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이명박, 박근혜, 고건 | ||
아무리 3위라지만 언제든지 선두로 치달을 잠재력을 갖춘 이들이지만 그러나 마음은 그리 편치 않다고 한다. 이 전 시장은 ‘탈당론’에 시달리며 흠집이 계속 나고 있고, 박 전 대표는 ‘보수’로 찍혀 지지층의 외연을 넓히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고 전 총리는 갈수록 경쟁력에 신뢰도가 떨어지고 있는 등 빅3의 머리는 어지럽다. 대권주자들의 ‘두통’, 그 진원지를 따라가 봤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한나라당 내 지지도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 비해 처지는 편이지만 국민 여론조사에서는 선두를 달리고 있다. 최근에는 경부운하 프로젝트, IT 비전 정책 탐사 등의 대외 활동으로 조용하지만 강력한 대권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이 전 시장은 박근혜 전 대표, 고건 전 총리와 비교해 콘텐츠가 가장 풍부하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정책으로만 승부한다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이 전 시장이지만 대권 경쟁 구도 자체만으로 보면 요즘 상황이 그리 탐탁지만은 않다. 우승 실력을 갖추고도 예선 통과가 녹록지 않는 점이 문제다.
이 전 시장의 경우 박근혜 전 대표보다 본선 경쟁력이 더 높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온 바 있다(지난 8월 초 조인스닷컴 리서치앤리서치 공동 조사 결과). 이 전 시장은 대권주자 가상대결에서 고건 전 총리와 대결할 경우 팽팽한 오차 범위 내에서 이긴 반면, 박 전 대표는 근소한 차이로 고 전 총리에게 패하는 것으로 나온 것.
하지만 문제는 한나라당 경선 통과 여부. 이 전 시장 측은 현행 당내 경선제도 하에서는 승리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국민참여 선거인단과 여론조사에서 다소 유리하다고 하더라도 대의원과 당원들이 박근혜 전 대표에게 ‘몰표’를 던질 경우 이 전시장의 예선 통과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전 시장 측은 이 문제에 대해 여러 해법을 구상 중이지만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최근에는 이 전 시장의 일부 측근들이 여권의 오픈 프라이머리를 한나라당도 받아들여 ‘당심’보다 ‘민심’으로 승부수를 띄우자는 의견을 많이 개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여권의 오픈 프라이머리는 오히려 한나라당을 교란시키려는 전술”(한국외국어대 황성돈 교수)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기 때문에 무작정 오픈 프라이머리를 받아들이자고 외치는 데는 무리가 있어 주춤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아무리 부인해도 사라지지 않고 불거져 나오는 이야기가 ‘탈당론’이다. 예선 통과 가능성이 희박해질 경우 한나라당을 탈당해 신당 창당 수순을 밟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이에 대해 “이 전 시장은 정치인이기 전에 철저한 장사꾼 기질이 있다고 본다.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곁을 떠난 까닭도 의리보다는 냉정하게 ‘이익’을 챙겼기 때문 아니겠는가. 그런 이 전 시장이 앉아서 조용히 전사하는 길을 택하겠는가. 어떻게든 최선의 선택을 할 것이란 점에서 탈당을 포함한 모든 경우의 수가 앞으로도 계속 유효할 것”이라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이강래 의원도 “(이 전 시장의) 탈당은 굉장한 모험이겠지만 그의 독자 행보 가능성은 상당히 크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그가 탈당하는 순간 ‘이인제 학습효과’에 짓눌린 한나라당 지지자들의 모진 비난을 감수해내야만 한다. 그래서 이 전 시장 측에서도 탈당 뒤의 후유증을 우려하며 충격적인 선택을 자제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도 그동안 ‘공부’에만 몰두하며 조용한 행보를 계속해오다 최근 여의도에 새 사무실을 오픈하며 본격적인 대권 대장정에 들어섰다. 그리고 지난 9월 15일에는 서울 용산구 쪽방센터를 방문해 성금 1800만 원을 전달하는 등 대외 활동도 재개하고 있다. 박 전 대표는 9월 말 독일 벨기에 등지를 방문하며 글로벌 리더로서의 이미지도 쌓을 계획이다. 박 전 대표는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 지난 8월 말부터 6주 연속 이 전 시장에게 선두를 내주었지만 최근 들어 공식 활동을 재개하자 다시 1위를 탈환하는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김형준 교수는 최근 ‘한나라당 집권, 확실한가’라는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는 중도층의 지지도에서 앞섰기에 당선이 가능했다”고 전제하면서 “한나라당의 높은 지지도는 진보가 퇴조한 것의 착시현상일 뿐이다. 반면 97년 대선에서 22.3%에 그쳤던 중도층은 20~30대 젊은 세대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면서 지난 5·31 지방선거 당시에는 42.6%까지 늘어났다”며 중도세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죽었다 깨어나도’ 한나라당에게 표를 던지는 30%의 보수 지지층 외에 한나라당에게 ‘2%’ 부족한 표를 중도층에서 찾아야 한다는 주장에 다름 아니다.
한나라당의 또 다른 의원은 이에 대해 “박 전 대표는 먼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인식에서부터 출발하는 이념적 고리를 풀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절대 지지층의 외연을 넓힐 수 없고 중도층의 지지도 받을 수 없다”고 밝히면서 “그럼에도 박 전 대표는 소장파를 두고 ‘신뢰하기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감정적인 벽을 쌓고 있다. 소장파를 포함해 외연을 넓히지 않는다면 박 전 대표에게 대선 승리의 보장은 없다”고 분석하고 있다.
박 전 대표도 자신의 아킬레스건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 부족한 ‘2%’를 채우기 위해 선택한 것이 ‘호남과의 화해’다. 박 전 대표가 2년 재임 동안 틈만 나면 호남을 찾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코드’를 맞추어 온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라는 것. 박 전 대표 측은 호남을 통해 수도권 중도층의 지지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적인 기대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박 전 대표의 또 하나의 고민은 이명박 전 시장을 어떻게 전략적으로 ‘관리’하느냐의 문제에 있다. 현재와 같이 ‘박근혜 대세론’이 형성된 상황에서는 이 전 시장이 밖으로 뛰쳐나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 전 대표로서는 자신의 영향력이 더욱 커지는 것을 스스로 제어해 이 전 시장과 ‘힘의 균형’을 이루어내야만 한다. 그렇게 해야 이 전 시장이 계속 당내 경선에 머무를 명분을 주는 동시에 대선에 독자적인 후보로 당당하게 나설 가능성이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한편 빅3 가운데 지지율 하락으로 가장 난감해하는 주자는 바로 고건 전 총리다. 그는 지난 5·31 지방선거에서 이렇다 할 정치적 역할을 하지 않았다. 그 뒤 부랴부랴 ‘희망연대’를 띄우며 지지율 만회를 노리고 있지만 결과는 시원치 않다는 게 중론이다.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 고 전 총리는 지난 6월부터 ‘이-박’ 양강 체제가 고착화되면서 3위로 내려앉은 뒤 한번도 1위에 올라서지 못하고 있다. 특히 지난 8월 말 ‘희망연대’ 출범 뒤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도 오히려 지지율이 뒷걸음질 치는 등 좀처럼 반전의 모멘텀도 찾지 못하고 있다.
고 전 총리의 고민은 최근 열린우리당 이목희 전략기획위원장이 지적한 점과 맥을 같이 한다. 이 위원장은 “고 전 총리의 지지율이 계속 하락할 것”이라고 전하면서 “고 전 총리는 유력한 대선 후보로서의 기초조건을 갖고 있지 못하다. 시대정신, 자력으로 이룬 성과에 대한 국민적 인정,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를 돌파할 전투력 그 어느 것도 없다”며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고 전 총리로서는 한때 연대의 대상이었던 김근태 의장의 계보인 이 위원장 뼈아픈 지적에 가슴이 쓰리겠지만 ‘희망연대’의 ‘초라한’ 출범만을 놓고 보면 고 전 총리도 한계에 온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고 전 총리 측으로서는 “시간이 변수다”라며 느긋한 입장이다. 현재의 정치 구도 아래에서 고 전 총리의 파괴력이 보이지 않지만 향후 전개될 정계개편에서 ‘대주주’로 활약한다면 상황은 호전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하지만 고 전 총리는 자신이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정치의 전면에 나선 뒤 10·26 재보궐 선거에서 의미 있는 결과를 내지 못하는 이상 중도개혁 세력 재편론은 ‘일장춘몽’에 그칠 것이라는 지적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래저래 대권 주자 ‘빅3’들의 가을은 ‘편두통’과 함께 다가오고 있는 것 같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