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상우 KBO 총재가 지난 21일 기자회견에서 결국 장원삼 트레이드 불가 결정을 내렸다. 연합뉴스 | ||
▶WBC 감독 선임 문제
내년 3월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일본과 미국에서 열린다. 2006년 1회 대회 때 4강 신화를 달성했던 한국야구는 올해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에 이어 내년 2회 WBC에서도 좋은 성적으로 세몰이에 나서겠다는 부푼 꿈이 있었다.
그런데 포스트시즌을 마친 뒤 대표팀 감독 선임 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앓았다.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의 주인공인 두산 김경문 감독이 당초 유력한 대표팀 사령탑 후보였다. 하지만 김 감독은 “내년에는 소속팀에 전념하고 싶다”면서 고사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시리즈 우승팀 감독이 대표팀을 맡자”, “아니다. 하고 싶은 사람이 하도록 재야 인물을 추천하자” 등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이후 SK 김성근 감독을 추대하는 의견이 있었지만 김 감독 역시 “그 자리는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면서 정중하게 거절했다. 결국 KBO는 1회 WBC 때 사령탑이었던 한화 김인식 감독을 추대했고, 조건부 수락이라는 결론이 났다. 더 큰 문제는 그 후 벌어졌다. 김인식 감독이 프로 감독 3명을 포함해 6명의 코치진을 구성하겠다고 밝혔지만, 해당 감독들이 하나같이 “죄송하지만 팀에 전력해야 한다”면서 거부했기 때문이다. 대로한 김인식 감독이 “이런 식이라면 WBC에 나가지도 말자”면서 화를 냈지만, 이미 야구계에는 갈등이 번질 대로 번졌다.
KBO가 일찌감치 교통정리를 했다면 크게 불거질 문제도 아니었다. 베이징올림픽이 끝난 직후 곧바로 차기 대표팀 감독 선임을 추진하는 게 당연했지만 ‘으레 김경문 감독이 하지 않겠나’라고 넋 놓고 있다가 수습하기 어려운 상황까지 몰린 것이다.
김성근 감독이 WBC 대표팀을 맡지 않겠다고 한 것과 관련해 루머도 있었다. KBO가 애초부터 김경문 감독의 대안으로 김성근 감독이 아닌 김인식 감독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소문이다. 때문에 KBO는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김성근 감독에게 명목상 그냥 한 번 떠보는 식으로 뒤늦게 대표팀 감독직을 제안했고, 김성근 감독이 거부하자마자 곧바로 김인식 감독에게 달려갔다는 후문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김성근 감독이 대표팀을 거부한 건 진짜 맡기 싫어서가 아니었다는 얘기가 된다. KBO가 자신을 그다지 원하지 않는다는 배경을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마디로 불쾌해서 거절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 김성근 감독 (왼쪽), 김인식 감독 | ||
다시 한 번 WBC 대표팀을 맡게 된 김인식 감독만 머리가 아플 뿐, 며칠이 지나도 대표팀 코치 선임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표류하고 있었다. 이 와중에 더 큰 문제가 터졌다. 지난 11월 14일 아침이었다. 히어로즈가 에이스인 왼손투수 장원삼을 삼성에 내주고 대신 유망주 투수인 박성훈과 현금 30억 원을 받는 트레이드를 성사시켰다는 보도자료가 언론사에 배포됐다.
소식이 알려지고 채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프로야구계가 발칵 뒤집어졌다. 히어로즈는 올초 구 현대 유니콘스가 자금난으로 해체된 뒤 새롭게 탄생한 구단이다. 구단 운영 의지가 어느 정도인지, 자금력은 갖춘 것인지를 놓고 논란이 있었지만 ‘프로야구는 8개 구단 체제가 존속돼야 한다’는 대전제 덕분에 야구판에 뛰어들 수 있었다. 대신 기존 구단들은 히어로즈가 선수를 팔아 운영자금을 확보하는 걸 막기 위해 안전장치를 마련하고자 했다. 그 결과 나온 것이 ‘향후 5년간 구단 매각 금지와 트레이드시 KBO 사전승인’ 등의 약속이었다. 현금 트레이드로 선수를 팔지 않는다는 약속도 이뤄졌다.
그런데 히어로즈와 삼성이 트레이드를 단행했으니, 나머지 6개 구단의 반발이 거셌다. 심지어 “트레이드가 승인되면 내년에 삼성과의 경기를 보이콧하겠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반면 삼성과 히어로즈는 “무슨 소리냐. 우린 적법하고 절차상 하자없는 트레이드를 했다”면서 맞섰다. 알고 보니, 히어로즈 창단 초기의 약속들이 문서화되지 않았음이 이번에 밝혀졌다. 트레이드 자체가 현금 트레이드가 아닌 현금이 포함된 선수 트레이드라서 문제가 없고, 굳이 따지자면 문서화된 약속도 아니었다는 것이 히어로즈와 삼성의 주장이다.
나머지 6개 구단은 이에 대해 “어불성설이다. 히어로즈와 KBO가 구단 창단을 하면서 전 언론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언했던 부분이 아닌가. 문서화되지 않았더라도 구두계약도 효력이 있는 법이다. 트레이드 승인을 계속 주장하면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다시 KBO의 좌충수
결국 ‘장원삼 트레이드’ 파문은 11월 21일 KBO 신상우 총재가 ‘승인 불가’ 판결을 내리면서 일단락됐다. 삼성과 히어로즈는 “대승적 차원에서 승인 불가에 전적으로 승복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나머지 구단들도 “신상우 총재 결정을 환영한다”고 반응했다.
‘장원삼 트레이드’ 파문에서도 KBO가 애초에 중재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트레이드와 관련해 최초 논란이 있었을 때 삼성과 히어로즈 측에선 “처음 추진할 때부터 KBO에 유권해석을 부탁했더니 별 문제없다는 답변이 돌아와서 트레이드를 단행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KBO 측은 “선수 트레이드라는 식으로 얘기했지, 현금 트레이드를 하겠다는 질문이 아니어서 괜찮다고 했던 것”이라며 반박성 발언을 했다.
앞서 히어로즈 이장석 사장은 “삼성뿐만 아니라 다른 구단에서도 시즌 동안 10차례 정도 현금 트레이드를 제안해왔다. 트레이드를 논의했던 다른 팀 관계자들과 3자대면도 할 수 있다. 똑같은 시도를 했던 구단들이 왜 이번 트레이드를 비난하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물론 나머지 6개 구단들은 “그런 일 없다”고 부인하거나 “선수 트레이드와 현금 트레이드가 같을 수 있나”라면서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결국 향후에도 구단간 반목과 갈등이 계속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장원삼 트레이드’ 파문에서도 KBO는 애초에 트레이드 금지 조항을 공식 문서화하지 못했다는 점, 어떤 형태든 논란이 벌어질 것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음에도 “선수간 트레이드는 별문제 없을 것”이라고 답변해줬다는 점, 파문 이후 신속한 판단이 이뤄지지 못한 점 등 때문에 큰 비난을 받았다. KBO가 중심을 잡고 있으면서 세련된 일처리를 해왔다면 문제 자체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었다. 삼성과 히어로즈가 결과에 승복한 덕분에 후유증 가능성은 사라졌지만 KBO에 대한 신뢰는 더욱 낮아졌다.
▲ 하일성 사무총장(왼쪽), 트레이드 파문을 겪은 장원삼. | ||
모든 논의는 올 초 KBO가 재정상태가 의심되는 센테니얼그룹과 이장석 사장을 프로야구판에 끌어들인 것 자체가 문제의 발단이 됐다는 시각으로 모아졌다. 히어로즈는 창단 시점에선 한국프로스포츠 사상 유례없는 ‘메인 스폰서 시스템’을 가동해 구단을 운영하고 흑자도 내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밝혔다. KBO 쪽에서도 “야구단 운영쯤은 아무 문제없는 자금 동원능력이 대단한 기업”이라고 덩달아 지원사격을 했다. 하지만 계획과 달리 히어로즈는 유니폼 광고를 포함해 스폰서의 규모가 크지 않았고 그나마 시즌 도중에 끊겨버렸다.
당장 12월 말 예정된 가입분납금 24억 원을 내지 못하게 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이장석 사장이 “재정상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장원삼을 트레이드했다”고 말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일각에선 히어로즈가 삼성으로부터 트레이드머니 30억 원을 받자마자 이미 다 써버렸기 때문에 트레이드를 취소시키기도 어려울 것이라는 소문까지 돌기도 했다.
프로야구가 올해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인수나 창단에 관심을 갖는 중견 그룹들이 속속 나타났다는 얘기가 9월까지만 해도 있었다. 그때만 해도 차라리 히어로즈가 ‘엎어져버리면’ 훨씬 탄탄한 재정을 갖춘 기업이 야구단을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전세계적인 불황 때문에 기업들이 야구단 인수나 창단에 관심을 기울일 시기가 아니다. 때문에 이 타이밍에 히어로즈가 두 손을 들어버리면 프로야구는 내년에 7개 구단 체제로 파행 운영돼야 한다. 이런 문제로 KBO가 골치를 앓고 있으니 섣불리 어느 쪽 손을 들어주기 힘들었던 점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처음부터 KBO가 중심을 잡고 일처리를 했더라면 작금의 어처구니없는 논란들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KBO 신상우 총재는 가뜩이나 2006년 1월 취임 초기부터 ‘낙하산 인사’라는 오명을 받아왔다. 정치인 출신이 KBO 수장이 되면 프로야구 인프라와 관련해 획기적인 개선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했던 야구인들은, 정작 희망사항들은 이뤄지지 않고 문제점만 툭툭 불거지자 이젠 KBO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며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어찌 보면 2006년 1월 신상우 총재가, 그해 5월 하일성 사무총장이 취임한 뒤 2년 반 동안 KBO는 외견상 혁혁한 성공을 거둔 게 사실이다. WBC와 올림픽에서 국민을 열광케 했으며, 매 시즌 관중도 대폭 증가했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건 몇 년 사이에 프로야구의 위상이 대단히 높아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일련의 사건을 통해 2년 넘게 쌓아올린 탑이 한꺼번에 무너져버렸다. 현 KBO 수뇌부는 프로야구를 위해 노력도 많이 했지만, 한편으론 특정 사안이 터질 때마다 아침 저녁으로 말을 바꾸는 것 때문에 늘 도마 위에 오르곤 했다. 내년 3월이면 신 총재와 하 총장의 임기가 만료된다. 그에 앞서 신 총재는 트레이드 승인 거부를 선언하던 날 “12월의 골든글러브 시상식을 마치고 조기 퇴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단 며칠이 됐든, 몇 개월이 남았든 프로야구가 제대로 굴러갈 수 있도록 마무리를 잘 짓는 게 절실한 시점이다.
장진구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