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일 일본 오키나와 아카마구장에서 야구대표팀 투수들이 훈련을 하는 모습. 송진우 정대현 박찬호 류현진 한기주의 모습이 보인다. 연합뉴스 | ||
저마다 사연 많고 개성이 강한 선수들이 모이다보니 오키나와 전훈에선 대표팀 선수들과 관련된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속출하고 있다. 그 내용을 알아본다.
<<< 박찬호의 변화
뭐니뭐니해도 대표팀 선수 가운데 최고 스타는 박찬호다. 대표팀 주장을 맡은 박찬호는 이전 WBC 때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후배들에게 먼저 다가가 이런저런 농담을 걸면서 친화력을 보이고 있는 부분. 훈련 중 후배의 실수가 나오면 “야~,야~, 바짝 긴장했구나” 하는 추임새를 날려주면서 분위기 조성에 단단히 한몫을 하고 있다. 물론 대다수의 선수들과 비교하면 여전히 박찬호는 말수가 적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편이다. 단, 과거에 비해 훨씬 나아졌다는 얘기다. 대표팀에 동행하고 있는 KBO 관계자들도 “예년에 비하면 박찬호가 선수들과 훨씬 잘 어울리는 것 같다”면서 “박찬호가 한국 프로야구로 돌아올 걸 고려한다면 좋은 현상이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 선수들에게 자유를
태극마크를 달았다고 해서 가슴 설레고 의무감을 느끼는 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일이다. 요즘 프로야구 선수들은 병역 미필자들을 제외하면 대표팀 발탁을 그리 반기지 않는다. 잘해야 본전이고 자칫 성적이 나쁘면 비난만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2주 정도 지나고 특히 오키나와로 건너온 뒤에는 분위기가 바뀌었다.
대표팀 김경문 감독은 선수들에게 훈련시간에 집중할 것을 요구하지만 그 외에는 자유시간을 충분히 주고 있다. 구단 전지훈련 때에는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혹독한 훈련이 이어지곤 하는데 이번 대표팀에선 훈련 일정이 타이트하지 않게 진행되고 있다. 대개 오전 10시에 시작해 2시간 정도 훈련한 뒤 점심 식사를 하고 오후엔 평가전을 갖는다. 저녁 시간에는 자유롭게 숙소 밖으로 외출해 간단하게 맥주 한두 잔을 마시거나 파친코를 즐기는 선수들도 있다.
▲ 사진=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 선 코치는 마당발
오키나와 캠프에선 대표팀 선동열 수석코치의 활약이 돋보이고 있다. 대표팀이 시설 좋은 온나손 아카마구장을 사용하게 된 것 자체가 선동열 코치 덕분이다. 아카마구장은 삼성 라이온즈가 매년 2월에 전훈캠프로 사용하고 있는 장소인데 바닷가 근처에 있어 풍광이 좋고 숙소인 리젠시 시파크 호텔과도 10분 거리에 있어 편리하다. 선동열 코치가 주니치 시절 모셨던 은사인 일본 대표팀의 호시노 센이치 감독이 3년 전 “삼성이 아카마구장을 쓰도록 하라”며 호의를 베풀었는데 지금에 와서 한국대표팀이 쓰고 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선 코치는 일본통이다. 일본에 건너오면 도와주는 지인들이 많다. 이번에도 선 코치 주변에는 일본인 조력자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게다가 전훈캠프 인근의 지리와 먹거리 등에 대해 상세하게 알고 있다 보니 직접 나서서 대표팀의 동선을 결정해주곤 한다. 덕분에 선수들은 각자 입맛에 맞는 음식을 찾아먹을 수 있고 각종 시설도 편리하게 이용하고 있다. 삼성 라이온즈와 3년째 안면을 터온 온나손 촌장이 대표팀을 귀빈으로 여기고 있다. 대표팀이 온나손에 도착하자마자 이 지역에 없던 과속 측정 카메라가 설치되기도 했는데 대표팀 차량들이 이동하는 지역이 됐으니 사고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라고 했다.
▲ 일본통인 선동열 수석코치가 오키나와에서 자신의 마당발을 유감없이 과시하고 있다고. | ||
전훈캠프에는 30여 명의 대표팀 외에도 스파링파트너 격인 상비군 선수단이 동행한 상황이다. 한국 야구에서 이처럼 대규모 인원이 국제대회를 위해 한 곳에 캠프를 차린 것도 유례가 없는 일이다. 고무적인 건 상비군의 존재 덕분에 대표팀 선수들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는 사실. 이미 상비군 소속이었던 투수 장원삼(현대)과 외야수 민병헌(두산)이 즉시 전력감으로 인정받아 대표팀 소속으로 승격됐다. 상비군 소속 선수들 대부분이 병역 미필자다. 대표팀으로 승격돼야 병역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때문에 대표팀보다 오히려 상비군 선수들이 더 열심이다. 평가전 때도 마치 포스트시즌 경기를 방불케 하는 열정을 쏟아내고 있다. 현장을 다녀간 KBO 하일성 총장이 “저 친구들, 저러다 다치겠어”하면서도 흐뭇한 미소를 보인 건, 이 같은 상비군의 열정이 대표팀 선수들에게도 자극이 되면서 상승 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전훈 캠프가 안정을 찾으면서 대표팀 선수들은 오히려 최종 엔트리에서 탈락할까봐 걱정하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 대회 최종 엔트리가 24명이기 때문에 탈락자는 반드시 나온다. 8개 구단 대표 선수들이니만큼 자존심도 세다. 대표팀 박진만(삼성)은 “여기까지 와서 2주 동안 훈련받고 나서 11월 27일 대만으로 이동할 때 탈락하게 된다면 그게 웬 망신이냐”고 말했다.
오키나와 전지훈련에 참가 중인 대표팀 선수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라면 11월 27일 대만행이 아닌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는 일일 것이다.
오키나와=김남형 스포츠조선 야구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