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생팀 강원FC 초대 사령탑에 오른 최순호 감독.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
2008 내셔널리그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컵을 받아든 날, 그는 선수들에게 강원FC 초대 감독으로 가게 된 사실을 털어놓았다. 기쁨과 아쉬움의 눈물이 범벅이 됐던 우승 현장들. 그 감흥을 뒤로 하고 미포조선 감독 대신 K리그 강원FC 감독이란 새로운 타이틀을 껴안은 그를 만났다. 바로 최순호 감독이다.
지난 20일 오전 8시30분 서울 홍은동의 한 호텔. 10시면 2009 K리그 신인선수 선발 드래프트가 시작되는 탓에 최순호 감독과 인터뷰를 9시로 잡았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 인터뷰 장소를 물색하던 중에 카페테리아에서 강원FC 김원동 사장과 급하게 아침 식사를 하는 최 감독을 발견했다. 전날 춘천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돌아와 그 호텔에서 묵었다는 최 감독은 선수 구성과 창단 준비로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면서도 얼굴은 어느 때보다 밝고 환했다. 2004년 포항이 전기리그 우승을 차지한 다음 날, 포항의 클럽하우스에서 인터뷰를 하고 첫 대면이었다.
―요즘 제대로 식사할 시간도 없죠? 좀 전에 급히 식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인터뷰만 아니었어도 천천히 먹는 건데(웃음). 정말 정신없이 보내고 있어요. 새로운 집을 만들어야 하니까 필요한 게 너무 많네요. 그래도 큰 무리없이 잘 진행되고 있어 다행이에요.
―사실 강원FC 감독으로 여러 지도자들이 거론됐어요. 하마평에 올랐던 후보자들 중에 ‘최순호’란 이름은 없었거든요.
▲저 또한 예상치 못했어요. 강원도와의 연고도 전무했고 언론이나 여론도 지역 출신 위주로 뽑는다고 해서 관심조차 두지 않았죠. 더욱이 미포조선이 프로화 작업을 추진 중이라 더더욱 다른 데엔 신경 쓰지 못했어요. 그러다 김원동 사장이 강원FC로 오시면서 상황이 급변한 것 같아요. 경영자로서 자신과 맥을 같이할 수 있는 지도자를 원했던 것 같고, 그러다 절 지목하신 거죠.
―금세 수락한 걸로 아는데요. 고민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거든요.
▲만약 기존 프로팀이었다면 가지 않았을 겁니다. 미포조선도 프로를 추진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강원FC는 창단팀이란 메리트가 있었어요. 지도자라면 팀을 창단해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팀을 만들어가고 싶은 욕심이 있을 거예요. 저 또한 마찬가지였구요. 여건만 된다면 지원이 가능한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축구팀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런 마음이었기 때문에 김원동 사장의 ‘러브콜’에 계산하지 않고 응했던 거죠.
―감독 후보에 공식적으로 원서를 제출한 후보자들의 모양새가 좀 이상하게 됐어요.
▲늘 그렇죠. 승부의 세계란 게. 이것도 하나의 승부니까요.
―선수들 구성이 잘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아요. 이번에 뽑은 선수들 중 눈에 띄는 선수들이 있어요. 우선지명으로 내셔널리그에서 득점왕에 오른 ‘애제자’ 김영후와 고려대 미드필더 권순형이 눈에 띄어요.
▲ 2008 내셔널리그 챔피언결정에서 우승을 차지한 현대미포조선. 선수들 가운데 우승 트로피를 든 최순호 감독이 보인다. | ||
최순호 감독은 인터뷰 후에 이뤄진 신인드래프트에서 “내가 원하는 선수를 100% 다 뽑았다”라고 말할 만큼 성공적인 드래프트를 이뤄냈다. 이로써 우선지명선수까지 포함해 강원FC는 총 23명의 선수를 확보했는데 최 감독은 향후 프로팀 선수들 중 10명 정도를 더 추가 영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포조선에 보낸 지도자 생활은 만족하나요? 프로팀 감독을 맡다가 한 단계 아래인 내셔널리그 사령탑에 앉는 건 쉽지 않은 선택이었겠죠?
▲주위에선 제가 얼마 못가 그만둘 거라고 말했어요. 그러나 당시 전 ‘보험’드는 심정이었어요. 외국 나가서 1~2년 더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 단계 낮은 리그에서 부족한 선수들을 데리고 일하는 것도 공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값진 공부 덕분에 미포조선에선 이전 포항에서 할 수 없었던 많은 부분을 이뤄낼 수 있었어요. 포항이 60% 정도였다면 미포조선에선 100%를 성취했습니다. 그 40%의 차이에는 여러 가지들이 포함돼 있는데 결국엔 제가 겪은 시행착오들이었을 겁니다.
―좀 더 설명이 필요해요. 어떤 시행착오가 있었던 거죠?
▲전 그(포항) 당시 프로 선수들을 너무 대우해줬어요. 상만 주고 벌은 못 줬죠. 프로 선수들이라 알아서 할 거라는 기대가 있었어요. 더욱이 과감한 변화를 시도하지 못했어요. 아무래도 코치에서 감독이 됐기 때문에 운신의 폭이 좁았던 이유도 있었겠죠. 그러나 미포조선에선 달랐어요. 구단에서도 절 믿고 지원해줬고 저 또한 과감한 변화와 선택을 통해 선수들과 한마음이 돼 움직였어요.
―‘중심부’가 아닌 ‘변방’에서의 생활이 실제론 고단하고 힘들었을 겁니다.
▲제 선택이었으니까요. 지난 3년의 시간들은 과거의 어떤 시간보다, 또 앞으로도 그런 경험과 시간은 주어지지 않을 겁니다. 만나는 사람들은 저더러 고생한다며 안쓰럽게 생각하셨지만 전 그 시간들이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고 기쁘게 일했어요. 아마도 제 축구 인생에 가장 큰 전환점을 이룬 시기라고 봐요.
최순호 감독은 이전에도 신앙을 갖고 생활했지만 포항을 그만두고 나온 2005년부터 집사 안수를 받고 선교 활동을 하면서 명예 선교사로 파송되는 등, 생활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설명한다. 이전에는 교회를 다니면서도 술을 끊지 못했는데 그 때부터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고.
―스타플레이어 출신 감독이란 꼬리표가 힘들 때도 있죠?
▲선수들이 부담가질 때, 절 어렵게 생각할 때가 그렇죠. 미포에선 선수들과의 접촉과 소통을 중요시했어요. 자주 만나서 대화하는 것 밖에 방법이 없어요. 최순호도 평범한 감독이라는 걸 일깨워주려고 노력했죠.
―경험자로서 K리그와 내셔널리그와 차이점을 간단히 설명한다면?
▲프로 선수들은 선수들 사이에, 또는 선수와 코칭스태프 간에도 강한 전류가 흐르듯 긴장감이 있어요. 그러나 내셔널리그 선수들은 경쟁보단 가족적이고 선후배보단 형과 동생 사이가 더 주를 이루죠. 다만 자기 관리면에선 프로 선수들이 한수 위예요.
―좀 전에 프로팀 선수들 중에서 몇 명을 뽑을 거라고 하셨는데 의외로 강원도 출신 선수들 중에 ‘대어’급 들이 많아요.
이영표랑 신앙적으로 잘 맞을 것 같다는 기자의 말에 최순호 감독은 “제가 기도하면 영표가 올 수 있을까요?”라며 웃음을 터트린다.
―내년 K리그가 선수보다 감독들이 더 화려해질 것 같아요. 차범근 최순호 황선홍 등 한국의 스트라이커 계보를 잇는 분들이 사령탑에 앉았기 때문인데요. 벌써부터 관심도 많아지고 있구요.
▲관심의 중심에 있다는 건 분명 행복한 고민입니다. 골을 넣은 감독들이라 골을 얼마만큼 잘 만들어내느냐도 중요할 것 같아요. 하지만 골을 만들어내는 게 지도자로서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 선수들이 (차)범근 선배나 (황)선홍이, 또 제가 이뤄낸 득점만큼 골을 터트린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건 좀 우스운 질문이지만, 만약 차범근 감독과 최순호 감독이 서로 경기 앞두고 벤치에서 기도를 한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요?
▲글쎄요, 2004년에 그런 질문을 받으면 더 필요한 사람에게 신이 선물을 주실 거라고 말했는데 그 이후부턴 욕심이 생겨서 제 자신을 위해 기도할 때가 많아요. 그래서 지금은 꼭 이기고 싶을 때는 저한테만 축복을 달라고 합니다(웃음). 책에서 보니까 에이브러햄 링컨이 이런 말을 했더라구요. 신이 누구 편에 있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누가 신의 편에 더 가까이 있는 지가 중요하다고.
―좀 지난 얘기지만 꼭 짚고 넘어가고 싶어요. 포항 감독을 그만두고 나올 때 여러 가지 소문들이 무성했어요. 준우승이란 좋은 성적을 냈는데도 사퇴를 한 부분이 쉽게 납득하기 어려웠거든요. 때마침 용병비리에 연루됐다는 말도 나돌았구요.
▲처음 포항에 코치로 들어갈 때 제 자신과 약속한 게 있었어요. 코치 3년하고 만약 감독 자리가 주어진다면 감독도 3년만 하고 선교활동에 전념하겠다구요. 그게 2004년이었습니다. 이미 2004년 봄부터 구단 경영자에게 올 해를 끝으로 계약 안 한다고 통보했어요. 9월에 다시 한 번 더 말씀드렸구요. 그런데 공교롭게 그런(용병비리) 사건이 터지면서 제가 마치 그것 때문에 그만둔 것처럼 소문이 나더라구요. 전 추호도 부끄러운 일을 한 적이 없어요. 만약 그랬다면 지금과 같은 기회가 또 주어질 수 있을까요? 이번도 마찬가집니다. 강원FC와 3년 계약을 했는데 3년 후 한 번 더 기회를 갖고 그 다음에는 또 다른 도전에 나설 겁니다. 전 한 팀에 오랫동안 안주하고 싶지 않아요.
4년 전 인터뷰 때 최순호 감독은 기회가 된다면 국회의원에 출마할 의향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95년 민자당 소속으로 도의원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기억을 떠올리면서였다. 이번에도 그 질문을 다시 해봤다. 정치권에 대한 관심은 여전했다.
“권력 욕심 때문이 아닙니다. 국회의원이 프로축구 감독보다 명예가 높다고 보진 않아요. 단 입법 기관에 스포츠인 출신이 한 명 이상은 나가 있어야 스포츠 관련법이 통과되고 실현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나중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꼭 도전해 보고 싶어요.”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