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더민주 비대위 대표.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총선 때 숨죽이던 일부 친노(친노무현)·운동권 강경파, 그리고 비노(비노무현)계가 일제히 사자후를 토했다. 일각에선 ‘김종인 토사구팽설’까지 흘러나왔다. 친김종인계를 제외한 제 계파가 차기 당 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에서 김 대표를 ‘팽’시킬 것이란 게 이 시나리오의 핵심이다.
김 대표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당 대표 추대 논란 자체에 불쾌감을 드러내며 당 내부적으로는 정체성 논란에 쐐기를 박는 한편, 당 외부적으로는 야권의 금기어인 ‘구조조정’의 칼을 꺼내며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갔다. 4·13 총선의 개선장군 김 대표가 두 번째 변곡점을 맞은 셈이다.
첫 번째 변곡점이 ‘셀프 공천’(비례대표 2번)이었다면 두 번째 변곡점은 ‘셀프 대표’가 발단이다. 이름만 다를 뿐, 실체는 권력암투다. 이 변수를 관리하지 못한다면 범야권은 전투(총선)에서 이기고 전쟁(대선)에서 참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국면이 야권발 정계개편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더민주는 총선 직후 ‘일촉즉발’ 상황을 연출했다. 신주류와 구주류의 계파 패권주의와 정체성 논란은 물론, ‘사심 공천 5적’ 논란이 당을 강타했다. 총선 승리와 춘추전국시대를 맞은 대권잠룡들에 따른 프리미엄은 간데없고 계파 패권주의만 나부꼈다. 특히 김 대표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는 변수를 관리하지 않은 채 ‘강 대 강’으로 어퍼컷을 날리자 당 내부에선 그의 위기관리 능력에 대한 회의감이 흘러나왔다.
더민주 차기 당권주자의 제1 조건은 ‘관리형 대표’다. 차기 대선국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위기관리 능력이다. 하지만 김 대표는 전형적인 인파이터형 대표의 모습을 보여줬다. 위기 변수 앞에 ‘수동적 객체’에 머물러야 할 당 대표가 당내 화약고에 불을 지르는, ‘능동적 주체’ 역할을 자임한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정체성 논란이다. 김 대표는 4월 15일 국회에서 가진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서 “정당이란 것이 한번 정권을 제대로 창출하지 못하면 존재 의미가 없다”며 “누누이 얘기하지만 과거의 개념에 사로잡혀서 무슨 정체성이니 뭐니 하는 데서 탈피, 개방적으로 국민의 정체성에 다가갈 수 있느냐 하는 점에서 모두가 협력해 정권교체를 이뤄야만 당의 꽃이 제대로 활짝 필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세월호 2주기 추모식 불참을 결정했다. 불필요한 정치적 공방을 배제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당의 한 측근은 “김 대표가 처음부터 (불참) 결론이 있었던 것 같다”고 귀띔했다. 지난 2년의 더민주와는 확실히 결을 달리한 것이다. 2014년 6·4 지방선거 땐 문재인 전 대표가 세월호 단식 농성에 들어갔고, 지난해에는 지도부 및 의원단이 세월호 1주기에 참여한 바 있다.
김 대표의 진영논리 탈피 행보는 4·13 총선 때 확인된 중도 무당파 속으로 들어가 외연 확장을 꾀하려는 전략이다. 또한 ‘차르 리더십’을 앞세워 당의 노선과 이념을 재정립, 당 내 강경파의 행보를 제어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의 ‘정체성’ 카드는 총선 승리를 지렛대 삼아 리더십을 확고히 세우려는 다중 포석인 셈이다. 이 파고를 넘을 수 있느냐가 김 대표의 첫 번째 암초다.
‘셀프 대표’의 파장은 여러 갈래에서 터졌다. 경기 안산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2주기 추모행사 불참으로 논란이 일자 김 대표는 당일(16일) 오후 4시 개별적으로 서울 광화문 합동분향소를 찾았다. 김 대표 행보에 대한 불만은 즉각 차기 당권 경쟁과 맞물려 계파 갈등에 불을 질렀다.
김 대표는 차기 당권을 위한 전당대회 경선 참여를 일축하면서도 “막강한 힘을 가진 야당 대표가 필요하다”고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합의추대의 여지를 남긴 발언으로 해석됐다. 실제 그는 합의추대와 관련해 “그때 가서 생각해보겠다”며 확답을 피했다. 총선 직후에는 측근들에게 차기 대권주자가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킹메이커와 킹 모두 자신의 손에서 놓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김 대표 앞에 있는 두 번째 암초는 계파 패권주의다. ‘셀프 대표 논란’에 휩싸인 더민주는 즉각 ‘김종인 vs 세대교체’ 구도로 재편됐다. 최대 계파인 친노계가 뚜렷한 입장을 정하지 못하는 사이 86(80년대 학번·60년대 생)그룹이 목소리를 냈다. 차기 당권 도전을 위해 캠프를 꾸린 송영길 당선자는 “경선을 통해 역동성을 살려야 한다”고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86그룹 핵심 이인영 의원도 김종인 합의추대에 대해 “명분이 없다”고 쓴소리를 던졌다.
‘당 대포’ 정청래 의원은 “절대군주는 정권 교체의 엔진이 못 된다”고 비판한 데 이어 “‘셀프 공천’에 이어 ‘셀프 대표’는 처음 들어보는 북한식 용어”라고 연일 십자포화를 날렸다. 박영선 의원도 “여론수렴이 필요하다”며 원론적인 입장만 나타냈다. ‘셀프 공천’ 당시 경남 양산에서 서울로 급파해 불을 껐던 문 전 대표는 김 대표의 ‘셀프 대표’ 논란에 침묵하다 21일 “합의추대가 가능하겠느냐”며 회의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비노계 내부에서도 반발이 감지됐다. 김종인 비대위 2기에 합류한 정성호 의원은 “민주적인 정당에서 가능할지는 상당히 의문이 든다”고 잘라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비노계 관계자는 “차기 전당대회 과정에서 김 대표가 팽당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친노계 일부에선 합의추대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왔다. 범친노계인 최재성 의원은 “추대도 할 수 있으면 하는 거고 아니면 경쟁”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가 2기 비대위에서 중용한 손학규계도 ‘김종인 체제’를 거부할 이유가 없다.
‘김종인 체제’가 장기화될지는 미지수다. 바람이 필요하다. 조직력도 인물 소구력도 없는 김 대표가 믿을 수 있는 것은 ‘대안 부재론’ 확산을 통한 합의추대다. 한 평론가는 “김 대표가 버틸 것으로 본다”며 “대안 없이 친노계도 비노계도 김 대표를 팽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김 대표가 버티면 향후 중앙위원회 등을 통해 김 대표를 합의추대하는 형식으로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더민주 내 각 계파의 다양한 목소리가 전당대회 룰을 둘러싼 기 싸움에 가깝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국면에서 밀리는 쪽이 ‘단합’과 ‘민생’을 고리로 김 대표와 전략적 제휴를 꾀하고 반대 세력을 궁지로 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더민주는 ‘문재인 체제’ 당시 최고위원제를 폐지했다. 대신 지역별 권역(5개) 대표와 여성·노인·청년·노동·민생의 세대·계층(각각 5명) 대표 등 총 10명의 대표위원을 호선 내지 투표를 통해 선출토록 했다.
‘김종인 비토’를 앞세워 보폭을 넓히는 계파는 ‘최고위원 신설’ 등 지도체제 변화를 노린 전략적 행보일 가능성이 크다. 룰의 전쟁이 끝나는 대로 ‘김종인 합의추대’ 논란이 사그라질 것이란 전망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이 과정에서 침묵 중인 ‘문심’(문재인 의중)이 더민주 세력재편의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때 문 전 대표와 ‘투톱 체제’를 이뤘던 이종걸 원내대표도 4월 21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문 전 대표가 결단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마지막 암초는 김 대표 본인이다. 4·13 총선에서 예상 밖 승리를 거뒀지만, 선거 기간 내내 김 대표는 이슈 주도력을 보여주는 데 실패했다. 경제민주화의 상징인 김 대표는 총선 막판 양향자(광주 서구을) 후보의 공약인 삼성 미래차산업 광주 유치 공약을 당 공약으로 격상시켰다. 삼성전자는 즉각 “사실무근”이라며 선을 그었다. 당시 제1야당의 대표가 아무런 확인 없이 일단 지르고 본, 전형적인 매표행위를 한 것이다.
이를 두고 당 내부에선 ‘셀프 공천’과 ‘국회의 세종시 이전’에 이어 세 번째 헛발질이라는 쓴소리도 나왔다. 외려 김 대표는 강경파의 목소리를 제어하면서 자신의 권한을 절대화하는 모순을 저질렀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암초가 외재적 요인이라면, 마지막 암초는 내재적 요인이다. 내재적 요인의 핵심은 리더십이다. 김 대표의 운명은 김 대표에게 달렸다는 얘기다. 중간은 없다. ‘모 아니면 도’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