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순희가 이번 도하 아시안게임 대표팀으로 선발돼 6년 만에 태극마크를 달게 됐다. 그의 매서운 눈빛을 보면 43㎏ 작은 체구도 든든하게 보인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전국체전을 앞두고 청주에서 훈련 중인 부순희를 만나 ‘암’과 떼려야 뗄 수 없었던 지난 세월들의 사연을 들어봤다.
4년 전 무작정 부순희의 집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전화로 인터뷰 요청을 했다가 거절당한 후 마지막 카드로 직접 얼굴 보고 읍소 작전을 펼칠 요령이었다. 당시 위암 수술 후 칩거하다시피했던 그는 언론에 노출되는 걸 극도로 꺼렸고 자신의 가족사가 알려지는 것 또한 싫어했다. 인터뷰가 아닌 사는 얘기나 나누자고 들이댔다가 결국 인터뷰에 성공하긴 했는데 모든 얘기들을 듣고 너무 가슴이 아파서 인터뷰를 졸랐던 일이 부끄럽기까지 했었다. 당시의 일을 떠올리자 부순희가 환하게 웃는다. 살 좀 쪘냐고 물었더니 43kg 그대로란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여자권총계의 1인자로 94세계선수권, 97밀라노월드컵, 98뮌헨월드컵, 99월드컵파이널스 등을 제패하며 스포츠권총과 공기권총에서 10년 넘게 세계 정상에 올랐던 천부적인 ‘총잡이’다. 그러다 위암 수술을 받고 더 이상 운동 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체중 이 감소했지만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 다시 총을 잡을 수 있게 됐다.
“이젠 제 이름 앞에 ‘암’이란 글자가 안 들어갔으면 좋겠어요. 암이 발견되기 전에는 주야장천 ‘주부 총잡이’라고 쓰다가 암 수술 이후엔 이 ‘암’ 자가 빠지질 않네요.”
위암 수술 후 다시 총을 잡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자신의 인터뷰 기사에 ‘암’ 자가 빠지지 않는다며 볼멘소리를 하던 부순희는 가족들이 암으로 세상을 떠났던 아픈 사연을 털어놨다.
“아들 동규를 돌봐주셨던 시어머니가 갑자기 위암으로 돌아가셨어요. 2000년 10월이었거든요. 많이 힘들었죠. 워낙 정을 많이 주셨던 분이니까요. 그런데 두 달 뒤에 저랑 같이 국가대표 사격 선수로 활동했던 언니(신희 씨)마저 폐암으로 눈을 감은 거예요. 충격이 엄청났어요. 언니는 절 사격 선수로 이끈 사람이었고 언니가 있었기 때문에 제가 라이벌 의식을 느끼며 성장할 수 있었으니까. 제가 분신처럼 생각했기 때문에 언니의 죽음이 더 크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부순희는 외할머니도 위암으로 잃었다. 그러다보니 자신도 ‘혹시나’ 했지만 ‘설마’하는 마음이 더 앞섰다는 것. 평소 약간의 이상만 있어도 병원을 찾았고 종합검진도 정기적으로 받은 터라 어느 정도 건강에 자신있었는데 2002년 초 자꾸 배가 아프고 몸이 좋지 않아 병원을 찾았다가 위암 초기란 진단을 받게 됐다.
“정신이 아득했어요. 공포스럽기까지 했죠. 가족들이 모두 암에 ‘한’이 맺혀 있는데 또 다시 암이라니, 정말 말이 안 되는 거잖아요. 제가 언니를 먼저 보낸 다음 산소에 한 번도 안 갔었거든요. 그런데 수술 전날 언니를 찾아갔더랬어요. 너무 그립고 보고 싶어서 가슴이 메어졌어요. 언니를 너무 좋아해서 병까지 닮아간다고 넋두리를 했었죠.”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담당 의사는 항암 치료를 받지 않고도 완쾌될 수 있다며 용기를 북돋워줬다. 그러나 다시 총을 쏘기엔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았다.
“하지만 총 없는 인생은 상상할 수가 없었어요. 총을 안 쏘면 언니가 너무 서운해 할 것 같더라구요. 언니 때문에 시작한 총잡이 생활인데 그럴 순 없었어요. 일단 체중부터 불려 놓은 후 운동을 시작해야 했죠.”
워낙 살이 안 찌는 체질이라 아무리 노력해도 살이 붙지 않았다고 한다. 살 찔 것만 기다렸다가는 운동을 시작하는 게 힘들것 같았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총을 잡기 시작했고 소속팀(당시 우리은행) 사정을 생각해서라도 ‘직업’을 버릴 수는 없었다.
“체격 좋은 애들 보면 정말 부러워요. 만약 제가 지금보다 체중이 더 나갔더라면 올림픽에서 금메달 땄을 거예요.”
부순희는 이상하게도 올림픽과는 인연이 없었다. 다른 국제 대회에선 모두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올림픽만큼은 꼬였다. 먼저 국내에서 치르는 선발전부터 힘들었다. 0.1점차와 0.3점차로 92년 바르셀로나, 96년 애틀란타 올림픽에 가질 못했다. 어렵게 출전한 시드니올림픽에선 집안에 암으로 투병 중인 가족들이 있다 보니 경기에 집중을 못해 평생 쏴본 적이 없는 최저 기록을 내고 말았다.
“사실 이번 아시안 게임은 참가하고 싶지 않았어요. 암 수술 이후 처음으로 나가는 국제 대회인 데다가 남편이 심하게 반대를 했었거든요. 가서 먹을 음식들을 제가 다 준비해 가야 해요. 아직도 아무 거나 먹을 수가 없기 때문이죠. 더욱이 저 때문에 후배들이 기회를 빼앗길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 만약 올림픽이라면 이런 거 저런 거 생각 안 하고 출전하는 데 욕심냈을 거예요. 어떻게 해서든 올림픽 메달을 따고 싶으니까요.”
부순희한테는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 동규가 있다. 아들과 함께 놀이공원에 가면 항상 찾아가는 곳이 있단다. 바로 장난감 총으로 인형을 맞히는 가게다. 맞힌 인형은 상품으로 받게 되는데 부순희가 등장하면 그곳의 인형들은 배겨나질 못한다.
“가게 주인들이 많이 싫어하죠. 아줌마가 총을 잘 쏘니까 처음엔 신기해 하다가 나중엔 제발 가 달라는 표정이에요. 그분들께는 죄송했지만 동규가 너무 좋아하니까 안 해 줄 수가 없더라구요. 어쩔 수 없이 신분을 감추고 총놀이를 좀 했죠. 덕분에 집에 인형이 많이 쌓였어요.(웃음)”
이런 에피소드도 있다. 하루는 남편이 차를 가지고 출근을 했는데 전날 그 차를 썼던 부순희가 조수석에 총을 놔둔 것이다. 깜짝 놀라서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차에 총 있어!”라고 말했다고.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이 얘길 들으면 당장 112나 113으로 전화를 걸지 않았을까^^.
동규는 요즘 잔뜩 신이 났다고 한다. 엄마가 아시안게임 대표로 선발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학교 선생님과 친구들이 모두 부러워했다는 것. 그것도 ‘총잡이’ 엄마를 둔 동규 아닌가.
“아들이 좋아하니까 기분 좋더라구요. 이 나이에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것도, 대표팀에 선발되는 것도 아무나 하는 거 아니니까요. 친한 친구가 제 소식을 듣고 전화해선 이러더라구요. ‘얘가 미쳤어. 그 나이에 무슨 대표팀이냐?’ 사격은 나이 제한이 없어요. 권총은 더 그렇죠. 할 수만 있다면 오랫동안 선수로 있고 싶어요.”
총소리가 정겹다는 여자, 영화에서 총 쏘는 장면은 모두 ‘가짜’라며 목소리를 높이는 여자, 가녀린 외모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총잡이로 산 지가 어느새 23년째다. 인터뷰 말미에 부순희가 이런 말을 던진다.
“은퇴 전에 꼭 듣고 싶은 말이 있어요. ‘미녀 총잡이’요. 왜 저한테는 그런 타이틀이 안 붙는지 몰라.”
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