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코끼리’란 별명이 무색할 만큼 소식(小食)과 채식주의자로 입맛과 음식 습관을 변화시킨 김 사장. ‘감독 출신의 첫 야구단 사장’이 된 지 3년째로 접어든 그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입담과 농담을 곁들이면서 일반적인 상식의 ‘틀을 깨는’ CEO의 이미지를 내보였다. “오랜만에 솔직한 얘기를 너무 많이 쏟아냈다”며 활짝 웃음 짓는 김응용 사장과의 인터뷰를 정리한다. (김 사장의 생생한 입담을 전하기 위해 그의 말투를 가급적 그대로 활자화 해봤다.)
─전면드래프트제가 결정된 과정은.
▲난 감독자회의밖에 안 해봤는데 사장 되고 나서 KBO 이사회에 참석해보니까 운동선수 출신이랑 다른 사장들은 생각이 많이 달라. 좀 장래를 보고 얘기했으면 좋겠는데 내가 뭐라고 말만 꺼내면 벌떼처럼 달려드니까 말을 할 수가 있어야지. 이사회에서 나온 얘기를 하면 안 되는데… (고민하다가) 한 가지 예를 들어볼까? 난 전면드래프트제를 놓고 이사회를 열었을 때 당장 시행하자고 주장했어. 도시연고제는 프로야구의 흥행을 저해하는 요소라고 주장했지. 그런데 각 사장들마다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쉽게 풀리지 않는 거야. 그때 모 구단 사장이 이렇게 말을 했어. ‘우리 모두 월급 받는 사장이고 또 회사 입장도 있으니까 당장이 어렵다면 2009년부터 시작하는 건 어떨까요?’하고 말이야. 그랬더니 그냥 통과되더라구.
─만약 삼성이 아닌 기아 사장이었다면.
“해태(현 기아)도 팀 창단할 때 선수가 15명밖에 없었어. 겨우 선수단을 이끌 수준이었어. 그때는 해태에서 도시연고제를 가장 많이 반대했었어. 지역 연고로 묶다 보니까 선수 수급이 안 되는 걸. 기자들이 프랜차이즈 스타라는 말 많이 쓰는데 이런 영어 표현이 있어요? 삼성라이온즈 선수면 삼성 스타고 기아타이거즈 선수면 기아 스타인 거잖아. 프랜차이즈 스타라는 말로 자꾸 지역색을 밝히면 야구는 점점 더 발전하기 어렵다구. 프로라는 게 뭐야. 실력 좋으면 데려다 쓰는 거잖아. 우리도 외국처럼 용병 제한 같은 거 두지 말고 잘 하는 선수라면 데려오자는 거야. 프로 야구단이 실업자 구제소는 아니잖아. 실력 있는 선수들이 재미있는 경기를 펼쳐 관중들을 끌어 모으는 게 정도 아닌가. 사장 해보니까 어이쿠, 너무 제약들이 많아. 이래선 한국 야구 발전하기 어렵다구.”
─감독 출신의 CEO, 한계를 느낀 적 있나.
▲내가 말하면 모두 삼성 입장만 대변한다고 받아들이더라구. 이렇게 말하면 삼성에서 섭섭해 하겠지만 내가 해태에서 18년 있었어. 정이 들면 해태에 더 들었지 삼성에 더 들었겠냐구. 그런데도 그걸 삼성 얘기로만 받아들이니까 진짜 답답해. KBO에서 처음 프로야구를 창설하면서 대기업들 찾아다니며 뭐라고 약속한 알아? 10년이면 흑자가 되게끔 만들겠다는 약속을 했어. 지난해 우리가 150억 원 적자 났어. 일본은 20억 엔 적자 났다고 구단을 그냥 팔아 버리잖아. 이렇게 적자가 느는데 누가 야구단을 운영하겠느냐고. 모두가 죽지 않을 방법이 있다면 이것저것 가리지 말고 한 번 해보자는 게 내 주장이야. 그게 잘못된 말은 아니잖아?
─선수들 연봉이 높다고 생각하나.
▲돈 많이 받는 선수가 나와야 어린 선수들이 그 선수를 모델로 꿈을 키울 수 있는 거잖아.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면 그 고생하면서 뭐하러 운동하겠어. 프로 선수가 되기까지 얼마나 고생해서 온 길인데. 당연히 많이 받아야지. 사장 되니까 선수들 연봉 계약 때 최종 사인 과정에서 만나게 되더라구. 야구도 기술이지만 연봉 협상도 기술이야. 스타일도 다양하구. 공갈형, 엄살형이 있다면 내년에 열심히 해서 보답할 테니 올려달라는 형도 있고…. 난 선수들 연봉 보면서 많이 줬다는 생각 안 해봤어. 오히려 ‘임마’는 더 줘야 하는데 적게 줬다는 생각이 든 적은 있었지. 구단 운영은 선수들 연봉 깎아서 하는 게 아니야. 다른 부분에서 수익을 내야 하는 거지.
▲ 감독 출신 사장으로 3년째를 맞고 있는 김응용 사장. 감독 시절엔 카리스마로 선수들을 휘어잡았지만 그 속내를 가장 잘 이해하는 것도 바로 그다. | ||
▲거~ 감독은 핑계를 대는 게 아니야. 주어진 여건 속에서 최선을 다해 우승을 일궈내는 거지. 내가 만약 선동열 감독이라면 김재박 감독의 그런 발언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을 거야. ‘어떻게 꼴찌팀 감독이 감히 우승팀 감독에게 도전을 하느냐’고. 싸움 걸려면 7위팀 감독에게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난 그렇게 말했을 텐데 선 감독은 아예 말을 안하더라구. 현대도 처음엔 FA선수들 ‘싹쓸이’ 했잖아. 작년, 재작년까지 현대 선수들 연봉이 1위였다고. 전력 탓, 돈 탓 하지 말고 실력으로 보여주라고 말하고 싶어. 써도(기사화 해도) 되냐고? 쓰든가 말든가.
─감독 시절 김인식 감독과 자주 비교됐다. 믿음의 야구와 몰아붙이는 야구로.
▲난 몰아붙이지 않았는데…. 뭐 억울한 건 아니고 내가 실적을 많이 남겼잖아. 전부 다 내 후배들, 제자들인데 뭐라고 할 필요가 있겠어? 내가 새로운 사실 한 가지 알려줄까? 자율 야구 말이지, 이거 실은 내가 원조야. 다른 감독들은 7~8시간을 훈련시키는데 난 3시간 외엔 더 하지 않았어. 훈련 끝나면 무조건 풀어줬어. 물론 그 3시간 동안 마구 돌렸지. 연습량이 장난 아니었거든.”
─유독 ‘문제아’들과 인연이 깊다. 술 먹고 걸린 선수들이 꽤 많았다.
▲뭐 다 아는 얘기지만 노장진이 나한테 걸린 건 정말 미련한 거야(2004년 시즌 도중에 숙소 이탈과 음주 문제를 일으킨 노장진을 삼성은 2 대 2 트레이드를 통해 롯데로 보냈었다). 내가 (원정)숙소에서 새벽 6시면 꼭 산책 나가는 거 선수들도 다 알거든. 그러면 왜 그 시간에 돌아오냐구. 와서도 왜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어? 계단으로 몰래 올라가지. 내 눈에만 안 띄었으면 전혀 문제가 없잖아. 선수들도 참 순진해. 난 새벽 5시면 일어나서 화장실에 앉아 있어. 그러면 그때 복도를 지나가는 발소리가 나요. 살짝 문을 열어보면 꼭 야구 못하는 놈이 걸려요. 야구 잘하는 놈은 소리 없이 지나가구. 이런 일도 있었어. 아침에 일찍 나가는데 두 놈이 뛰더라구. ‘와 이 놈들 아침부터 열심히 뛰는구나’했지. 그냥 뛰어서 호텔로 들어갔으면 되는데 괜히 내 눈치를 보는 거야. 그때 사태를 파악했지. 곧장 방으로 들어가서 그 선수 룸메이트한테 전활 걸었어. ‘어제 아무개 몇 시에 나갔어?’하니까 12시에 나갔다고 하더라구. 난 절대로 체크 안 했어. 선수들이 알아서 걸려 준 거지. 다 옛날 얘기야. 요즘 선수들은 술 먹으라고 해도 안 먹더라구.
─현장으로 복귀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 적이 있나.
▲이젠 안 되지. 이젠 쉬어야지. 어휴 사장도 처음엔 편한 것 같더니 처음 경험하다 보니까 죽겠어. 감독과 마찬가지로 스트레스가 보통 심한 게 아니야. 감독은 그래도 오랜 경험으로 단련이 돼 있잖아. 이건 맨날 넥타이 매고 끌려 다녀야 하니까…. 어휴 속이 다 썩었어. 하고 싶은 말을 참아야 하니까 그렇지. 감독 때의 기분으로 말 함부로 하다가 실수도 많이 했어. 앞으론 편하게 쉬고 싶어. 그러면서 별의별 욕도 다 해보고 별의별 짓도 다 해봤으면 좋겠어.
▲그건 정말 말이 안 돼. 총재가 되려면 덕망이 있어야 해. 정치적으로 풀어야 할 숙제도 많고. 총재 운운하는 소린 진짜 나를 수렁에 빠트리는 말이야. 사실 사장하지 말고 감독으로서 모든 걸 끝내야 했어. 너무 힘들어. 수술했다는 소식 들었지? 오죽했으면 감독 때도 하지 않는 수술까지 했을까. 이거 너무 어렵고 힘들어.
─김응용 리더십에 대한 연구와 책도 많이 나왔다.
▲난 리더십의 ‘리’자도 몰라. 그냥 선수들에게 거짓말하지 않고 모범을 보이려고 했지. 자기는 술 담배하면서 선수한테 하지 말라고 하면 안 되는 거잖아. 솔직히 말해서 술은 나도 끊지 못했어. 그래도 선수들한테는 절대 들키지 않았다고. 숙소에 들어갈 때도 행여 선수들이 볼까봐 살금살금 고양이처럼 기어 들어갔어.
─사장으로서 꼭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다면.
▲우리 야구장에 관중이 꽉꽉 들어차는 걸 보고 싶어. 한국시리즈 때만이 아니라 정규리그 때 야구장을 찾는 팬들이 정말 많았으면 좋겠어요. 관중 늘려 보려고 평소에는 경북 지역의 군수, 면장까지 만나러 다녔어. 그래도 잘 안 되더라구. 그런데 관중들을 끌어 모으려면 단순히 이런 문제들만 해결해선 안 돼. 좀 더 체계적이고 기본적인 틀들이 바뀌어야 해. 삼성의 우승도 중요하지만 야구장에 사람이 꽉 차 있는 걸 보면 우승 못지않게 가슴 떨리고 기쁠 것 같아.
김응용 사장은 자신과 인연을 맺은 제자들 중 가장 뛰어났던 선수로 선동열 감독을 꼽았다. 만약 선 감독이 박찬호처럼 일찍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면 박찬호 못지않은 성적과 대우를 받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이승엽에 대한 느낌도 곁들였다. 삼성 감독 부임 후 한동안 이승엽에게 냉정히 대했던 부분에 대해서 “계획된 행동이었다. 승엽이에게 자극을 주려고 일부러 외면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사장은 감독 시절 선수나 선수 부모들과 식사를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행여 이상한 소문이 나올 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다. 엄하고 차가운 승부사로 유명한 감독이었지만 해태 시절 비좁은 숙소에서 생활하는 어린 선수들을 자신의 아파트에 데리고 가 재워 주고 아침마다 계란 프라이를 부쳐 주면서 돌봐줄 만큼 여리고 정이 많은 감독이기도 하다. 삼성 야구단의 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형식과 거리를 없애고 먼저 직원들에게 다가가는 인간적인 CEO의 전형을 보여주기도 했다.
사장 초기에는 선수단의 훈련 소리만 들어도 도통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현장’이 그립기도 했다. 그러나 이젠 자신의 야구 인생이 녹아 있는 그 ‘현장’이 그리움이 아닌 추억으로 남았다며 애써 정리를 해버린다. 하지만 아무리 그가 부정하려 애를 써도 김응용 사장에게 야구는 여전히 ‘생(生)’이었다. 언젠가 야구단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자연인으로 돌아가 그가 좋아하는 지리산 자락을 오르락내리락한다고 해도 그의 가슴 속에선 ‘야구=생’이 존재하리라. 그게 바로 감독 김응용, 사장 김응용이 살아가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