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살아서 지키겠다. 지방자치도 민주주의도”
이재명 성남시장. 7일 단식투쟁에 들어간 이재명 시장. 이종현 기자 eomaster@eoimage.com
7일 이재명 시장은 단식을 앞두고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방자치재정 개편안 강행은 지방자치를 말살하고 민주주의를 훼방하는 정부의 전면전 선포”라며, “반드시 이겨 지방자치와 민주주의를 지켜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재명 시장은 “두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자치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단식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정부의 개악을 막을 것이다”며, 단식투쟁 동기를 대신했다.
일부에서 제기된 시장직 사퇴 강수 관련해 “그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다 알지 않느냐.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하진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들이 싫어하는 일을 죽을 각오로 해나갈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재명 성남시장. 1인시위 중인 이재명. 고성준 기자 joonko1@ilyo.co.kr
앞서 이재명 시장은 지난 3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지방재정개악 반대’ 1인시위를 했다. 이날 이재명 성남시장은 “박근혜 정부가 5천억원을 빼앗으려 말고 지방정부에 4조 7천억원을 반환하겠다는 약속만 지키면 된다”면서 “제 약속, 제 할 일을 안하고 지방정부에 떠넘기는 게 제대로 된 정부인가? 지방재정 약탈과 지방자치를 무력화하려는 정부의 기도에 결코 굴하지 않겠다“고 발언했다.
지난 2014년 7월 대통령 소속 지방자치발전위원회는 기초연금제도, 기초생활보장 개별급여 개편 등으로 지방부담이 4조7천억이 증가했고 정부는 지방소비세 상향조정, 지방교부세 교부율 상향조정 등을 통해 이를 보전한다는 보고서를 작성한 바 있다.
이재명 시장은 이를 근거로 “지방재정을 망가뜨린 원죄와 원상회복 약속 미이행을 숨기는 ‘기만’ 행위를 할 뿐 아니라 정당한 반대활동을 불법이라며 ‘협박’까지 하고 있는 것”이라며, 행자부를 강하게 질타했다.
이재명 시장은 “보편적 복지가 포퓰리즘이자 악마의 속삭임이라며, 맹공하던 정부가 지방자치를 보편적으로 관리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면서 “지방재정개편은 정부 말만 듣고 줄 세우려는 박근혜 정부의 명백한 정치적 공격”이라고 강조했다. 이재명 시장은 정부의 지방재정개편은 한마디로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하면서 민주주의의 꽃인 지방자치를 정부가 나서 짓밟고 말살하는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 독재정권의 하수에서 의회 해산까지...굴곡진 대한민국 지방자치
지방자치는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와 항상 함께 해왔다. 1948년 제정된 우리나라 제헌헌법에 지방자치가 명문화되고 1949년 7월 지방자치법까지 제정·공포됐다.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에 명시된 지방자치제를 정치 불안정을 이유로 실시하지 않다가 1952년 4월 25일 한국전쟁 중 이승만 정권이 재집권을 위해 국회를 무력화목적으로 지방의회를 구성했다. 결국 지방자치의 시행 초기에는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본래 의미보다 독재자의 장기집권에 동원되는 용도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다 4·19혁명 이후 1960년 11월 1일 전면적으로 지방자치법이 개정되고, 12월 12일 제3대 도의원 및 도지사(서울시장), 시장, 읍·면장 선거가 실시되면서 명실상부한 지방분권화의 시대가 열린다.
하지만 곧바로 5·16 쿠데타가 일어나고 군부정권은 지방의회를 일시에 모두 해산시켰다. 그리고 임시조치법으로 자치단체장은 임명제로 바뀌면서 지방자치를 폐지했다. 급기야 1972년 유신헌법은 아예 ‘지방의회 구성을 조국의 통일 때까지 유예한다’고 규정했다.
이 후 전두환 정권에서도 지방자치법을 제정하지 않았다. 이렇듯 지방자치가 사라진 30여년간 우리나라는 중앙집권적 관치시대가 계속됐다. 정치권은 물론 행정가들도 강력한 중앙집권적 지도체제하에 지방자치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지식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으며, 정치권의 각종 비리는 어둠속으로 숨겨지기도 했다.
노태우 정권 때에는 지방의회만 구성하고 자치단체장 선출을 미루기로 결정했다가 13대 총선에서 여소야대가 된 야3당은 1989년 12월 31일 지방의회 및 단체장 선거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국민들은 지방자치 실현에 대한 기대가 커지다가 전격적인 3당 합당으로 지방자치 실시는 또 미뤄졌다. 218석의 거대 여당이 된 노태우 정부는 법에 명시된 지방자치 연기를 선언했다.
# 김대중(DJ) “지방자치는 민주주의의 핵심”
바로 이때 70석에 그친 당시 평민당 김대중(DJ) 총재가 ‘지방자치제 실현’을 걸고 처음이자 마지막인 단식투쟁에 돌입한다. 김영삼(YS)이 DJ를 찾아 단식을 만류하자 DJ가 “민주화가 바로 의회정치와 지방자치가 핵심”이라고 말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당시 13일 간 이어진 DJ의 단식으로 정치권은 “1991년 6월 30일 이내 기초 및 광역 지방의회를 구성하고, 1992년 6월 30일 이내 기초 및 광역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실시한다”고 합의했다.
DJ의 단식이 꺼져가던 지방자치를 되살린 것이다. 이후 지방자치제도는 발전을 거듭했다. 2004년 7월 주민투표, 그리고 2007년 7월 주민소환제까지 도입하는 등 제도적 측면에서 선진국 수준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제도를 뒷받침할 예산은 여전히 중앙정부의 영향력 아래 있다. ‘반쪽 자치’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재명 성남시장. 고성준 기자 joonko1@ilyo.co.kr
# 박근혜 정부, 민주주의가 싫은가
이번 정부의 지방재정 개편안은 지역안배와 방만 중복 지방경영을 방지하고자 한다는 취지로 추진 중이다. 의미만 놓고 보면 이재명 시장을 비롯한 불교섭단체장들의 반발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속을 조금만 들여다봐도, 현 지방재정은 지방자치의 몫이 크게 적을 뿐더러 정부가 지방세 등을 더 걷을 경우 사실상 정부에 귀속되는 구조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정부가 강행 추진하는 모습은 정부의 민주주의와 지방자치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재명 시장 역시 이를 우려하고 있다.
이재명 시장은 “역사적으로 군사독재정권에서 지방자치를 반대했다”면서 “지방자치를 하면 정부 맘대로 정권을 휘두르기 어렵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가 박정희 정권으로 회귀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민주주의와 지방자치를 파괴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지방재정 개편을 중단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한편, 이재명 성남시장의 단식이 꺼져가던 지방자치를 살린 DJ의 단식투쟁처럼 지방자치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도화선이 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물론 DJ 단식 당시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여소야대의 20대 국회가 개원을 앞두고 있으며, 지방자치와 민주주의를 경험하고 인식한 국민들이 이재명 시장 등을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자치 수장들이 거리로 나와 생명을 담보로 투쟁을 벌인다는 점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지방자치에 대한 민낯을 드러내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서동철 기자 ilyo100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