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망론의 최전선 원투펀치는 박원순 서울시장과 안희정 충남도지사. 차기 대권구도를 둘러싼 정계개편의 핵심은 ‘세대·시대·세력’ 교체다. 이는 여권 친박(친박근혜)계와 비박(비박근혜)의 막장 혈투, 더민주 친노(친노무현)계와 비노(비노무현)계의 끝없는 갈등의 반대급부다.
박원순 서울시장. 서울시 제공
통상적으로 총선이 ‘회고적 투표’인 반면, 대선은 시대정신을 논하는 ‘미래지향적 투표’다. 이 점을 감안하면 2017년 대선은 2018년 체제를 위한 정초 선거(국가의 정치 구조를 결정짓는 선거)가 될 가능성이 크다. 세대교체를 넘어 한국 정치 지형을 뒤흔드는 매개물이 대선판을 휩쓸 것이란 얘기다.
변수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불안한 동거체제를 형성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다. 킹과 킹메이커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김 대표의 행보가 문재인과 박원순·안희정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구도는 정치 기지개를 켠 손학규 전 더민주 상임고문과 여권 내 비주류를 껴안는 동서연대론을 고리로 치고 나가는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 공동대표의 차기 행보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문재인 필패론’은 2012년 대선 이후 끊임없이 제기된 야권의 숙제다. 그 밑바탕에는 문 전 대표에 대한 ‘호남 비토론’이 깔렸다. 특히 4·13 총선에서 발발한 호남 참패는 ‘문재인 한계론’에 불을 붙였다. 4·13 총선에서 더민주는 호남 28석 중 3석을 얻는 데 그쳤다. ‘야권의 심장’ 광주에서는 단 1석도 건지지 못했다.
친노 대선 후보의 한계는 명확해졌다. 반면, 4·13 총선 전후로 불기 시작한 ‘세대교체론’은 세력교체를 부채질했다. 김부겸 더민주 당선인을 비롯해 여권의 나경원 새누리당 의원, 유승민 무소속 의원 등을 중심으로 한 세대교체 주자들이 전면에 나설 수 있는 판이 깔리게 됐다. 친노계에 대한 호남 비토와 세대교체론이 맞물리면서 문 전 대표로 정권교체를 할 수 있느냐는 근본적인 물음이 파생한 것이다. ‘문재인 대항마’ 찾기의 다른 이름은 ‘문재인 한계론’이다.
5·18 광주 민주화항쟁 36주기 기념식차 광주를 찾은 문 전 대표가 5월 17일 광주·전남 지역 낙선자들과의 만찬 자리에서 “선거에 도움을 주려 했는데 오히려 피해가 된 것 같다”고 밝힌 것도 이런 맥락과 무관치 않다. 이 자리에는 같은 당 신정훈 의원과 송갑석 양향자 정준호 전 후보 등이 참석했다. 다만 문 전 대표는 총선 국면에서 승부수로 던진 ‘호남의 지지가 없으면 사퇴’라는 정계은퇴 발언에 대해선 침묵했다. 소속 후보들에게 ‘미안하다’라는 말로 이를 갈음하며 사실상 정계은퇴 발언을 거둔 셈이다. 이에 따라 야권 대선 경쟁은 문 전 대표를 필두로 ‘무한경쟁 시스템’에 돌입할 전망이다.
무한경쟁의 첫 번째 주자는 박 시장이다. 6월 정국에 앞서 박 시장은 큰 보폭으로 호남 민심의 문을 두드렸다. 박 시장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앞서 5월 12일부터 2박 3일 일정으로 광주로 내려갔다. 그는 12일 밤 9시 48분께 더민주 당선인 워크숍을 찾았다. 예고 없이 온 전격적인 방문이었다. 더민주 한 관계자는 “박 시장이 오느냐”고 되물었다. 워크숍을 찾은 박 시장은 “광주는 늘 정치 사회적인 큰 전환과 변화의 진원지였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앞서 박 시장은 같은 날 윤장현 광주시장과 지역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등을 만났다. 호남의 맹주가 없는 상황에서 박 시장이 소속 의원들과 호남 민심에 대한 소구력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적 행보에 나섰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박 시장은 다음 날 전남대 강연에서는 “뒤로 숨지 않겠다. 박관현·윤상원 열사처럼 역사의 대열에 앞장서 역사의 부름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더 행동하겠다”며 사실상 차기 대권행보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이후 박 시장은 조기 대권 행보설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자 “민생문제 해결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 발 뺐으나 박 시장 측은 서울시장 3선과 차기 대선 출마 등을 놓고 고심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박 시장의 최대 강점은 ‘서울시장 프리미엄’이다. 그는 재선 고지에 오른 2014년 6·4 지방선거 직후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한창이었던 2015년 6월께 일부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선주자 1위에 등극하기도 했다. 장점은 ‘강한 디테일’이다. 실제 박 시장은 정부와 여야 정치권이 메르스 사태를 놓고 공방을 벌이는 사이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감염 병원 공개 및 해법 제시를 통해 국민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았다. 타이밍 정치를 통해 ‘위기관리능력’을 평가받은 셈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 지점이 박 시장의 딜레마다. 당시 당 대표를 맡았던 문 전 대표 측 내부에선 박 시장과 공동 기자회견을 원했지만 박 시장이 단독 기자 브리핑을 열면서 양측이 적잖은 갈등을 빚은 것으로 알려졌다. 세세한 정책마다 ‘이미지 정치’에 나서는 박 시장이 스스로 정치적 덫을 만들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자체를 넘어 국가 전체를 운영하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느냐는 것이다.
박 시장의 한계는 정책의 각론을 집어삼키는 총선 정국에서 더욱 뚜렷해졌다. 지난해 말 야권 발 정계개편 이후 여의도 정치권이 ‘김무성(새누리당 전 대표)·문재인·안철수(국민의당 상임 공동대표)’의 삼각 구도를 형성하자 박 시장 존재감은 이내 하락하면서 ‘박원순 돌풍’을 지속하는 데 실패했다. 더민주 한 관계자는 “박 시장은 장점도 많지만, 한계도 적지 않은 인물”이라고 잘라 말했다. 2018년 체제의 잣대인 국가경제 조정 능력과 사회통합 능력, 통일추진 능력 등은 여전히 물음표라는 얘기다.
두 번째 주자는 안 지사다. ‘원조 친노’이기도 한 그는 야권 세대교체론의 선두주자다. 또한 JP(김종필 전 국무총리) 이후 무주공산이 된 충청권 대망론의 주인공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친노(세력)와 2040(세대), 충청권(지역) 유권자에 대한 소구력에선 비교우위를 가진다. 안 지사는 최근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시대정신과 가치를 국민과 공감할 수 있다면 누가 됐든 응원한다”며 “내가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준비와 조건이 돼 있다면 나도 얘기할 것이다. 여기, 나도 있다고”라고 말했다. ‘포스트 문재인’ 체제를 위한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안희정 충남지사.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안 지사의 가장 큰 장점은 ‘비욘드 노무현’을 실현할 유일한 원조 친노 인사라는 점이다. 그는 2009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친노라고 표현되어 온 우리는 폐족입니다”라며 ‘친노 폐족론’을 꺼낸 뒤 이후 친노계보다는 독자적인 정치행보에 치중했다. 이른바 ‘안희정식 정치’에 시동을 건 것이다.
아킬레스건도 존재한다. 광역자치단체장이 아닌 정치인 안희정에 대한 검증 부재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그간의 도정 운영에 대한 검증은 물론, 국가 지도자로서의 검증을 해야 한다”면서 “일반적인 통합론만 얘기했던 그간의 행보에서 벗어나 구체적인 현안에 대한 구상을 피력해 국민적 검증을 받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변수는 역시 ‘김종인’이다. 김 대표와 문 전 대표는 일시적 계약 관계다. 차기 대선 때까지 동거 체제를 형성할 수도 있지만 ‘왕’은 두 명이 될 수 없는 법이다. 문 전 대표는 차기 대선에 직접 등판할 가능성이 크다. 김 대표는 반반이다. 킹으로 나선다면, 무한경쟁 시스템은 정점을 찍게 된다. 킹메이커를 자처할 경우 박 시장과 안 지사 등 새로운 인물과의 전략적 제휴로, 세력과 구도 주도권을 쥘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가 박 시장과 안 지사 중 어느 쪽을 물밑 지원하느냐에 따라 야권 대선 삼각 축의 희비가 엇갈릴 수 있다는 의미다.
이 과정에서 ‘김종인·박원순’ 또는 ‘김종인·안희정’ 등이 보증수표를 통해 밀약 관계를 형성하는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 인구구성비 변화로 60대 이상의 ‘실버 세대’ 위력이 커진 데다 경제민주화 등의 이슈 소구력, ‘김종인 체제’ 안정화에 따른 문 전 대표의 반사이익 등이 겹치면서 ‘김종인 파워’는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다. 전계완 평론가는 “차기 대선 국면에서 김 대표가 박 시장과 안 지사 중 어느 쪽에 힘을 실어주는 것은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라며 “이 경우 ‘김심’(김종인 의중)이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1차 변곡점은 8월 말∼9월 초로 예정된 더민주 차기 전대다. 2차 변곡점은 역대 최대 규모가 유력한 내년 4월 재보선이다. 이 두 변곡점을 지나면서 ‘문재인·박원순·안희정’ 중 어느 쪽은 떨어진다. ‘모 아니면 도’다. ‘김종인과 박원순’, ‘김종인과 안희정’의 최적 조합 찾기가 야권 발 정계개편의 방향을 결정한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