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시티즌 사령탑에 오르자마자 포항과 경남FC를 상대로 연거푸 승리를 거머쥐며 ‘역시 명장은 다르다!’라는 찬사를 받아낸 김호 감독을 지난 16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만나 재미있는 담화를 나눴다.
2006독일월드컵 스위스전이 열렸던 라이프치히 하노버경기장에서 김 감독은 바로 기자의 옆 자리에 앉아 있었다. 무게가 꽤 나갈 것 같은 배낭에다 가볍게 요기할 수 있는 샌드위치와 물, 그리고 노트북을 가지고 다니며 기자들과 함께 움직이는 노(老) 감독의 모습은 너무나 신선했고 절로 고개가 숙여지게 만들었다. 젊은 사람들도 체력적인 한계를 느끼는 월드컵 취재를 재미있고 즐거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돌아다니는 그에게서 우리가 갖지 못한 ‘열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 후 경기장에서 종종 얼굴을 마주한 김호 감독. 오랜만에 기자석이 아닌 벤치로 돌아간 그는 이전보다 더 환한 얼굴로 기자를 맞이했다.
―더 젊고 건강해지신 것 같아요. 선수들과 함께 호흡하는 생활이 역시 체질이신가 봐요.
▲일 한다는 것 자체가 즐거운 거지요. 아직도 나를 필요로 하는 데가 있다는 게 신나는 일이잖아요. (지도자 복귀에 대해)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우연히 기회가 주어졌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은 팀이라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44개월간 쉬셨는데 그동안 지도자 생활하며 단 한 번도 이렇게 긴 시간을 현직에서 물러난 적이 없으셨잖아요.
▲유럽에선 ‘쉬었다’는 표현보다 ‘재충전의 시간’으로 표현해요. 실제로 그랬어요. 제대로 쉰 적이 없었어요. 숭실대 감독도 2년간 맡았었고 작년에는 월드컵을 돌기도 했구요. 한두 달 정도 외엔 계속 축구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막상 사회 생활을 접하다보니 그 안에선 제가 이방인입디다.
―이방인이라뇨?
▲그동안 제 생활의 대부분이 축구장과 숙소를 오가는 삶이었잖아요. 그러다보니 사회 친구를 만들 수도, 만나기도 어려웠어요. 그러다 갑자기 사회인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있다 보니까 편치가 않더라구요. 동화되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할까? 수원에서 나온 후 한동안 축구장과 거리를 두고 사회 친구들만 만났는데 거기도 제 자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찜찜했습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이젠 그 친구들도 편하게 받아들였지만 처음엔 힘들었어요.
―월드컵 기간에는 해설위원으로 기자 체험도 해보셨는데요.
▲그거 재밌습디다. 그리고 고생도 무지 했습니다. 월드컵 때 기자들과 같이 움직이면서 많은 경험을 했어요. 감독으로 있을 때 기자들이 쓴 기사에 흥분도 하고 열도 내고 그랬는데 막상 그 일을 해보니까 앞으론 기자들한테 뭐라고 싫은 소리도 못할 것 같아요(웃음). 기자들이 무지 고생하는 모습을 직접 보고 느낀 바가 컸으니까. 그런데 전 진짜 기자 노릇은 못했습니다. 고백컨대 워낙 글 솜씨가 없어서 담당 기자가 대필을 해줬거든요. 글 잘 쓰는 사람, 진짜 부러웠습니다. 전 아무리 노력해도 표현력이 없어서…. 정말 대단해 보여요.
―2003년 11월 16일 대구FC와의 홈경기를 끝으로 수원 사령탑에서 물러나셨어요. 그 경기 직전에 저랑 ‘취중토크’하신 거 기억나세요?
▲그럼요. 압구정동의 제 단골 일식집에서 만났잖아요.
―그때 수원 구단에 대한 섭섭한 감정이 인터뷰 중간 중간에 조금씩 묻어났어요. 10년 프로젝트를 앞두고 9년째에 물러난 터라 더더욱 아쉬움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
▲이젠 수원과의 헤어짐을 ‘유쾌한 이별’이라고 말합시다. 물론 아쉬움은 많았죠. 감독이 교체되는 줄 전혀 모르고 있다가 언론을 통해 먼저 알게 됐으니까요. 감독이란 자리가 영원할 수는 없는 거예요. 그걸 항상 가슴에 새기고 살았는데 그래도 막상 ‘당하니까’ 서운하긴 서운합디다. 이젠 그런 감정은 찌꺼기조차 남아 있지 않아요.
▲ 사진=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일을 제대로 못 하니까 자꾸 뭐라 하는 거죠. 제일 답답한 게 왜 우리 협회나 연맹은 미래를 위한 행정을 하지 못하느냐는 겁니다. 선수들이 아무리 열심히 뛰어 다니면 뭐 합니까. 행정적인 뒷받침이 제대로 되지 않는 상태에서 무슨 목표를 가지고 축구를 시작하겠느냐구요. 축구 선수가 은퇴 후 제대로 밥 먹고 사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됩니까. 10년 바짝 뛰어서 은퇴 후 먹고 살 걸 해놔야 하는데 현실이 전혀 그렇지 않잖아요. 선수에게 희생만 강요하고 부상 당하면 제대로 관리도 안 되잖아요. 운영하는 분들이 조금이라도 전문성을 갖고 일했으면 좋겠어요. 선수들의 병역 문제, 세제 관리법, 시민구단 지원 등등 협회나 연맹이 앞장 서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요.
(김호 감독은 이전 인터뷰에서 ‘설령 내일 깡통을 차는 일이 있어도 비굴해지고 싶지 않다’고 말한 적이 있다. 따라서 축구계의 주류로 불리는 연·고대 출신도 아니고 대학 졸업장도 없는 고졸 신분이지만 큰소리치며 할 말 하고 살 수 있었던 것은 ‘콩고물’에 눈멀지 않고 한길만 보고 살아온 용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었다.)
―대전이 시민 구단이라 지원 면에서 여러 가지로 힘든 점이 많겠어요.
▲수원 삼성도 창단할 당시 운동장도 없었고 전용 숙소도 마련되지 않았어요. 있는 시설 잘 활용해서 사용하면 괜찮을 거예요. 문제는 월드컵 경기장인데 우린 제도상의 맹점으로 인해 그 경기장을 두고도 사용하기가 어려워요. 월드컵 경기장을 지을 때는 축구 발전을 위한 거였잖아요. 그런데 여러 가지 제약으로 인해 축구팀이 경기장을 사용하는 게 너무 어렵습니다. (경기장을)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관리, 보수 등에서 비용이 지출되니까 자꾸 힘들게 되는 거죠. 참으로 아이러니한 현상이죠.
―야인 생활을 하면서 다시 프로팀 지도자를 맡을 수 있다고 자신했나요?
▲전혀 생각 못 했어요. 물론 기회가 오길 바란 적은 있죠. 그러나 크게 기대를 할 수 없었어요. 현실을 너무 잘 아니까.
―지도자에게 경험이란 부분은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 건가요? 한때 홍명보 코치로 인해 지도자의 경험론이 부각된 적이 있었잖아요.
▲현장 경험만큼 중요한 게 없습니다. 젊은 지도자라면 화려한 팀보다는 어려운 팀을, 프로보다는 대학이나 고등학교팀들을 맡아 고생을 먼저 배우는 게 순서라고 생각해요. 고생도 때가 있는 거예요. 지금의 제 나이에는 하라고 해도 못 합니다. 단계를 밟아서 올라가는 게 바람직해요. 그래야 나중에 큰 어려움을 겪어도 크게 좌절하거나 힘들지 않게 되거든요.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인데 지는 게임을 많이 해봐야 이기는 법을 알게 됩니다. 젊은 나이에는 많이 져도 쉽게 일어날 수 있지만 나이 먹으면 회복하기가 어려워요. 75년 동래고 감독 시절, 저도 무지 많이 져봤습니다.
―홍명보 코치에 대한 조언도 포함된 것 같은데 맞나요?
▲맞다 틀리다는 알아서 판단하십시오. 전 이렇게만 말하겠습니다. 너무 온실 속에서만 머무르면 더욱 좋은 지도자로 성장하기 어렵다고. 화려한 타이틀만 쫓아가지 말고 이름에 걸맞지 않는 타이틀도 달 각오를 해야 한다구요.
▲ 지난 1일 부산 아이파크와의 경기에서 작전지시하는 김호 감독.(위) 아래 사진은 해설위원 신분으로 2006 독일월드컵을 찾았던 김 감독이 기자와 함께 포즈를 취했다. | ||
▲물어 보는 사람이 없었으니까(웃음). 아들만 둘인데 큰애는 결혼해서 돌 지난 손자가 있어요. 솔직히 우리 같은 사람은 결혼을 안 해야 해요. 가장으로서 뭐 제대로 하는 게 있어야지. 그저 생활비 갖다 주는 걸로 내 할 일 다 했다고 생각하니까. 그리고 가족들이 노출되는 걸 원치 않아요. 아이들한테도 어디 가서 아버지가 누구라고 얘기하지 말라고 했어요. 애들도 그걸 바랐구요. 경기장에도 못 오게 했으니까.
―인터뷰 때마다 빠지지 않는 선수가 있어요. 바로 고종수인데요. 이전 수원 삼성 시절 때와 대전에서 만난 고종수,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요.
▲그동안 고종수란 네임 밸류에 맞는 관리가 안 돼 있었어요. 관심과 관리가 제대로 됐다면 지금보다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을 겁니다. 사실 고종수란 브랜드는 축구보다는 팬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존재예요. 우리가 그런 가치를 못 느끼는 게 안타까운 일이지. 이전과 비교해서 많이 성숙해져 있습디다. 빨리 기량을 회복해서 전성기 시절 못지 않은 플레이를 보여 주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요. 분명 고종수를 통해 대전 시티즌에도 스타플레이어가 존재한다는 걸 증명해 보일 겁니다.
―대전 선수들이 많이 긴장했다면서요? 말 나오기 전에 미리 알아서 머리 자르고 염색 풀고 그랬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전 선수들한테 농담을 잘 합니다. 단 연습은 강하게, 시합 때는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풀어주는 스타일예요. 그리 무서운 편이 아닌데…. 사실 젊은 선수는 외모를 치장할 필요가 없어요. 젊음 그 자체만으로도 큰 매력을 발하는데 뭘 가꾸고 꾸미고 그럽니까. 축구를 잘하면 못 생겨도 멋있게 보입니다. 실제 그렇지 않습니까?
―대전 시티즌 김호 감독이 보여줄 축구 색깔은 무엇인가요? 너무 질문이 거창한가요?
▲그러네요^^. 공격적인 축구를 지향할 겁니다. 시합에서 져도 경기 내용이 좋으면 절대로 뭐라 하지 않을 거예요. 축구가 재밌어야 팬들이 경기장에 찾아옵니다. 전 우승에 초점을 두지 않습니다. 신인 선수들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데 더 큰 관심을 기울일 거예요. 올시즌에는 대전이 6강 안에 들면 다행이고 시즌 마치고 동계훈련을 통해 김호의 색깔이 묻어나는 팀으로 탈바꿈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김호 감독은 ‘드물게’ 골프를 치지 않는 지도자다. 골프 칠 시간에 운동장 가서 한 선수라도 더 보는 게 감독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너무 자신의 인생을 타이트하게 몰고 간다는 기자의 말에 김 감독은 이렇게 못을 박는다. “이 기자, 남을 이긴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야.”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