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이 끝난 지금, 여야 3당은 새 지도부 선출을 위한 채비에 나섰다. 하지만 저마다 다른 이유로 고민이 깊다. 사진은 지난 2015년 2월 8일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의 전당대회. 일요신문DB
“뭘 그런 것을 묻나. 마땅한 답이 없다는 것을 잘 알지 않나. 전당대회는 어찌어찌 치러야겠지만, 사실 누가 되든 별 재미가 없다. 우리보다는 저쪽(야당을 지칭)에 더 큰 관심이 가지 않나.”
이는 <일요신문>과 만난 새누리당의 한 재선의원이 여당의 차기 당권에 대한 질문을 받고 혀를 차며 건넨 말이다. 해당 의원은 이어 “이번 선거결과가 있기 전까지, 당연히 차기 당권은 최경환 의원이었다. 하지만 수가 단단히 틀어졌다”라며 “그 대안으로 여러 후보가 거론되고 있지만 이래저래 참 어렵게 됐다. 아무튼 살아서 온 사람들(당선자)이 다음 주에는 지역 인사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니, 본격적으로 논의가 시작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해당 의원이 언급했듯 새누리당의 차기 당권은 총선을 앞둔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친박 좌장 최경환 의원으로 모아진 상황이었다. 최 의원 스스로도 총선 전부터 당권 도전 준비를 차근차근 해왔다. 하지만 총선 과정에서 불거진 이른바 진박 감별 마케팅과 거기서 비롯된 총선의 실패로 인해 최 의원의 입지는 급격하게 축소됐다. 물론 아직 당권 도전 여부에 대한 본인의 의사결정이 남아있지만, 정계 안팎에선 ‘이미 물 건너갔다’는 반응이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당권 유력주자로 거론되는 인물은 이주영, 이정현 의원이다. 당권도전 의사를 내비친 이주영 의원은 친박계로 분류되지만, 다른 인사와 비교해 ‘계파색’이 옅다는 평가다. 이주영 의원은 총선을 전후해 불거진 진박·비박 간 계파갈등 형국에서 무난하게 당을 이끌고 수습할 수 있다는 평가다. 이른바 ‘관리형’ 후보로 점수를 얻고 있다. 특히 세월호 침몰 사건 당시 이 의원은 해양수산부 장관으로서 이발과 면도를 거부하며 현장 중심의 행보를 이어갔다. 이를 통한 대중적 이미지도 확보한 상황이다.
하지만 대선 후보자 경선을 불과 8개월 앞둔 긴급한 시점에 과연 이주영 의원이 적합한 인물인지에 대한 의문이 남고 있다. 계파색이 옅고 무난하다는 뜻은 결국 달리 말하자면 ‘색깔’과 ‘방향’이 뚜렷하지 않는다는 말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앞서 재선의원 역시 “이 의원이 훌륭하긴 하지만, 대가 너무 약하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왼쪽에서 부터 최경환, 이주영, 이정현, 정우택, 정병국 의원
그런 점에서 본인 스스로 강력한 도전 의사를 보이고 있는 친박 핵심 이정현 의원이 주목받고 있다. 이번 총선을 통해 호남 재선에 성공한 이 의원은 ‘친박 호남 정치인’이란 전무후무한 입지를 점하게 됐다. 비록 총선에서 참패한 새누리당이지만, 여전히 원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계파는 친박계라는 점에서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하지만 이른바 친박계의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 의원도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이에 대해 마레컴의 이재관 대표는 “다른 후보와 비교한다면 호남 재선의 독특한 입지를 점한 이정현 의원의 경쟁력이 나쁘지 않다”라며 “하지만 대권을 생각한다면 유권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그림’이 나와야 한다. 만약 이정현 체제로 가게 된다면 나경원 의원 같은 비박계 인사가 원내대표로 들어서고, 우여곡절 끝에 복당이 예상되는 대권주자 유승민 의원에게 의미 있는 당내 역할이 맡겨져야 한다. 최소한 이런 그림이 나와야 새누리당도 대선에서 뭔가 해 볼 만하지 않겠나”라고 지적했다. 즉 물타기 전략이다. 친박 인사가 당권을 쥐더라도 적절하게 원내대표를 비롯한 핵심 당직을 비박계와 분점하는 ‘협치의 묘’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그런가하면 일각에선 이번에 5선에 성공한 비박계 소장파 정병국 의원과 대권의 캐스팅보트 지역으로 손꼽히는 충청권의 4선 정우택 의원 등도 당권 주자로 떠오르고 있다. 개혁적 이미지가 강한 정병국 의원은 당 내부 개혁의 적임자로 통한다. 정우택 의원은 반기문 UN사무총장의 대선 도전 가능성을 염두에 둔 이른바 ‘충청 대망론’의 기획자로 적합하다는 평가다.
이번 총선에서 뜻밖의 득승을 거둔 제1당 더불어민주당은 당권 레이스를 앞두고 또 다른 문제로 골치를 썩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비대위 전권을 쥔 김종인 비대위 대표의 거취 때문이다. 총선 직후부터 더민주 안팎에선 친노 진영을 중심으로 김 대표의 당대표 추대 가능성이 솔솔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 당권 주자로 거론되고 있는 대부분 인사들은 이러한 추대 움직임 자체에 제동을 걸고 있는 모양새다. 자칫 승전보를 울린 지 얼마 안가 당권 행보를 두고 당내 갈등이 다시금 점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벌써부터 감지되고 있다.
왼쪽에서부터 김종인 비대위 대표, 추미애, 박영선 의원, 송영길 당선인, 정청래 의원
오는 5월 초 당권 출마선언을 앞두고 있는 한 의원실 관계자는 “김종인 대표의 역할은 딱 여기까지다. 지금 특별한 비상시국도 아니다. 명실상부한 공당으로서 당규·당헌에 명시된 전당대회를 싹 무시하고 대표 추대는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이미 당권 주자들은 나름대로 총선 전부터 준비를 해오고 있는 상황이다. 당규를 무시하면서까지 김 대표의 추대를 밀어붙이려는 특정 세력의 의도가 궁금하다”라고 민감하게 반응했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에서 당권주자로 거론되는 인사는 추미애, 박영선, 이종걸, 김부겸, 김진표 등 다선의 중진 인사들과 송영길, 정청래, 김두관, 이인영, 우상호 등 이른바 86그룹(80년대 학번, 60년대생) 주자들이다. 특히 86그룹 주자들이 김종인 대표의 추대 움직임에 강한 반대의사를 표출하고 있다.
조원씨애안아이 김대진 대표는 이에 대해 “이번 총선에서 ‘위기론’이 대두됐던 ‘86그룹’들이 대거 살아 돌아오면서 건재를 과시했다”라며 “더민주당 전당대회의 큰 화두 중 하나는 송영길 의원을 중심으로 하는 86그룹들이 당권을 점하며 ‘세대교체’로 나아갈지 여부다. 분명 지켜볼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앞서의 의원실 관계자 역시 “지난 전당대회는 당대표와 최고위원을 나누어 선출하는 단일성 지도체제였지만, 이번 전당대회는 이를 함께 치러 선 순위자가 당대표를 맡게 되는 집단 지도체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라며 “최소한 최고위원을 확보하자는 측면에서 86그룹 후보자들이 대거 당권 레이스에 뛰어들 것이다. 이들의 역할이 점차 중요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야당의 복수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전당대회에 이재명 성남시장이 도전장을 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각종 획기적인 복지시정으로 전국적 인지도를 확보하고 있는 이 시장은 비록 원내 인사는 아니지만, 때때로 중앙 정치에 쓴소리를 쏟아내는 등 폭 넓은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잠재적인 대권주자로까지 거론되는 이 시장은 현재 당권 도전 여부를 두고 깊게 고민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재명 성남시장이 전당대회 출마를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국민의당은 8월이 기한인 전당대회 개최 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당헌·당규에 따르면 창당 6개월 안에 전당대회가 마련되어야 하지만 전국정당 조직 완비가 끝나지 않은 상황 속에서 연기론이 솔솔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일부 당권 주자들은 강하게 전당대회 강행을 요구하고 있는 터라 그 귀추가 주목된다.
대권 직행을 시사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입장에선 차기 지도부 구성을 두고 심각한 고민을 지속할 수밖에 없다. 교섭단체 의석수를 훌쩍 넘긴 38석 확보라는 쾌거를 이뤘지만, 지역구 대부분은 호남이다. 국민의당 다수를 차지하는 호남 인사들과 안 대표 사이에는 여전히 ‘괴리감’이 남아있기 때문에 자칫 호남 인사가 당권을 쥘 경우 안 대표의 대권 행보에 부정적 영향이 오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김성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서울 지역구(관악갑)에서 안 대표와 함께 유이하게 당선된 인사다. 안철수계 핵심인사 중 한 명인 김 의원은 현재 차기 당권주자 중 한 사람으로 거론되고 있다. 안 대표의 정치 입문과 행보, 창당에 늘 함께했던 김 의원은 안 대표의 당권 행보 뒤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적임자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김성식 당선인은 선수(재선)가 낮아 무게감이 떨어진다는 점, 자칫 다수를 차지하는 호남 인사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이를 의식한 듯 김 당선인 스스로도 당권 도전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다만 안 대표의 입김이 작용한다면 김 당선인의 입장에도 변화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대권 직행을 피력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차기 지도부 선출을 두고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 2월 2일 국민의당 창당대회. 일요신문DB
다수파인 호남에서는 중진 천정배 공동대표와 박지원 의원 등이 당권 도전 의사를 피력하며 유력 주자로 떠오르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당의 한 고위직 당직자는 “안철수 대표 입장에서는 자신의 대권 가도를 서포트해줄 수 있는 당 지도부가 들어서야 한다”며 “하지만 과연 호남 인사들이 전적으로 그 역할을 해줄 수 있을지 의문인 것이 사실이다. 내심 대권으로 가는 길목에 만에 하나 대세가 문재인 대표로 기울어질 경우, 호남 세력의 이탈 가능성도 남아있어 걱정이 많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당직자는 “안 대표 스스로 자기 정치를 위해선 측근인 김성식 당선인에 힘을 몰아주거나, 김한길 전 의원과의 관계회복을 통해 중재자의 역할을 부여할 수 있지만 이마저도 호남 인사들의 눈치 탓에 여의치 않다”며 “국민의당은 시작부터 중도개혁의 전국정당을 지향했지, 호남을 기반으로 한 지역정당을 지향했던 것이 아니기에 여러모로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