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홍순국 메이저리그 사진 전문 기자 | ||
실제 15일 경기에서 백차승은 기막힌 투구로 2게임 연속 퀄리티스타트(7이닝 2피안타 3실점)를 이어가며 쾌투를 펼쳤고, 추신수는 적시 2루타로 3경기 연속 안타 행진을 벌였다(10회 연장 끝에 샌디에이고가 8-3으로 역전승).
지난 5월 28일 10년간 몸담았던 시애틀 매리너스를 떠나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유니폼을 입게 된 백차승. 시애틀에서 지명양도 선수로 공시된 후 새로운 팀이 나타날 때까지 무작정 기다린 시간들이 참으로 괴롭고 불안했다는 그는 지난 스프링캠프 때부터 ‘이상하게’ 샌디에이고로 팀을 옮기는 꿈을 꿨다는 내용도 처음으로 밝혔다. 야구에 ‘올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백차승을 12일과 13일, 두 차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반갑게 해후했다.
목소리가 아주 밝았다. 비가 자주 내리는 시애틀을 떠나 햇빛이 쨍쨍한 샌디에이고의 쾌청한 날씨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리라. 샌디에이고에서 보내는 하루하루가 아직까진 ‘해피데이’라고 말하는 백차승의 ‘업’된 음성에서 그의 트레이드가 잘된 선택이었음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아파트를 구할 때까지 샌디에이고 지인의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는 백차승은 트레이드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트레이드) 발표가 난 후 3일 정도는 먹먹했어요. 트레이드 자체가 믿겨지지도 않았죠. 동료 선수들이나 코칭스태프들이 정말 편안하게 잘 해줬거든요. 선수라면 누구나 한 팀에서 시작과 끝을 보고 싶어해요. 저 또한 마찬가지였고요. 시애틀은 절 키워준 구단이라 여기서 선수 생활의 마지막도 함께 하고 싶었어요. 모든 게 제 탓이죠 뭐. 잘해서 자리 잡았으면 절 다른 팀으로 보냈겠어요? 더 이상 (등판)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이번 선택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어요.”
백차승은 지난 스프링캠프 때 자신의 트레이드를 의심치 않았다고 한다. 투수진 구성과 돌아가는 팀 분위기를 봤을 때 마이너리그 옵션을 모두 소진한 백차승의 트레이드가 당연시되는 분위기였기 때문.
“그때 (팀에서) 어떤 조치를 취할 줄 알았어요. 마음의 준비도 했고요. 그런데 절 롱릴리프로 데려간다는 거예요. 상당히 의외였죠. 그런데 그게 얼마 못 가더라고요. 감독님 입장에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거예요. 그나마 시즌 중에 풀어줘 좋은 곳으로 트레이드시켜준 게 고마운 일이죠.”
백차승에게 지명양도 공시 후 가고 싶었던 1순위 팀이 어디였냐고 물었다. 그는 “샌디에이고였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샌디에이고와의 인연에 대해 재미있는 설명을 곁들였다.
“캠프 때 시애틀과 샌디에이고가 같은 훈련장을 썼어요. 이상하게도 샌디에이고 팀이 친근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진짜 말로 표현하기 힘든, 어떤 느낌이라고나 할까? 만약 내가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된다면 샌디에이고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더 희한한 건 캠프 때 꿈을 꿨는데 제가 샌디에이고로 트레이드되는 꿈이었어요. 기분 묘하더라고요. 시애틀을 나와 다른 팀의 러브콜을 기다리면서도 내심 샌디에이고로부터 연락이 올 것이라고 기대했었죠.”
시애틀 공항에서 샌디에이고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를 때 백차승은 오래 전 한국을 떠났을 때의 상황이 생각났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미국행 비행기에 탑승한 후 아쉬움, 미련, 두려움, 떨림 등이 10년의 세월과 함께 오버랩되됐고 새로운 세계에 발을 내딛는 백차승의 마음을 조용히 흔들었던 것이다.
▲ 김병현이 운영하는 일식집에서 점심을 먹고 사진을 찍은 박찬호와 백차승. 그들의 미소에서 코리안 메이저리거의 자신감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 ||
“기분 좋았어요. 3일 동안 마운드에 오르기만 기다렸는데 마침내 행운의 기회가 주어졌고 처음으로 내셔널리그 마운드에 오르는 터라 긴장과 부담을 동시에 안고 섰어요. 솔직히 팬들에게 백차승이 어떤 선수인지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1이닝 짧은 투구라 전력을 다할 수 있었죠. 그런데 시카코 컵스와의 선발전(6월 3일)은 확실히 힘들더라고요. 컨디션이 좋았는데도 불구하고 오래 던지는 데 익숙하지 못해 완급 조절에 실패했어요. 지명할당 후 일주일 동안 공을 안 던졌거든요. 그러다 갑자기 70개 가까이 공을 던졌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1회에 마치 불펜 투수처럼 전력 투구를 했다가 2회부턴 체력이 급격히 떨어졌죠. 선발에 대한 감각을 키우는 게 숙제로 남은 경기였어요.”
6월 8일 뉴욕 메츠전에서 다시 선발 등판한 백차승은 6이닝을 7안타 1실점으로 막아내는 안정된 피칭으로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메츠전은 타자 한 명 한 명을 신중하게 상대했어요. 이전처럼 힘으로만 밀어붙이려다 제 풀에 지쳐 쓰러지는 일은 다시 만들지 않겠다는 각오도 다졌고요. 결국 마운드에선 심리전이에요. 다른 건 다 필요 없어요. 상대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을 때 강하고 살벌하게 째려봐야 해요(웃음). 강한 눈빛으로 상대를 압도한다면 이미 승부는 접고 들어가는 거죠.”
기자가 얼마 전 만난 롯데의 송승준(백차승의 절친한 친구)이 타자와의 기 싸움에서 지지 않으려고 턱수염을 기른다고 하자, 백차승은 “전 눈빛으로 다 제압할 수 있어요”라며 호탕한 웃음을 터트린다.
아무리 날씨 좋고 팀 분위기가 좋고 감독이 잘해준다고 해도 샌디에이고에서도 백차승의 현실은 ‘생존 경쟁’이다. 누구보다 윌프레도 레데즈마와의 선발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돼 백차승은 향후 등판하는 경기에서 이전보다 더 인상적인 투구 내용을 선보여야 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운동은 참 잔인한 것 같아요. 과정도 변명도 필요 없이 오로지 결과만을 놓고 평가하니까요. 가끔은 야구한테 서운할 때도 있는데 그래도 야구를 떠난 다른 건 생각할 수 없더라고요. 경쟁을 즐기려고 해요. 마음 놓고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생활할 수 있다면야 더할 나위 없겠지만 아직은 좀 더 도전하라고 이런 상황들이 주어지나 봐요.”
백차승은 샌디에이고에서 만난 LA다저스의 박찬호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부산고 시절 박찬호를 통해 메이저리거의 꿈을 키운 탓에 박찬호의 부활을 보는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고 한다.
“한마디로 대단해요. 찬호 형 던지는 걸 보면 감탄이 절로 나와요. ‘어떻게 하면 저렇게 던질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길 정도로 엄청난 것 같아요. 수많은 경험과 특유의 오기와 배짱에다 제구력과 파워를 더 장착하니까 다시 예전의 찬호 형으로 변하더라고요. 야구 철학이 분명한 분이고 어떤 상황에서든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자세가 후배들에게 귀감이 돼요.”
아메리칸리그에 익숙했던 백차승이 내셔널리그에서 맛본 타자들의 특징은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아메리칸리그의 선수들이 공격적인 야구를 한다면 내셔널리그는 좀 더 빠른 야구를 추구하는 것 같아요. 번트도 대고 치고 달리는 작전도 구사하고요. 좀 한국 야구와 비슷한 스타일인 것 같아요.”
시애틀에선 (비 때문에) 자주 (야구장) 지붕을 닫고 운동했는데 샌디에이고에선 항상 태양 아래서 야구를 하고 있다는 백차승. 말수 적고 내성적인 성격의 그가 이렇게 말이 많아진 걸 보면 ‘태양’이 그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듯하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