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왼쪽), 박근혜 | ||
이 전 서울시장 측은 추석과 북한 핵실험 이후 여론조사에서 ‘고공행진’을 펼치면서 계속 선두를 유지하자 ‘경제 대통령’ 이미지를 더욱 굳혀 1위 수성작전에 돌입하는 양상이다. 반면 박 전 대표 측은 겉으로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표정이지만 일부에서는 “지지율이 그대로 고착돼 ‘이명박 대세론’으로 가는 게 아니냐”며 초조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당내에서는 추석 이후 박 전 대표 지지 의원들 일부가 이 전 시장에 줄을 대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그래서 이명박 1위 국면이 장기화될 것이라고 예측하는 정치전문가도 늘어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박 두 유력 대권 주자는 ‘연말 정계개편을 앞두고 기선제압에서 밀리면 끝장’이라는 의지로 물밑에서 치열한 지지율 수성-탈환에 골몰하고 있다.
지금 여의도에는 북한 핵실험 외에 ‘이명박 지지율 1위 신드롬’이 최대 화두다. 이 전 시장은 추석 연휴와 북한 핵실험 이후 4개 여론조사기관의 조사에서 수개월째 오차범위에서 접전을 벌여오던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와 고건 전 총리를 큰 폭으로 따돌리며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일부에서는 향후 대권 구도가 3강 체제(고건-박근혜-이명박)에서 1강(이명박) 2중(박근혜-고건) 체제로 바뀌고 있는 중이라고 까지 분석한다.
그렇다면 이 전 시장의 인기는 이대로 굳혀져 대통령선거까지 이어질까. 리서치플러스의 임상렬 대표는 이에 대해 “이 전 시장이 박 전 대표에 비해 이념성향과 지지층의 폭이 넓은 만큼 대선 논의가 본격화할수록 지지율 격차가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또 다른 전략관계자 K 씨도 “최근 이 전 시장의 지지율 상승 국면이 그대로 대세론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는 또 “앞으로 북핵 이슈가 잦아들면 다시 경제 능력이 대권의 주요 변수가 될 것이다. 실물 경제에 밝은 이 전 시장으로서는 오히려 더 유리한 대목이다. 이 전 시장은 오래 전부터 대권 조직을 전국 네트워크화했다. 반면 박 전 대표는 조직도 없고 장기적 대권 전략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선거가 있을 때마다 그의 ‘바람’에 의존한다. 하지만 국민적 인기라는 거품이 꺼질 경우 그 대안이 없다. 반면 이 전 시장은 이미지보다 정책 메시지를 통해 지지율을 높여왔기 때문에 경쟁력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박 전 대표는 그동안 (선거 등을 통해) 저금해 모은 돈을 계속 까먹고 있다고 한다면 이 전 시장은 경제 활동(운하 개발 등 끊임없는 정책 개발)을 통해 돈을 계속 모으고 있다고 할 수 있어 정치적 자산에 차이가 나며 두 사람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추세 때문인지 최근 한나라당 안에서는 “‘친박’으로 분류되던 아무개 의원이 이 전 시장 쪽에 추파를 던지고 있다”, “‘친박’을 자처하던 사람들이 조용해졌다”는 등의 얘기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당의 한 관계자는 “박 전 대표 쪽에 있다가 중간층으로 오는 의원이나 당원들이 늘어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이런 추세라면 현재의 당원 50%, 국민 50% 방식으로 경선을 해도 이 전 시장이 이길 수도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제야 두 사람의 승부가 원점에 선 느낌”이라고 전했다.
이런 분위기에 고무된 이 전 시장 쪽은 ‘여론에서 앞서고 콘텐츠가 있는 후보’라는 점을 내세워 1위 수성작전에 들어간다는 방침이다. 특히 경부 운하 개발 등 정책개발에 더욱 힘을 쏟을 예정이라고 한다. 어차피 차기 대선의 쟁점은 경제라고 보고 ‘경제 대통령 이미지 구축’에 올인을 할 것이란 얘기다.
그런데 이 전 시장의 아킬레스건도 있다. 북핵 문제가 내년 대선까지 이어질 경우 그의 ‘군대 면제 의혹’이 정치쟁점으로 부각돼 낙마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밖에 재산문제 등 이 전 시장이 가지고 있는 약점도 그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점도 그에게는 아픈 지적이다. 그런 관점에서 최근의 지지율 상승이 ‘음모’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한편 박근혜 전 대표는 최근의 이명박 지지율 1위 판세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는 듯하다. ‘지지율을 위해 인위적으로 움직이기보다 묵묵히 내 갈 길을 간다’는 박근혜식 우보 전략을 고집하는 모습이다. 박 전 대표의 한 측근은 “박 전 대표가 재충전이 필요하기도 하고 대선 조기 과열을 우려해 의도적으로 대외 활동을 자제했기 때문에 발생한 일시적 현상일 뿐이다. 하지만 활동을 다시 시작하면 여론이 크게 움직여 상황이 역전될 것”이라고 자신한다. 박 전 대표는 일단 국정감사에 최선을 다한 뒤 11월 말께나 본격적인 대선 행보를 시작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일부 의원들은 최근 이명박 지지율 상승에 위협을 느끼기도 한다. 특히 박 전 대표는 일부 기관에서 비공개로 실시한 오피니언 리더 대상 여론조사에서 이 전 시장과 30% 이상의 지지율 격차를 보이고, 4등으로까지 떨어질 때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박 전 대표의 지지율 하락이 예상보다 심각하다는 것이다. 이런 점을 잘 알고 있는 한나라당의 A 의원은 “박 전 대표가 큰 그림을 못 보고 있는 것 같다. 대표직에서 물러난 뒤 차라리 외국에 오랫동안 머물며 콘텐츠 개발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국회에 꼬박꼬박 참석하는 것이 모범적으로 보일지는 몰라도 정작 중요하게 챙겨야 할 것은 간과했던 것 같다. 또한 북핵 정국에서도 김대중 전 대통령과 호남과의 관계 때문에 ‘햇볕-포용정책 분리’같은 어정쩡한 스탠스를 취해 오히려 신뢰감을 떨어뜨렸다”고 밝히면서 “그동안 칩거하며 공부한다고 했지만 어영부영 하는 사이에 지지율만 내려가 버렸다. 다시 대외 활동을 하면 지지율이 올라간다고 낙관하는 것 같은데 그런 강력한 모멘텀이 과연 무엇인지 묻고 싶다”고 꼬집었다. A 의원은 또 “최근에는 그의 측근 Y 의원과 또 다른 Y 의원 사이의 주도권 갈등 문제도 불거지고 있는데 제대로 대처를 못하는 것 같다. 박 전 대표가 이회창 전 총재처럼 인의 장막에 싸여 소수의 의견만 듣고 있는 것도 큰 문제”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한나라당 관계자는 이에 대해 “박 전 대표가 현재의 사태를 너무 안이하게 판단하는 것 같다. 자칫 지지율 반전의 타이밍을 놓칠 수도 있다. 이 전 시장은 일찌감치 격차를 벌려 놓기 위해 밀어붙이는데 박 전 대표는 10월 초 독일 방문 때 대선 후보 경선 출마 선언만 덜컥 한 뒤 이렇다 할 일도 없고 조직도 허술하다. 연말이나 연초에 일어날 정계개편이 어떻게든 우리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에 기대를 걸 정도로 답답한 상황”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북핵 문제에 대처하는 면에서 일반인들에게 비춰지는 여성이라는 ‘불안요소’도 더해지고 있어 더욱 힘든 상황이라는 것이다.
한편 정치권에서는 박 전 대표 측이 이명박 대세론으로까지 지지율 격차가 벌어질 경우를 대비해 특단의 대책도 마련 중인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중 가능성이 가장 높은 ‘빅 카드’는 바로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연대 부분이다. 박 전 대표는 재직 2년 3개월 동안 ‘호남 껴안기’ 등 서진 정책에 각별한 애정을 쏟아왔다. 이는 이 전 시장을 가장 확실하게 제압할 수 있는 비장의 카드다. 이 전 시장이 시간만 나면 호남으로 발길을 돌리는 까닭도 박 전 대표의 ‘호남 연대 폭발력’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 정설이다.
하지만 정치권 일부에선 박 전 대표와 DJ 두 사람의 연대가 ‘화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한나라당 내 뿌리 깊은 호남 거부 정서가 두 사람의 연대를 소설에 가까운 시나리오로 치부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그리고 박 전 대표 측도 “DJ가 덮어놓고 지지해 줄 것이라곤 기대하지 않기 때문에 그 변수는 계산에 넣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박 전 대표는 꾸준하게 서진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는 최근 호남을 방문해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 민주화세력과 산업화 세력이 힘을 합해야 하며, 민주당과의 연대는 항상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북핵 문제 처리에 있어서도 미국 등과의 공조를 강조하고 있지만 대북 포용정책을 계속 견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친 DJ적인 행보도 같이 하고 있다. 하지만 박 전 대표의 ‘이중적’ 대북 자세가 오히려 지지율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당내 비판에도 직면해 있어 곤혹스러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