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마다 자선 경기를 개최하며 사랑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진정한 훈남 홍명보 코치.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인터뷰할 때마다 느끼는 부분이지만 그는 너무 ‘모범적’이다. 한 마디로 틈이 보이지 않아 ‘취재하는’ 기자나 ‘취조당하는’ 그나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10년 전이나 10년 후나 변함없이 한 색깔을 고집하는 그만의 인생관 축구관에 새삼 감탄이 절로 나온다.
희로애락으로 점철된 2007년 끝 무렵, ‘젠틀맨’의 분위기를 확 풍기는 홍명보 코치와 송년 인터뷰를 나눴다.
#수석코치와 이사장
홍명보 코치는 홍명보장학재단을 운영하는 이사장이다. 대표팀에선 수석코치지만 사회에선 자신의 이름을 딴 장학재단을 활발히 이끌고 있으며 지금까지 6년간 총 123명의 장학생을 배출해 냈다. 물론 그 대상은 전국의 초, 중, 고등학생 중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축구 선수들이다. 프로축구 선수들 중에서 홍명보 코치처럼 장학재단을 운영하고 자선축구경기를 통해 소아암 어린이 돕기에 나서는 등 소외계층에 대해 꾸준한 사랑과 관심을 실천해온 스타플레이어도 드물다. 그러나 장학재단과 자선경기가 지금처럼 틀을 잡기까지엔 남모른 맘고생과 발품을 팔아야 했다고 한다.
“처음보단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스폰서 문제가 힘들다. 운동만 해온 사람이라 비즈니스적인 문제에 부딪히면 당황하기 일쑤였다. 도움을 요청한다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일을 하면서 여러 가지로 많이 배웠다. 어렵게 손을 내밀었을 때 도와준 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홍명보자선축구경기는 해마다 12월 25일에 열리는 축구 올스타 무대나 다름없다. 축구 선수들이 자선축구경기로 크리스마스를 반납해야 하는데다 관계자는 물론 취재진들까지 크리스마스를 축구장에서 보내야 하는 탓에 경기 날짜를 변경하자는 ‘항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심지어 ‘홍자경(홍명보자선축구경기)’에는 솔로 기자들만 가야 한다는 우스갯 소리도 있을 정도였다). 이에 대해 홍 코치는 크리스마스를 피하려고 노력했지만 방송 중계가 잡히지 않아 어려웠다고 설명한다.
#올림픽대표팀과 희로애락
대표팀 코치로 2년차를 보낸 홍 코치는 2007년 파란만장한 시간들을 보냈다. 가장 압권은 핌 베어벡 감독의 중도 퇴진에 따른 후임 감독설이었다.
“올림픽대표팀에는 성인대표팀과 비교할 수 없는 애정이 있었다. 어린 선수들과 처음 시작을 함께 했기 때문에 그들을 끌고 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사실 감독이란 걸 해보지 않아서 자신이 있다거나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한테 기회가 온다면 피하지 않겠다 라고만 마음먹었다. 왜냐고 묻는다면 선수들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홍 코치는 당시 자신의 거취 문제로 인해 축구인들 사이에서 ‘세대 갈등’이 불거졌던 에피소드를 털어놨다.
“나랑 같이 운동했던 선후배들 중에서 90% 이상은 ‘(감독)한 번 해봐라’하며 적극 지지를 표명했던 반면에 나이 드신 분들은 ‘너무 빠르다’며 ‘한 템포 쉬어 가라’고 조언을 해주셨다. 그 후 감독이 결정되고 내가 수석코치 후보로 다시 거론되자 선후배들은 ‘그냥 나오라’며 발을 빼길 바랐고 어르신들은 ‘그래도 네가 들어가서 박(성화) 감독을 도와줘야 하지 않느냐’고 잔류를 희망하셨다. 마치 내가 축구계 세대 갈등의 중심에 서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만약 내 입장, 개인적인 부분만 앞세웠다면 그만두고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남은 예선 경기가 6경기였고 훈련할 시간이 많이 남지 않은 상황에서 박성화 감독님을 도와드려야 한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 지난 21일 열린 홍명보 장학재단 장학금 수여식. 연합뉴스 | ||
6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의 성적을 거뒀지만 결과에 비해 대표팀에 향하는 눈길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았다. 홍 코치는 그 이유로 B조 5차전 우즈베키스탄과의 원정 경기를 들었다. 최악의 경기였다는 평과 함께 말이다. 심지어 “내가 대표팀 선수로, 코치로 참가했던 모든 대회를 통 털어 가장 못했던 경기였다”라고 표현할 정도다.
“지금도 이해가 안 된다. 당시 선수단 분위기도 좋았고 훈련 스케줄도 상당히 괜찮았다. 왜 우리 선수들이 그런 경기력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는지 정확한 이유를 모르겠다. 선수단 전체가 그 결과를 쇼킹하게 받아들였다.”
우즈베키스탄과의 원정 경기 후 축구계에선 올림픽대표팀 선수들을 향해 거센 비판이 일었다. 그중에서 가장 관심을 끌었던 게 젊은 선수들의 ‘거품론’. 그러나 홍 코치는 이에 대해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아직까지도 경기 결과가 좋지 않으면 그 원인으로 정신력, 체력 등을 꼽는 사람들이 있다. 이젠 그런 분석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전술적으로 무엇이 잘못됐고 어느 포지션에서의 역할이 문제가 있었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지적해야 한다. 선수들이 나태해서 경기에 졌다고는 보지 않는다. 감독, 코치가 원하는 전술적인 부분이 잘못됐을 수도 있고 그걸 이행하는 과정에서 선수들이 잘못 이해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난 단 한 번도 우리 선수들의 정신력에 문제가 있다거나 ‘거품’이 끼었다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감독 황선홍 코치 홍명보
황선홍이 부산 아이파크 감독으로 선임되면서 또 다시 홍 코치는 황 감독과 ‘라이벌’로 비쳐졌다. 포지션도 다르고 축구 인생 자체가 확연히 틀린데 두 사람은 오래 전부터 절친한 친구이자 라이벌로 손꼽힌다.
“(라이벌 운운은) 미디어에서 흥미를 유발시키기 위한 장치인 것 같다. 실제로 우리 두 사람은 ‘라이벌’이란 단어와는 무관하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코치이고 선홍이가 감독이 된 걸 두고 이상한 시각으로 보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개인적으로 선홍이가 이번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고 생각한다. 그 친구가 잘 하느냐 못 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젊은 지도자들의 축구계 입성이 달라질 수 있다. 중요한 계기가 되는 일이라 책임감도 클 것 같고 그에 따른 스트레스가 많을 것이다.”
홍 코치는 클럽팀 지도자에 대해선 ‘아직’ 생각 없음을 분명히 밝혔다.
“난 선수들을 모아 놓고 단기간에 좋은 경기력을 발휘시킬 수 있는 대표팀이 더 적성에 맞다. 아직은 프로팀에 관심이 없다.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이 자리에만 충실하고 싶다.”
#한국축구와 축구협회
홍명보 코치의 입장을 생각해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축구협회의 문제점을 ‘대놓고’ 물어보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굳이 협회라고 단정짓고 싶지 않다. 그냥 축구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존중해줬으면 좋겠다. 워낙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고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다. 그런 분위기로 인해 어려운 일들이 몇 차례 일어났었다. 가장 가슴 아팠던 게 대표팀 차출 문제로 코칭스태프와 연맹과 프로팀이 부딪히는 부분이었다. 아시안컵대회 때 이란 원정 경기를 떠나면서 프로팀으로부터 ‘중요하지도 않은 경기에 선수들을 데려 간다’는 지적을 받았다. 감독 입장이라면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 경기란 있을 수 없다. 그런 말들이 나오는 게 참으로 속상했다.”
홍 코치는 핌 베어벡 감독이 있을 때 프로팀 감독들과 베어벡 감독 사이에서 일어난 다양한 문제점들(물론 직접 부딪히진 않았지만)을 지켜보며 ‘한국인 코치’로서 말 못할 어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그러나 ‘계급장’을 떼고 객관적인 시각으로만 접근했을 때 외국인 감독에 대한 배려와 이해 부족이 조금은 아쉬웠던 게 사실이다.
또한 그는 히딩크 감독이 남기고 간 눈에 띄는 ‘선물’들 중에서 경기를 지배하는 능력이나 포지션에서의 역할 등등이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무작정 열심히 뛰기만 했던 옛날 한국식 축구로 회귀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