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부 쌍두마차 프로 7년차 김주성(오른쪽)과 신인 윤호영. 농구 스타일에 외모까지 비슷한 둘은 영락없는 닮은꼴이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
원주 동부의 홈 개막전이 열리기 전인 지난 10월 29일 숙소에서 만난 김주성과 윤호영은 프로 경력 7년차의 ‘여유’와 프로 ‘신고식’을 앞둔 신인선수의 ‘긴장’으로 대변되는 이미지를 보여줬다. 체격조건부터 외모, 출신 대학, 성격까지 김주성을 빼다 박았다는 윤호영은 자신의 롤 모델이었던 김주성과 같은 팀에서 뛰게 된 데다 숙소로 사용하는 아파트에서 같이 생활하고 있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표정이다.
개막 직전 가진 진짜 김주성과 ‘리틀 김주성’과의 인터뷰를 정리해본다.
▶▶▶ 시즌 테이프를 끊기 전
2002년 원주 TG삼보 유니폼을 입고 프로 생활을 시작한 김주성. 7년차 정도 되면 개막전을 앞둔 심정이 떨림보다는 여유로움으로 다가올 것 같은데 유부남이 된 김주성으로선 올시즌을 맞는 각오가 남다르다고 한다.
“결혼하고 처음 맞는 시즌이라 이전보다 더 잘해야 할 것 같아요. 제가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면 와이프한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잖아요. 팀에선 통합챔피언 2연패를 노리고 있는 터라 지난 시즌보다 더 큰 부담을 안고 시작하게 돼요.”
선배의 설명을 듣고 있던 ‘초짜’ 윤호영은 “기분 좋은 긴장감을 갖고 개막을 기다리고 있다”면서 “대학 때랑 완전히 다른 프로 생활에 적응하기가 힘들었지만 주성이 형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는 말로 김주성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했다. 윤호영은 비록 신인 선수이지만 동료 선수들에게 ‘민폐’가 아닌 ‘보탬’이 되고 싶다고 에둘러 표현하면서 간접적인 부담을 토로했다.
▶▶▶ 신인에 대한 추억과 현실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장면 하나. 2002프로농구 신인 드래프트 당시 삼보에서 플레잉코치로 뛰던 허재 KCC 감독이 확률 25%였던 하얀 공을 잡은 뒤 만세를 불렀던 장면이다. 하얀 공을 잡은 팀이 1순위 지명권을 얻었고 허재 코치와 전창진 감독은 ‘당연히’ 김주성을 지명했던 것.
“지금도 그 얘기하는 분들이 종종 계세요. 당시 허재 감독님과는 나이 차가 열네 살이나 나서 굉장히 어렵고 조심스러웠어요. 그래도 제가 삼보로 가게 된 결정적인 역할을 해주셨고(하얀 공을 뽑았기 때문에) 팀에 합류해서 훈련할 때도 살뜰히 챙겨주시고 보살펴 주셨죠. 그때 생각하면 지금의 (윤)호영이가 저보단 좀 더 편하게 프로에 적응할 것 같은데요? 저랑 다섯 살 차이밖에 나지 않으니까요(웃음).”
김주성은 ‘농구 대통령’과 함께했던 프로 데뷔 생활을 회상하며 윤호영의 입장을 가늠했다.
윤호영은 농구를 시작하고 나서 동부에 오기 전까지 단 한 번도 김주성과 같은 팀에서 뛸 거라고 생각조차 못해봤다며 말문을 열었다.
▲ 윤호영 - 연상의 신부와 찰칵(왼쪽), 김주성 - 아내와 다정하게 브이~. | ||
▶▶▶ 프로가 된다는 건
원주 동부에서 파워포워드와 센터를 번갈아 보고 있는 김주성은 윤호영의 등장이 여간 반가운 게 아니다. 평소 출전 시간이 길어 혹사 논란까지 일었던 김주성으로선 윤호영이 자신의 역할을 대신해 줄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조금은 마음의 부담을 덜 수 있게 됐다. 실제로 지난 9월 28일 원주에서 벌어진 2008한일챔피언전에서 윤호영은 김주성이 벤치에 있을 때는 김주성 역할을, 김주성이 코트로 들어왔을 때에는 외곽에서 김주성의 플레이를 뒷받침해주었다.
“대학이나 프로나 운동하는 건 똑같지만 생활 자체가 완전히 달라요. 그렇다보니 실패하는 선수도 종종 나오게 되죠. 저 또한 실패할 뻔한 순간도 많았어요. 그때마다 주위에서 많은 도움을 줬던 것 같아요. 호영이도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라 좀 더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해요.”
지난 시즌 프로농구 사상 최초로 트리플크라운(올스타전, 정규리그, 챔피언결정전에서 모두 MVP 수상)을 달성했던 김주성도 프로 초창기 위기의 순간이 있었다는 게 관심을 끌었다. 어떤 부분이 힘들었는지를 묻자, “대학에선 만날 일이 없는 용병을 상대하는 게 힘들었다. 피부색도 다르고 농구 스타일도 다르고, 신장 차이가 큰 용병들이 무척 버거웠다”고 토로했다. 더욱이 프로 선수의 자기 몸 관리도 당시 경험이 없는 김주성한테는 ‘숙제’처럼 다가왔다고 한다.
신인 윤호영은 선배의 이런 말이 신기하기만 하다. 현재 자신이 안고 있는 문제를 김주성이 똑같이 경험했다는 게 믿겨지지 않는다는 눈치다.
“주성이 형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프로에 적응했다고 생각했어요. 정말 주성이 형 말처럼 용병을 상대하는 게 결코 쉽지가 않아요. 워낙 체격이 크고 좋다보니까 힘이 없으면 밀려나기 십상이거든요. 아직도 많이 부족해요. 배울 게 너무 많구요. 무엇보다 힘, 체력을 키워야 할 것 같아요.”
▶▶▶ 칭찬합시다!
윤호영은 선배 김주성에 대해 ‘아시아에선 김주성을 막을 선수가 없다’는 말로 선배에 대한 존경심을 나타냈다.
“정말 경기를 보는 시야가 넓어요. 센터이면서 팀을 조율하고 이끌어 가는 능력도 탁월하시구요. 평소 숙소에서나 훈련장에서 좋은 얘기를 많이 해주시는데 제가 주성이 형을 만난 건 농구 인생 최대의 축복인 것 같아요. 그런데 형은 정말 말씀을 잘하세요. 저도 형 나이쯤 되면 인터뷰를 잘할 수 있을까요?”
후배의 진심 어린 표현에 김주성이 살짝 민망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답가’를 한다.
“호영이는 워낙 저랑 비슷한 면이 많아서 호영이를 보고 있으면 마치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아요. 장·단점을 모두 갖고 있는데 호영이의 단점을 보면서 제 단점을 고치는 계기도 돼요. 그리고 인터뷰는, 저도 처음엔 호영이처럼 말이 짧았어요. 워낙 내성적인 데다 말수도 적었으니까요. 자꾸, 자주 하다보면 말이 늘더라구요. 인터뷰를 잘 하려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요.”
▶▶▶ 새신랑의 비애
재미있는 건 두 선·후배가 올해 모두 총각 딱지를 뗐다. 김주성이야 스물아홉 살의 꽉 찬 나이에 장가를 갔다고 할 수 있지만 올시즌 프로에 데뷔하는 윤호영은 프로농구 선수로서 데뷔 이래 가장 짧은 기간에 결혼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전지훈련 일정으로 신혼여행을 미루고 팀 훈련에만 전념해온 윤호영은 ‘새신랑’이란 키워드로선 김주성과 동등한 입장이라며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김주성은 결혼식은 올렸지만 아내와 같이 생활한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 가끔은 결혼을 했는지, 안 했는지 착각할 때도 있다고 한다.
▲ 김주성(왼쪽), 윤호영. | ||
윤호영은 5년간의 연애 끝에 네 살 연상의 이샛별 씨와 결혼식을 올리면서 주위로부터 이상한 오해를 받았다고 한다.
“신인 선수가 결혼부터 서두르니까 혹시 사고 친 거 아니냐는 오해를 많이 받았어요. 하지만 선배들에게 자문을 구했더니 이왕 결혼할 거면 빨리 하는 게 좋다고 말씀하셔서 결혼을 서두르게 된 거예요. 와이프가 혼자 지내는 게 힘든가 봐요. 같이 있어주지 못해 너무 미안할 뿐이죠.”
원주 동부엔 ‘새신랑’ 선수가 4명이나 된다. 김주성이 테이프를 끊은 뒤 이세범, 강대협, 윤호영이 웨딩마치 대열에 합류했다. 그중에서 이제 겨우 신인인 윤호영은 같은 새신랑이면서도 다른 선배들 앞에서 집 얘기는 ‘감히’ 꺼내지도 못한다. 선배들도 참고 사는데 어찌 ‘초짜’가 명함을 내밀 수 있으랴. 김주성과 윤호영에게 2세 소식은 아직 없냐고 물었더니 “하늘을 봐야 별을 따죠”라며 이구동성으로 볼멘소리를 낸다.
▶▶▶ 우승팀과 신인왕
김주성에게 동부를 제외한 강력한 우승 후보팀이 어딘지를 물었다. 즉답이 나온다.
“아무래도 하승진과 서장훈 선배가 있는 KCC가 유력한 우승 후보팀일 것 같아요. 승진이가 이전보다 많이 좋아졌다고 들었어요. 높이와 수비를 바탕으로 한 우리 팀과 붙었을 때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지 기대돼요. 우리가 높이와 수비에다 스피드까지 올려놨거든요(웃음).”
올시즌 하승진 김민수 차재영 등과 함께 신인왕 후보로 꼽히는 윤호영한테도 자신을 빼고 유력한 신인왕 후보를 꼽아달라고 부탁하자, “하승진과 방성윤의 공백으로 출장 시간이 많아질 김민수가 유력하다”고 말하면서도 “신인왕 다툼은 하승진 김민수 윤호영, 3강체제로 이어질 것 같다”며 농담성 진심을 토해내기도 했다.
▶▶▶ 감독님, 할 말 있어요!
시즌 개막을 앞두고 건강이 부쩍 악화된 전창진 감독을 보는 김주성의 마음은 심란하기만 하다. 전 감독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그는 “한 배를 이끄는 선장이 아프거나 힘들어 하면 배가 산으로 갈 것 같다”면서 “감독님은 말뚝처럼 딱 그 자리에 서 계셔야 힘든 훈련도 견딜 수 있는데 요즘 많이 아프신 것 같아 훈련에 집중이 안 된다”고 걱정을 드러냈다.
‘호랑이 감독’을 만나 전지훈련과 연습 경기 때 평생 들을 꾸중은 다 들었다는 윤호영은 김주성 눈치를 보면서도 “감독님,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 외박 좀 보내주세요”라며 눈웃음을 흘린다. 역시 신세대다운 대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