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계 아닌 개인 다툼
이번 사건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오산중 선후배 사이로 한때 믿음직스런 후배, 존경하는 선배였던 노민상-김봉조의 관계가 왜 틀어졌는가를 가장 궁금하게 생각한다. 노 감독은 박태환이 일곱 살 때 직접 발굴, 애지중지하며 2006년 12월 도하아시안게임까지 10년에 걸쳐 월드 스타로 키워냈다. 김 위원장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 당시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박태환을 최연소 대표로 발탁했다. 또 도하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노 감독을 국가대표 사령탑으로 만들었다.
한국의 잘못된 문화 중 하나가 ‘끼리끼리(파벌) 문화’다. 스포츠계도 예외는 아니다. 탁구, 태권도, 빙상, 농구 등 많은 종목들에서도 사과를 두 쪽으로 나누듯 심각한 파벌 싸움이 과거 혹은 현재진행형으로 벌어지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수영계는 이런 뿌리 깊고 심각한 파벌 대립은 없다. 굳이 따진다면 현 집행부(신홍택 회장)와 재야 세력 간의 마찰은 있겠지만 이것도 타 종목에 비하면 우려할 수준은 아니다. 재야 세력의 특별한 구심점도 없고 조직적인 활동도 없다. 그저 어느 조직에서나 있을 법한 집행부에 대한 불만 토로 수준이다. 오히려 수영계는 타 종목에 비해 파벌싸움이 덜하다고 할 수 있다.
한 젊은 지도자는 “연맹의 경우 회장사가 자주 바뀌는 등 경제적인 어려움은 있었지만 빙상처럼 크게 문제될 만한 파벌 싸움은 없다. 이번 일로 수영인들 전체가 그렇다는 식으로 오해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결국 박태환을 둘러싼 이번 지도자들의 볼썽사나운 다툼은 지극히 개인적인, 인간적인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왜 사이가 틀어졌나
박태환을 두고 절친했던 두 사람은 2006년 8월 캐나다에서 열린 범태평양수영대회 직후 거리가 멀어지기 시작했다. 박태환은 이 대회에서 아시아신기록을 포함, 자유형 400m와 1500m에서 금메달을, 그리고 200m에서도 은메달을 목에 걸며 우물안 개구리에서 국제적인 예비 스타로 떠올랐다.
지난 2월 7일 <일요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노민상 감독은 “언제부터 갈등이 시작됐느냐”는 질문에 “범태평양대회를 마치고 온 직후부터 김 위원장이 사퇴 압력을 가했다. ‘아시안게임이 끝난 후 클럽팀으로 돌아가라’ ‘박태환은 대표팀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김봉조 위원장은 “사퇴 압력이라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 원래 (노 감독은)여러 면에서 대표팀을 지도할 여건이 부족했다. 그래서 애초부터 아시안게임까지 6개월만 대표팀에 있기로 한 것이다. 순리대로, 또 그 약속대로 하자고 한 것뿐이다”라고 반박했다.
도하아시안게임 3관왕 후 박태환이 국민적인 스타가 되고, 또 약속된 노 감독의 대표팀 임기 만료 시점이 되자 둘은 확실하게 각을 세웠다. 박태환과 더불어 명지도자 반열에 오른 노 감독은 소속팀(WIN클럽) 선수와 학부모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대표팀을 더 맡기로 했다. 소속팀의 일부 선수는 다른 팀으로 가고 남은 선수들은 다른 클럽과 통합해 노 감독 없이 운동을 계속하기로 했다. 이 부분은 김 위원장이 노 감독에게 약속 위반이라는 이유로 섭섭함을 느끼는 대목이다. 자신이 키워줬는데 이제는 명 지도자가 됐다고 마음대로 한다는 것이다.
▲ 박태환 선수를 둘러싸고 김봉조 수영연맹 경기력향상위원장(왼쪽)에게 폭행당했다며 노민상 감독이 병원에 입원해 있다. 두 사람은 중학교 선후배로 절친한 사이였다. 사진제공=경향신문 | ||
김 위원장은 화가 났고, 태릉으로 찾아가 항의성 면담을 하는 과정에서 폭행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이어 노 감독이 김 위원장을 폭행으로 고소하고 태릉선수촌이 김 위원장에 대해 출입 금지령을 내리는 등 사태가 커지고 있다.
노 감독 측근들은 김 위원장을 ‘박치기의 명수’라며 비난하고 있고 김 위원장은 “누구보다 노민상 감독을 잘 안다. 교통사고를 두 번이나 당해 몸이 약하다. 그런 사람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겠는가. 발로 차고, 따귀를 때리고 뭐 언론에 다양한 묘사가 나왔는데 절대로 노 감독을 때린 적 없다”고 항변했다.
#없던 파벌도 생길 지경
박태환을 둘러싼 노민상-김봉조 두 선후배 지도자의 다툼은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 대결이다. 문제는 이것이 자칫 수영계 전체의 파벌 싸움으로 확산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소싸움을 구경하던 사람들이 마을 싸움을 벌이는 식으로 말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다른 이유로 각각 노민상, 김봉조와 감정이 좋지 않았던 사람들이 인터넷 댓글, 여론화 과정을 거쳐 사건에 개입하고 있다.
“노민상은 국가대표 감독을 맡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코치아카데미도 수료하지 않았는데 김봉조 위원장이 도왔다” 혹은 “김봉조에게 맞아보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식의 인신 공격까지 등장하고 있다.
수영인들은 노민상 혹은 김봉조를 두둔하는 두 쪽으로 의견이 갈리고 있다. 실제로 현재 박태환의 부모는 김봉조 위원장과 가깝고, 수영연맹 집행부는 노민상 감독과 교감을 갖고 있다. 수영용품업체도 아레나는 노 감독과, 스피도는 김봉조 위원장과 친분이 있다고 한다. 박태환이 대표팀을 떠나는 과정에서 박태환의 훈련 파트너가 사소한 이유로 대표팀에서 탈락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양측 모두 제자를 위해 “대표팀 지도에 전념하겠다”와 “할 말은 많지만 가능한 참겠다”라고 하지만 불똥은 이미 박태환에게까지 옮겨 붙고 있다.
앞서 나온 젊은 수영지도자는 “이러다가는 없던 파벌까지 생기지 않을까 우려된다. 선수와 수영계 전체를 위해 누가 옳든 간에 싸움은 이쯤에서 끝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태환을 둘러싸고 볼썽사나운 다툼을 벌이고 있는 지도자들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수영 기술보다 정말 기본적인 도덕인 것이다.
유병철 객원기자 einer6623@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