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호 게이트가 정치권으로 옮겨 붙고 있다.
정운호 대표가 ‘사람 관리’에 남다른 공을 들였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정 대표가 강남 일대 음식점과 호텔 일대에서 유력 인사들을 접대했다는 ‘목격담’이 끊이질 않고 있다. 정 대표는 이들을 사업 확장이나 구명 로비에 활용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막대한 돈이 뿌려졌다. 검찰 수사 역시 이 부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정 대표와 그가 고용한 브로커 이 아무개 씨 등은 법조계뿐 아니라 여러 분야의 인사들을 만났던 것으로 전해진다. 물론 정치권도 포함돼 있다. 정 대표 측은 전·현직 국회의원을 비롯해 보좌진, 당직자 등과 친분을 쌓았다. 정운호 게이트가 터지자 여의도가 숨을 죽이며 검찰 수사를 지켜봤던 것도 이 때문이다.
국회의 한 보좌관은 지난 2014년경 정운호 대표를 만났던 일화를 들려줬다. 그는 “지인과의 약속 자리에 갔더니 정 대표가 있었다. 현금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사업가라고 소개를 받았다. 그 날 모임의 ‘스폰서’를 하기 위해 정 대표가 나왔다고 했다. 정 대표 쪽에서 먼저 나를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을 한 것으로 안다. 그 후에 가끔씩 봤다. 그 때마다 내가 여의도 쪽 사람을 한 명씩 데리고 갔다. 이런 식으로 인맥을 늘려나간 것 같다”고 털어놨다.
정 대표와 브로커 이 아무개 씨 등은 강남뿐 아니라 여의도 인근 고급 음식점에서 정치권 관계자들과 만났다고 한다. 앞서의 국회 보좌관은 “가끔 지역구 행사나 민원 같은 게 있을 때 정 대표 측에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적절한 관계였던 것 같다.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당시 내역들을 다시 살펴봤다”면서 “우리만 그랬던 것은 아닌 것으로 안다. 정 대표가 나만 만났겠느냐”라고 되물었다.
이 씨는 지인들에게 “여권 고위 인사가 우리 뒤를 봐주고 있다. 우리도 그만한 대가를 주고 있다”는 식의 발언을 자주 했다고 한다. 과시용일 수도 있지만 정 대표와 이 씨의 마당발 인맥을 감안하면 ‘뻥카’로 치부하긴 어려워 보인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도 정치인들 실명이 여러 번 거론됐다는 점에서도 이를 뒷받침한다.
특히 정 대표는 여권인 새누리당 인사들과 가깝게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 친인척 중 한 명에게 줄을 대려 한다는 소문이 사정라인에 포착되기도 했다. 정 대표는 이 친인척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법조 관계자와 여러 번 술을 마신 것으로 전해진다. 정 대표가 박 대통령 친인척과 선이 닿았을 수도 있음을 추측케 하는 대목이다.
새누리당의 한 전직 의원은 “브로커 이 아무개 씨를 2014년 12월 송년회 행사장에서 처음 봤다. 이 씨가 정 대표 얘기를 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 후 다시 봤는데 이 씨가 새누리당에 여러 도움을 주고 있다고 했다. ‘무슨 말이냐’라고 물어봤더니 의원들 후원금도 내고, 전당대회 때도 지원을 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 씨가 단순한 사업가가 아닌 줄로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이 씨와 가깝게 지냈던 한 사업가는 좀 더 구체적인 말을 들려줬다. 그는 “정 씨 측이 새누리당 전·현직 의원 및 당직자들과 친분이 있다고 자랑했다. 또 2014년 새누리당 전당대회 때 도움을 줬다고 (이 씨로부터) 들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여권의 막후 실력자로 통하는 한 인사가 정 씨의 (전당대회) 지원을 중개했던 것으로 안다. 정 씨 측은 그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새누리당과 라인을 구축해놓고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2014년 새누리당 전당대회는 비박계 김무성 전 대표와 친박 좌장 서청원 전 최고위원이 정면으로 충돌했던 선거였다. 김 전 대표가 다소 우세했지만 서 전 최고위원이 막판 추격을 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승부를 펼쳤다. 그만큼 돈도 많이 투입됐다는 게 새누리당 인사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당시 선거에서 결국 김 전 대표가 서 전 최고위원을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
새누리당은 지난 2012년 이른바 ‘전당대회 돈봉투’ 폭로로 곤욕을 치른 바 있다. 고승덕 전 의원이 2008년 전당대회 때 특정 후보로부터 돈이 든 봉투를 받았다는 게 골자다. 파문이 커지자 새누리당은 박근혜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비대위를 꾸리고 총선을 치러야 했다. 정 대표 측 주장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그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2014년에 출마했던 후보들이 계파를 떠나 대부분 여권 핵심 인사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검찰에서도 이러한 내용들에 대한 첩보를 입수한 상태다. 아직 수사 단계로 나아가진 않았지만 향후 언제든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에 대해 부정적 견해도 적지 않다. 과연 검찰이 현 정부의 ‘역린’이라고도 할 수 있는 전당대회 자금 문제를 건드릴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국민의당의 한 의원은 “지금 검찰 수뇌부는 박 대통령이 확실하게 장악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친박 핵심들이 관여한 전당대회 건까지 수사하진 못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검찰 내부 기류는 사뭇 다르다.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까지 구속시킨 마당에 성역이 있을 수 있느냐는 강경론이다. 그동안 정권 후반기에 검찰이 실세들을 겨누곤 했다는 얘기도 뒤를 이은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고위 인사는 “지금 제대로 된 결과를 내지 못하면 특검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검찰이 누구 입장을 봐줄 처지가 못 된다”면서 “정 대표 측 로비가 정치권에도 미쳤는지가 국민적 관심사인 만큼 철저히 파헤칠 것”이라고 전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