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하원미 씨가 임신 8주째 접어든다고 자랑(?)하는 추신수(27·클리블랜드 인디언스)는 둘째를 갖는 소감으로 ‘진짜 아빠’를 운운했다. 아들 무빈이가 태어날 때는 아빠가 될 준비조차 하지 못했지만 아내로부터 둘째의 임신 소식을 전해 들은 뒤 가슴이 방망이질 치는 듯했다는 것. 더욱이 최근 아내가 유산기가 보인다고 해서 병원에 동행하며 생전 처음으로 신께 기도도 했다고 한다. 뱃속의 아이가 무사하길 빌었던 것이다. 다행히 아이는 엄마 뱃속에서 건강히 잘 자라고 있었다. “이젠 가족이 한 명 더 늘어났으니까 제가 야구 잘하는 일만 남았어요. 올시즌 성적이 중요한 이유가 한 가지 더 추가됐네요.”
추신수는 1월 29일(한국시간), 클리블랜드 마크 샤피로 단장이 직접 전화를 걸어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출전과 관련해 여러 가지 제약 사항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기자와 처음 전화 인터뷰를 했던 1월 23일에도 추신수는 “WBC 참가 자체가 100% 결정된 게 아니다”라며 구단에서 추신수의 대표팀 합류를 부담스러워한다고 말한 바 있다. 올시즌 한국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높은 기대를 나타내고 있는 추신수와 두 차례에 걸쳐 전화 인터뷰를 가졌다. 대표팀의 하와이 전지훈련에 참가하지 못하는 상황이 추신수로선 큰 부담으로 작용되는 듯했다.
“구단에선 대표팀 참가를 어렵게 어렵게 허락했어요. 태극마크를 달고 뛰고 싶어 하는 내 생각을 존중은 하지만 솔직히 안 갔으면 하는 마음이었죠. 수술과 재활을 거쳐 지난 시즌 중간부터 활약을 했기 때문에 구단에서 본 추신수란 선수는 아직 100% 몸 상태가 완벽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시범경기를 통해 조금씩 가동시켜볼 예정이었는데 전력을 다해야 하는 WBC대회에 내보내는 부분은 여러 가지 면에서 부담스러웠을 겁니다.”
이미 언론을 통해서는 클리블랜드가 추신수의 WBC 참가를 허락했다고 알려졌지만 실제 구단에선 계속 지켜보자는 입장이었고 몸 상태와 공 던지는 걸 체크한 뒤 나중에 결정하겠다고 말했던 게 결국 대표팀의 하와이 전훈에는 보낼 수 없다는 조건부 허락으로 연결된 것이다.
“한국에 계시는 팬들은 클리블랜드의 까다로운 조건들이 이해 안 가는 측면도 있을 거예요. 여기선 태극마크보다 소속팀 선수를 보호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니까 오해하지 않으셨음 좋겠어요. 난 대한민국 선수지만 현재 클리블랜드 소속이라 구단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는 입장이에요.”
추신수는 대표팀의 훈련 스타일과 클리블랜드에서 하고 있는 훈련 방식에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9년 간 미국에서 생활하며 메이저리그 훈련 스케줄에 익숙했던 그가 대표팀에서 어떻게 훈련을 하고 맞춰가야 하는지도 숙제로 남아 있다고 한다.
“감독님과 코치님께 상의를 드려야죠. 가급적이면 대표팀 스케줄에 따라가면서 잘 맞춰볼 예정입니다. 자칫 잘못해서 ‘메이저리그 출신이라고 유세 떤다’는 오해를 받긴 싫거든요. 내가 여기서 확실한 기반을 잡았고 주전 경쟁에서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상황이라면 이런 고민, 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올해 부상으로 떨어지거나 성적을 내지 못할 경우 그동안 미국에서 고생했던 부분들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거든요. 상황이 절박하다보니까 뭐든지 조심스럽고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추신수는 너무나 오랜만에 한국 선수들과 한 팀을 이뤄 선후배간의 정을 돈독히 나눌 수 있는 대표팀 생활에 대해 기대와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2000년 캐나다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때 함께 활약했던 정근우 이대호 김태균과도 프로 이후 처음으로 한 팀을 이뤄 호흡을 맞추는 것이라며 달뜬 목소리를 나타냈다.
“(정)근우는 잔플레이에 능한 편이에요. 고등학교 때도 잘 뛰고 센스있는 플레이가 일품이었죠. (이)대호는 파워가 있으면서 정교한 플레이를 하는 선수죠. 3할을 치면서도 홈런이 많은 이유예요. (김)태균이도 대호랑 비슷한 면이 많구요. 워낙 잘하는 선수들이라 그 친구들이 존재한다는 게 큰 힘이 되네요. 무척 재미있을 것 같아요. 물론 성적이 좋아야 가능한 얘기겠지만요(웃음).”
▲ 추신수의 아내 하원미 씨와 아들 무빈이. | ||
“이승엽 선배와는 꼭 한 번쯤 같은 팀에서 뛰어 보고 싶었어요. 도대체 그 선배의 어떤 부분이 최고의 실력을 쌓는 데 밑거름이 됐는지 가까이서 보고 배우고 느끼고 싶었거든요. 한국에선 우상이나 마찬가지잖아요. 일본에서 고생하면서도 자존심 지켜가며 자신의 몫을 해내려고 노력하는 부분도 존경스러웠어요. 이승엽 선배는 제가 가장 좋아하고 닮고 싶어 하는 모델입니다.”
추신수는 최근 클리블랜드 인근 도시를 돌면서 언론관계자와 팬을 만나는 윈터캐러번 행사에 팀의 간판 선수로서 참가했다. 에릭 웨지 감독과 한 조에 속하는 바람에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었다. 이 행사 중에 벌어진 재미있는 에피소드 한 가지. 클리블랜드측에선 프레스 투어를 하며 감독이나 선수의 사인이 담긴 사진들을 경매로 팔아 자선 기금을 마련한다. 과연 추신수 사진과 사인은 얼마를 받았을까.
“50달러부터 시작한 게 250달러에 낙찰됐어요. 상당히 높은 액수라고 하더라구요. 하긴 웨지 감독 사진과 사인은 175달러에 경매됐거든요. 감독보다 조금 더 받아내니까 기분은 좋던데요(웃음).”
이날 웨지 감독은 클리블랜드 팬 미팅에서 올 시즌 추신수를 어떻게 활용할 것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지금은 5번이나 6번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하지만 추신수한테는 3번이 이상적인 자리다. 그러나 가능성 많은 젊은 선수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 시즌이 진행되고 추신수의 몸 상태를 지켜보면서 중심 타선으로의 이동도 고려해 볼 예정이다.”
에릭 웨지 감독은 3번과 4번 타자로 트래비스 해프너와 빅터 마르티네스를 기용한다고 밝혔지만 추신수의 활약 여부에 따라 중심 타순을 바꿀 수도 있다고 여지를 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추신수는 “한국에선 내가 웨지 감독이 추구하는 플래툰시스템의 희생양으로 비쳐졌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았다”면서 “웨지 감독은 선수를 보호하고 아낄 줄 안다. 무리한 출장을 시키지 않으려고 많은 배려를 해준다”고 설명했다.
▲ 사진=홍순국 메이저리그 사진 전문기자 | ||
“처음 미국에 와선 정말 힘들게 생활했어요. 나보단 아내의 고생이 만만치 않았죠. 무빈이를 낳고 좁은 집에서 어렵게 지냈는데 이렇게 번듯한 집을 마련하니까 가슴이 벅차오르고 왠지 모를 뿌듯함이 생겨요. 누구보다 아내가 가장 기뻐해요. 가구를 보러 다니고 가전제품들을 새로 구입하면서 마치 신혼 살림을 준비하는 기분이 들었어요. 둘째가 크리스마스 베이비거든요(웃음). 그 아이가 우리 가족들에게 행운과 행복을 가져다 줄 것만 같아요.”
추신수의 아내 하원미 씨는 둘째가 딸이길 바라지만 추신수는 아들이든, 딸이든 상관없다고 한다. 동생을 보는 다섯 살 무빈이가 요즘은 제법 어른스러워졌다며 얼마 전에 있었던 얘기를 귀띔한다.
“무빈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전화가 걸려왔대요. 무빈이 선생님이 아내에게 ‘어머님이 아이를 가지셨나봐요’하며 축하한다고 인사를 전해와 어떻게 아셨냐고 물었더니 무빈이가 미술 시간에 엄마를 그린 후 엄마 배에 동그라미를 그려넣었다고 하더라구요. 그 얘길 듣고 어찌나 웃기고 기특하던지…. 굉장히 개구쟁이거든요. 그런데 엄마가 동생을 가졌다고 하니까 요즘 좀 얌전해졌어요.”
추신수는 인터뷰 말미에 대표팀의 하와이 전진훈련에 참가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거듭 미안함을 토로했다. 자신의 행보로 인해 대표팀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까봐 걱정을 나타내기도 했다.
“김인식 감독님께 여러 가지로 죄송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어요. 하지만 대표팀에 합류하면 최선을 다할 겁니다. 대표팀에서 존재감을 인정받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메이저리그 출신’이란 타이틀이 무색해지면 안 되잖아요. 한국의 KBO에서 대표팀 유니폼을 보내왔어요. ‘KOREA’란 로고가 박힌 유니폼을 입는 순간 기분이 묘해지더라구요. 올해는 WBC와 소속팀에서 제대로 일 한 번 내고 싶은 게 소원입니다(웃음).”
이승엽과 추신수의 공통점 한 가지를 꼽는다면 몸에 밴 ‘겸손’이다. 각각 한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에서 잘나가는 타자로 성공시대를 달리고 있지만 스타 의식을 버리고 겸손함을 내세우며 사람들에게 다가간다. 추신수는 얼마 전 한국에 있는 큰 규모의 매니지먼트사로부터 영입 제의를 받았다. 그때 추신수가 그 회사에 제안한 조건은 계약금 등 경제적인 부분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귀국할 때마다 자신의 일을 돌봐준 후배와 함께 가지 않는다면 제의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아직 결정이 나진 않았지만 추신수는 그 회사에서 파격적인 조건을 내놓는다고 해도 후배를 배제시킨다면 그 회사와 손을 잡을 수 없다는 방침을 정했다. ‘의리파’ 추신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