 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면 부인인 인재근 씨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다. 집 근처 창동성당에 다니고 있다. 김 의장이 투옥됐던 시절 새벽미사에 나가 남편을 위해 기도한 점을 들어 김 의장을 가톨릭으로 인도하려 했으나 김 의장이 끝까지 버텼다고 한다. 김 의장 측 한 인사는 “종교에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데 종교를 가질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재야운동을 하면서 알게 된 신부와 목사들의 권유도 많았을 텐데 아직까지 무교인 걸 보면 참 신기하다”라고 전했다.
정동영 열린우리당 전 의장은 가톨릭 신자다. 결혼 후 종교를 가진 정 전 의장은 부인과 함께 양재성당을 다닌다. 주변 성당에서 각종 행사에 참석해달라는 요청도 많아 본의 아니게 여러 성당을 돌아다니기도 한다. 그렇다고 정 전 의장이 성당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다. 지난해 말 통일부 장관을 그만뒀을 때엔 전남 백양사를 찾았고 지방선거 참패를 책임지고 의장 직에서 물러난 직후 강원도의 한 사찰에 머물기도 했다.
김지훈 기자 rapi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