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롯데를 떠난 허문회 전 감독은 야인으로 지냈다. 그런데 타격에 고민을 안고 있는 선수들이 개인적으로 연락을 취해 허 전 감독의 ‘과외’를 받았고, 그 내용이 조금씩 외부에 알려졌다. 올 시즌에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 입단한 송성문의 개인 코디네이터 자격으로 미국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 동행했고, 지난 7월에는 이정후의 도움 요청을 받고 LA에서 이정후 타격 훈련도 진행했다.
허 전 감독은 위례신도시에 ‘타격연구소’라는 작은 레슨장을 만들었다. 그러나 간판조차 없어 모르는 사람은 찾아가기도 어려운 곳이었다. 돈을 벌기 위함보다 자신의 제자들, 프로 선수들의 SOS가 오면 도움을 주기 위해 마련한 장소였다. 그는 이 작은 훈련장에서 롯데 감독 중도사퇴 후의 시간을 견뎌냈다고 말한다.
2024년 6월 20일 2505안타로 KBO리그 최다안타 신기록을 수립했던 당시 NC 다이노스의 손아섭(두산)은 대기록 달성 후 자신을 있게 한 과거 은사들을 언급하며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손아섭이 언급했던 4명의 은사들 중에는 제리 로이스터 전 롯데 감독, 강인권 전 NC 감독, 김무관 전 롯데 코치, 그리고 허문회 전 롯데 감독이었다. 손아섭은 2020년부터 2021년 5월까지 비교적 짧은 기간을 함께 했던 허 전 감독을 떠올리며 “허문회 감독님과는 지금까지도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데 야구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바꿀 수 있도록 도와주신 분”이라고 설명했다.
키움의 잔류군 선임코치로 활약 중인 박병호도 코치 선임 당시 기자회견 중에 지도자의 롤 모델로 김시진, 박흥식, 허문회 전 감독을 꼽은 바 있다. 박병호는 “내가 주가 되기 보다 선수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 지도자들”이라는 공통점을 언급하며 “성적이 좋지 않을 때 (나를) 믿어주는 말들이 큰 힘이 됐다”고 밝혔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이정후는 지난 7월 나흘간의 올스타 휴식기를 앞두고 특별한 계획을 세웠다. 전반기 마지막 16경기의 타율이 1할대로 떨어진 터라 휴식을 취하는 동안 타격감을 회복하는 게 급선무였다. 이때 그가 도움을 청한 이는 뜻밖에도 허문회 전 감독이었다. 이정후는 ‘MK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키움 히어로즈에서 타격코치로 인연을 맺었던 허 전 감독에게 “전반기 종료 직전 급하게 연락을 취해 미국으로 와줄 수 있는 지를 여쭤봤는데 흔쾌히 수락해주셔서 감사했고, 허 전 감독과 LA에서 타격 훈련을 받으며 후반기를 대비했다”고 설명했다.
허문회 전 감독이 히어로즈에서 타격 코치를 맡았던 건 2013년부터였다. 이후 2군 타격 코디네이터와 1군 수석코치로 2019년까지 활약하다 2020년부터는 감독 신분으로 롯데 선수단을 이끌었다. 히어로즈 시절 박병호, 강정호, 김하성, 이정후, 김혜성, 그리고 송성문까지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선수들은 모두 허 전 감독과 인연이 깊다.

“(이)정후는 미국 가기 전에도 여기서(타격연구소) 훈련을 했던 적이 있었다. 이후 비시즌 한국에 올 때마다 찾아오곤 했는데 올시즌에는 (송)성문이 개인 코디네이터 자격으로 샌디에이고 캠프에 합류했던 터라 따로 훈련할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 지난 7월에 연락이 왔다. 선수 스스로 답답함이 많았던 것 같다. 메이저리그 선수에게 내가 뭘 알려줄 수 있겠나. 정후의 답답함이 무엇인지를 들어주고, 대화하면서 훈련을 이어갔다. 타격 훈련을 마치면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겨 서너 시간 동안 또다시 야구 이야기만 나눴다. 메이저리거도 이토록 야구 관련 고민이 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정후를 만나고 돌아온 허 전 감독은 메이저리그 후반기가 시작된 이후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고 토로한다. 자신과 보낸 시간들이 이정후의 타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좋은 결과가 나올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허 전 감독은 “잠을 자다가 한 번씩 벌떡벌떡 깬다”며 미소를 짓는다. 이정후는 후반기 첫 경기였던 시애틀 원정에서 4타수 3안타 2득점으로 허 전 감독에게 감동의 메시지를 전했다.
허 전 감독과의 인터뷰에 1년 5개월 가량의 롯데 감독 시절의 이야기가 빠질 수 없었다. 타격코치 허문회는 선수들을 통해 그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초보 감독 허문회는 선수 기용과 프런트와의 불화설 등으로 여론의 비판이 뒤따랐던 게 사실이다. 허 전 감독은 “돌이켜보면 내가 부족했고, 아쉬움이 컸다”면서 “내 마음은 그게 아닌데 잘못 표현되거나 전달된 게 있었다. 그런 점에서 반성을 많이 했다”라고 설명한다.
“미디어와의 관계에서 서투른 모습을 보였다. 오해 아닌 오해가 쌓였고, 그걸 풀어가지도 못했다. 감독은 카멜레온의 이미지도 있어야 하더라. 난 그런 점에서 미흡했다. 선수들을 대할 때는 통했던 언어들이 미디어나 외부인에게는 그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 올 시즌 애리조나에서 염경엽 감독님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한 소리 들었다. 감독은 정말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야 하더라. 초보 감독 입장에선 매우 어려운 숙제였다.”
2021년 5월 8일 대구 라이온즈파크에서 열렸던 롯데와 삼성전은 롯데 감독 허문회의 마지막 승리였다. 팀 성적이 최하위였던 롯데는 9회초 9-8로 역전을 이룬 가운데 9회말 삼성 공격 때 지명타자 이대호가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포수 마스크를 쓰고 앉았고, 마무리 투수 김원중이 1사 2,3루 위기를 무실점으로 처리하고 팀의 1점차 승리를 지켰다.
“삼성과의 3연전을 치르면서 뭔가 ‘느낌’이 있었다. 그 느낌 때문인지 경기 후 선수들이 버스에 다 올라탔는데 미안하지만 다 내려오라고 부탁했다. 선수들과 사진을 찍고 싶었다. 선수들이 이상하게 생각하는 듯 해서 당시 이런 이야기를 해줬다. “내가 대학 때 우승도 해보고, 94년 LG에 있을 때도 우승해봤지만 오늘같이 기분 좋은 날이 없었다. 이 기분이 평생 갈 것 같다. 정말 고맙다”라고 말했던 것 같다. 부산으로 이동 후 화요일 오전에 이석환 대표님의 호출을 받고 사무실로 갔더니 “우리의 인연이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라고 말씀하시더라. 나도 “알겠습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라고 인사드리고 대표님 방에서 나왔다.”
중도 사퇴하는 감독들 대부분은 선수들과 제대로 인사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 허 전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그 ‘느낌’ 덕분에 삼성전 마치고 단체 사진을 찍었던 게 소중한 추억이 되고 말았다. 이후 이대호가 자신의 집에서 롯데 선수들과 함께 허 전 감독을 초대해 조촐한 송별회를 마련해줬다고 한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는데 (이)대호랑 선수들이 그런 자리를 마련해줘서 큰 감동을 받았다. 밖에서는 어떻게 봤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선수들, 프런트 직원들하고는 정말 잘 지냈다. 지금도 연락이 올 정도로 말이다. 어느 날 지인이 내게 너무 ‘대쪽’ 같은 이미지라서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안타까워하더라. 나이를 먹어도 배워야 할 게 많은 것 같다.”
롯데 감독직에서 물러난 후 허 전 감독은 몇 차례 타 팀의 코치직 제안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허 전 감독은 정중히 거절 의사를 나타냈다고 한다. 감독 자리가 아니라서 거절했느냐고 물었더니 손사래를 친다.
“내가 가고 싶은 팀이 있었다. 그 팀의 제안을 기다렸는데 불러주지 않더라. 다른 팀은 내가 가서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왜 그 팀에 가고 싶었느냐 하면 내가 가장 힘들 때 손을 잡아준 팀이고, 나를 코치로 성장시킨 팀이고, 해외로 코치 연수도 보내준 팀이다. 다시 현장으로 돌아간다면 내가 가고 싶은 팀에서 시작하고 싶었다.”
허 전 감독은 그 팀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지 않았지만 그가 설명한 내용으로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다. 키움 히어로즈였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제대로 인사조차 못하고 나온 롯데 팬들에게 “감독할 때 미숙한 점이 많았다”면서 “이해를 부탁한다. 항상 롯데를 응원하겠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정우람 코치 “김서현·정우주, 2군에서 훈련 많이 했다”
한화 이글스가 흔들리고 있다. 8월 20일 현재 6연패에 빠진 한화는 48승 56패 3무로 NC 다이노스, 롯데 자이언츠에 밀려 8위까지 떨어졌다. 전반기를 6위로 마무리했던 한화는 5위 두산에 1.5경기 뒤진 상황이었는데 지금은 두산과의 승차가 8경기까지 벌어졌다.
선발 마운드가 흔들리고 불펜 또한 평균자책점이 6.70으로 리그 9위까지 떨어지면서 동력을 잃고 있는데 김경문 감독은 지난 18일 퓨처스에서 활약 중이던 김서현과 정우주를 다시 불러올렸다.
지난해 33세이브를 올린 김서현은 올 시즌 12경기 평균자책점 12.38로 부진해 5월 13일 1군에서 말소됐다. 지난 7월에는 피칭 메커니즘 재정립을 위해 일본 단기 연수까지 다녀왔을 정도로 구단도 김서현의 복귀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프로 2년차 정우주는 올 시즌 36경기 등판해 1승2패, 5홀드 평균자책점 6.37로 기대만큼의 성적을 내지 못했고, 7월 7일 등판을 마지막으로 1군에서 말소됐다. 이후 어깨에 미세한 불편감이 있어 회복에 집중했고, 서서히 캐치볼하면서 실전 경기에 임했다.
김서현은 1군 복귀 전 퓨처스리그 세 차례 등판에서 3이닝 1실점(비자책)만 기록했고, 정우주는 3경기 3이닝 무실점으로 안정적인 마운드 운영을 보였다. 변화구의 완성도가 좋아졌다는 평가도 뒤따랐다.
퓨처스리그에서 이들과 함께 했던 정우람 코치는 김서현, 정우주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김서현은 왼손 타자에게 빠지는 볼이 많았는데 팔 스윙을 작게 가져가면서 보완하려고 노력했다. 일본에 갔다와서 기대했던 만큼의 결과가 뒤따르지 않아 조금 상심하기도 했지만 금세 마음을 다잡고 캐치볼 할 때부터 이전과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였다. 정우주는 퓨처스에서 정말 많은 훈련량을 소화했다. 하체가 안정되면서 왔다 갔다 하는 제구가 많이 잡혔고, 특히 포크볼 제구가 좋아졌다. 약 한 달가량 퓨처스에서 머물며 마음을 강하게 다잡았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정 코치는 1군으로 복귀한 두 선수를 향해 솔직한 심경을 전했다.
“코치 입장에서는 그들이 지금 올라가도 괜찮은지, 아니면 퓨처스에서 더 다듬고 만들어서 올라가야 하는지를 놓고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 1군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에 현실을 외면하기도 어렵다. 선수들도 관중들이 많고, 더 강한 상대를 만나 싸울 줄도 알아야 하기 때문에 응원하는 마음으로 올려보냈다. 부디 1군에서 우리가 노력했던 모습들이 나오길 기대한다.”
그러나 김서현, 정우주는 아직은 정우람 코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정우주는 8월 19일과 20일 연속 마운드에 올랐지만 각각 ⅔이닝 1탈삼진 1사구를, ⅔이닝 2피안타(1피홈런) 1볼넷 1탈삼진 3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됐고, 김서현은 20일 KIA전에 105일 만의 1군 등판 기회를 잡고 ⅔이닝 2피안타 1사사구 1탈삼진 1실점, 패스트볼 최고 구속은 151km/h를 찍었다.
아직은 이들에게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