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청사가 위치한 서초동 일대에서 브로커들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 사이에 위치한 몇몇 커피숍은 브로커가 상주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수사를 받거나 송사에 휘말린 고객을 상대로 공공연히 ‘영업’을 한다. 법조계에 막강한 인맥을 구축해놓고 있다는 말은 필수다. 그러나 ‘허당’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음은 전직 법조 브로커의 설명이다.
“얘기되는 브로커가 얼굴을 내놓고 다닐 것 같으냐. 그들은 은밀하게 움직인다. 서초동을 배회하는 브로커 중 거의가 사기꾼일 것이다. 전관을 써도 쉽지 않은데 일개 브로커가 수사나 재판에 영향을 미친다고 떠벌린다는 거 자체가 믿어선 안 될 것이다. 진짜 브로커들만의 ‘이너서클’이 있다. 다만 일반인들이 고용하기엔 비용도 비싸고 접근 자체도 쉽지 않다. 그래서 주로 재계나 정치권 인사들과 거래를 하는 것이다.”
정운호 대표 비리에 연루된 이 아무개 씨와 한 아무개 씨 역시 서초동에선 비교적 잘나갔던 브로커로 통한다. 정 대표는 둘을 통해 자신의 검찰 수사와 재판에 영향을 미치려 했고 심지어 사업 확장에까지 활용하려 했던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또 둘은 정 대표 건 이외에도 방산비리 등 여러 의혹에 휩싸여 있다. 이는 법조 브로커의 활동 반경이 그만큼 넓다는 것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앞서의 전직 법조 브로커는 “브로커를 하다 보면 다양한 계층의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 중에서 관리할 필요성이 있는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스폰’을 한다. 법조계는 물론 의료계, 재계, 연예계 등 분야를 가리진 않는다. 언젠가는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투자’를 하는 것이다. 브로커의 힘은 곧 인맥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민원의 범위도 넓어진다. 법조 브로커들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결국 돈이 되는 것은 모두 한다고 보면 된다”고 털어놨다.
브로커 업계는 폐쇄적이다. 진입 장벽이 그만큼 높다는 얘기다. 이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인맥을 단시일에 구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갑자기 주목받는 브로커들이 있다. 법조계에서는 전관을 등에 업은 브로커보다 이들이 더 힘이 세다는 평가도 나온다. 바로 정권 실세와 ‘핫라인’이 개통된 브로커들이다. 이들은 정권 실세들과의 친분을 앞세워 법적 문제는 물론 각종 이권 사업에 관여한다. 정권 말이면 불거지곤 하는 대형 게이트의 십중팔구는 브로커가 개입돼 있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그동안 전혀 거론되지 않았던 새로운 브로커들이 등장했다고 한다. 방산업계의 한 무기 브로커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처음부터 브로커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리가 만드는 것이다. (실세와 친하다고 소문이 나면) 주위에서 가만두질 않는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브로커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친박 브로커’로 통하는 이들은 정치권과 변호사 등 전문직 출신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고 귀띔했다.
법조계에서도 ‘친박’으로 분류되는 브로커가 현 정부 들어 각종 민원을 해결했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돈다. <일요신문>은 취재 과정에서 그중 한 명을 접촉할 수 있었다. 정치권에 몸담은 경력이 있을 뿐 아니라 재벌가 친인척이기도 한 그는 현 정부 핵심 실세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소문이 나 있는 인물이다. 이에 대해 그는 “박 대통령 최측근과 알고 지내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그가 기자에게 전한 내용이다.
“현 정부 사정 타깃이 됐던 몇몇 기업들로부터 요청을 받고 움직인 적이 있다. 물론 비공식적으로다. 나는 주로 (청와대 등 다른 라인을 통해) 검찰 윗선에 선을 댄다. 그리고 동시에 수사 실무를 맡고 있는 검사들과도 접촉한다. 먹힐 때도 있지만 쉽지만은 않다. 한번은 유력 인사의 사면과 관련된 민원을 접수하고 나름대로 힘을 쓴 적이 있다. 그 인사는 실제로 사면이 됐다. 나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지 않은 사례를 받았다.”
법조뿐 아니라 방산이나 재계 쪽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쉽게 포착된다. 즉, 친박 성향 브로커에게로 물량이 쏠리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한국형 전투기 도입(KFX)을 둘러싼 논란이 일파만파 확산되자 방산업계에선 정권 핵심 인사들과 관련이 있는 무기 브로커가 뒤에 있다는 말이 나온 바 있다<<일요신문> 1227호 참고). 또 공공기관이나 대기업이 발주하는 입찰 역시 특정 친박 브로커들이 좌지우지했다는 얘기도 파다하다.
정치권과 사정당국에서는 친박 브로커들과 관련된 의혹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고 있는 배경에 주목하고 있다. 정권 후반기, 그것도 총선 참패로 박 대통령 레임덕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대형 게이트로 번질 수 있다는 측면에서다. 청와대 근무 경력이 풍부한 사정당국 고위인사는 “정권 후반기 검찰은 서서히 통제 범위에서 벗어난다. 검찰은 정치적인 조직”이라면서 “지금 특수부가 진행하고 있는 법조 브로커 수사가 현 정권 심장부를 겨눌 수도 있다”고 말했다.
친박 핵심부는 박 대통령 임기 후반을 대비해 지난해 12월부터 사정라인을 재편하며 친위체제를 강화했다. 그리고 그 정점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 있다는 평이다. 현재 검찰 주요 보직엔 우 수석과 가까운 검사들이 포진돼 있다. 서울중앙지검의 특수부 수사 보고가 김수남 총장보다 우 수석에게 먼저 올라간다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또 국내정보를 총괄하는 최윤수 국정원 2차장 역시 우 수석과는 ‘절친’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 검찰 내부에선 우 수석에 대한 비토 기류도 적지 않다고 한다. 김수남 총장과의 불화설도 나오고 있다. 친박 핵심부가 검찰의 법조 브로커 수사를 불안하게 바라보는 까닭이다. 박 대통령 대선 캠프 출신의 한 원로 인사는 “대통령 임기 후반 검찰이 뒤통수를 친 게 한두 번이냐. 이를 막으려 인사도 그렇게 했던 것인데…. 친박 브로커라는 게 있을 리 없겠지만 행여나 실세들이 연루돼 있다면 박근혜 정부도 지난 정권의 악몽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