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추진위원회 위원장은 현재 한국기원 상임이사로 있는 김기춘 변호사(70). 법무부 장관을 거쳐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 제15, 16, 17대 활약했던 인물이다. 통합작업에는 한국기원 쪽에서는 한상열 사무총장을 비롯해 상임이사인 이정무 한라대 총장, 조훈현 9단, 유창혁 9단 등이, 대바협 쪽에서는 조건호 회장, 이재윤 부회장, 강준열 전무, 박창규 경기도바둑협회부회장 등이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합의 명분은 일리가 있어 보인다. 바둑이 2010년 중국 광저우 아시안게임과 2014년 우리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됨에 따라 거기에 출전시킬 국가대표 선수의 선발·구성·훈련을 어떻게 할 것이냐, 정부 보조금을 받기 위해선 단일 창구가 필요하지 않겠느냐 하는 것 등이 당면 과제로 떠오른 것.
한국기원은 1955년 사단법인으로 출발해 1970년 재단법인이 되었다. 1990년대 후반까지 명실상부 한국 바둑의 총본산이었다. 대바협은 바둑의 체육화 논의와 함께 2005년 발족했다. 한국기원과 대바협은 어차피 같은 뿌리를 갖는데, 필요에 따라 4년 전에 아마추어 바둑 부분이 대바협이라는 이름으로 갈라져 나온 것이고, 대바협이 대한체육회 정식 가맹단체가 되면서 혼선이 빚어졌다. 예컨대 아마추어 단·급 인정증 발행을 어디서 주관하느냐, 정부 지원금은 어떻게 배분하느냐, 더 나아가 대외적으로 한국 바둑을 대표하는 기관이 한국기원이냐, 대바협이냐 하는 것 등이다. 따라서 대승적 차원에서 이제 다시 두 단체가 통합하는 것이 바둑계 장래를 위해선 바람직하다고 일단 환영하는 소리가 많다.
그러나 한국기원과 대바협이 같은 뿌리냐 하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있다. 대바협은 한국기원에서 갈라져 나온 단체라기보다는 1997년에 창설되었던 사단법인 한국아마바둑협회(KABA)의 후신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맞다고 본다.
1988~89년 그 무렵부터 IMF 전까지 국내외 바둑계는 시쳇말로 경기가 좋았다. 프로 쪽에는 기전이 늘어났고, 한·중·일에서는 프로기사들의 세계대회들을 앞다투어 만들었다. 아마 쪽에도 바둑교실 등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서 호황을 누렸다. 한국기원은 업무가 벅찼다. 그런 상황에서 이제 아마추어 바둑 쪽을 더욱 활성화하는 일에는 한국기원만 의지하지 말고, 한국기원에만 부담을 지우지 말고, 아마추어 바둑인들이 나서보자 하고 만든 것이 KABA다. KABA는 7~8년 동안 나름의 역할을 했다. 바둑 체육화가 현안이 되면서 KABA를 ‘발전적’으로 해산하고 만든 것이 대바협이다.
한국기원과 대바협이 통합되면 통합단체의 명칭은 ‘대한바둑협회’로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대한체육회 산하단체는 ‘대한OO협회’라는 명칭이어야 한다는 것. 통합 단체의 대표는 현 한국기원 허동수 이사장이 맡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런 건 좋은데, 프로기사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궁금하다. 한국기원이 대바협을 통해 대한체육회 산하에 들어가면 프로와 아마의 구별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또 재단법인인 한국기원은, 몇 년 전 종로 한국기원을 판 돈 55억 정도를 포함해 약 100억의 재산이 있다고 하는데, 그건 어떻게 되는 것인지. 한국기원 회관 문제는 통합단체로 넘어가는 것인지. 새로운 바둑회관 건립을 위해 종로 한국기원 회관을 판 것은 현재 이사장 재임시에 있었던 일인데, 그걸 안고 간다는 것인지.
‘통합’과 같은 큰 문제라면 바둑팬들이나 프로-아마 기전의 후원사들 쪽의 여론도 한번 들어보아야 했던 것 같은데, 그런 과정이 없었던 것 같아 아쉽다. 공청회 같은 걸 한번 열었으면 어땠을까. 들어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여론을 들어 보니 이렇더라”고 말을 해 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동안 한국기원이 한국 바둑을 세계제일로 끌어 올리는 큰일을 했음에도 종종 바둑팬들로부터 비난을 받은 것은, 바둑에 관한 한 한국기원이 독점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대개 독점은 좋지가 않다. KABA나 대바협이 생긴 것은 선의의 경쟁 상대가 나타났다는 점에서 결코 해로운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게 다시 하나로 합쳐진다.
중지를 모아 좋은 모습의 결론을 내 주기 바란다. 한국기원과 대바협, 두 단체의 대표와 이사들은 어떻게 하는 것이 ‘우리 폼이 사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기에 앞서 어떻게 하는 것이 바둑계와 바둑팬을 위하고, 바둑계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냐 하는 걸 먼저 생각해주길 바란다.
이광구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