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일 김승현이 연봉 조정관련 재정위원회에 참석하고 있다. 김승현은 구단 제시액 6억원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뉴시스 | ||
프로농구계 일각에서는 김승현이 제출한 문건이 사실을 경우, 이를 수락한 구단이나 김승현 모두 처벌을 피할 수 없으며 김승현은 그동안 구단에서 받은 뒷돈을 모두 돌려줘야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도대체 얼마를 원하는 건가
김승현의 지난 시즌 성적은 39경기 출전, 9.67점 6.38어시스트였다. 팀은 18승36패로 9위. 과거 플레이오프 단골 팀이었던 대구 오리온스는 2007~08시즌 꼴찌에 이어 2년 연속 바닥을 헤맸다. 김승현이 허리를 부여잡고 벤치를 들락날락한 탓이었다.
개인 성적이나 팀 성적으로 볼 때 김승현은 연봉 인상 요인이 없다. 그런데 오리온스는 김승현의 연봉으로 지난해(5억 5000만 원)보다 5000만 원이나 인상된 금액을 제시했다. 김승현이 “터무니없다”고 일축하고 있는 금액이다.
도대체 어떻게 돼가고 있는 상황인가. 동결된 연봉에도 감지덕지 사인을 해야 할 선수가 5000만 원이나 인상된 금액에 콧방귀를 끼고 있다. 그렇다면 그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요구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뒷돈 의혹’이 짙어지고 있는 이유다.
김승현과 오리온스의 그간 행보는 이 같은 ‘뒷돈 의혹’을 사실로 증명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연봉 협상 과정에서 불거진 양측의 마찰로 인해 김승현이 자유계약선수(FA) 계약을 했던 2006년 이후 꾸준히 떠돌았던 김승현의 막대한 ‘뒷돈설’은 수면 밖으로 나올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얼마인가. 이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다. 그동안 프로 구단들이, 그 중에서도 프로농구에서의 뒷돈 행태가 워낙 은밀하고도 일반적으로 행해져 왔기 때문에 정확한 금액은 본인과 구단 외에는 확인할 수 있는 길이 전무하다. 그러나 관계자들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김승현의 연봉은 최소 10억 원이라는 설에 무게가 실린다.
김승현이 FA계약을 체결한 지난 2006년은 프로농구계 전체를 휘청거리게 할 정도로 FA 대상 선수에 대한 뒷돈 관행이 극에 달한 시점이었다. 2001년 프로 데뷔와 함께 팀의 우승을 이끌며 신인왕과 최우수선수상(MVP)을 휩쓸었던 당대 최고의 포인트가드 김승현은 당시 FA 중 비교할 수도 없는 최대어였다. 여러 팀의 ‘입질’은 그의 몸값을 천정부지로 올려놨다.
김승현에 1년 앞서 FA 계약을 한 현주엽(은퇴)과 신기성(KT)이 당시 KTF로부터 액면 연봉 3억 5000만 원의 2배에 달하는 총액 연봉을 받았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김승현과 같은 해에 LG와 계약한 조상현 역시 액면 연봉은 3억 4000만 원이었지만 이 금액을 믿는 관계자는 없었다. 1억 원대의 연봉을 받던 식스맨급 선수들이 FA 자격을 얻어 5년 총액 20억 원대의 ‘잭팟’을 터뜨린 것도 바로 2006년이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한다면, 그리고 당시 김승현의 위상을 감안한다면 김승현의 몸값이 자연스럽게 유추될 수 있다. 5년 총액 54억 원이라는 ‘소문’에 무게가 실리는 것도 무리가 아닌 셈이다. 결국 일반인들에게 꿈과 같은 ‘6억 원’이라는 연봉도 김승현에게는 말도 안 되는 금액일 수밖에 없다.
# 오리온스 ‘배째라’ 근거는
오리온스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오리온스와 김승현 사이에는 합의해야 할 정리금 문제가 있다”고 증언하고 있다.
정리금은 한국농구연맹(KBL)이 선수 몸값의 거품을 제거하고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도입한 제도. 2007년 10개 구단 단장들로 구성된 이사회가 자정결의를 하면서 뒷돈 근절을 모토로 삼았다. 자연스럽게 뒷돈이 절정에 달했던 2006년 FA 선수들의 연봉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로 떠올랐다. 당시 이사회에 참석했던 한 단장은 “첫 해는 4억, 다음해에는 3억 등 순차적으로 정리금을 써 그동안 뒷돈을 해결하고 앞으로 투명하게 계약하자는 취지로 정리금 제도를 도입하려 했다”고 말한다. 지난해에는 뒷돈이 모두 정리돼 프로농구의 몸값 거품 문제가 말끔히 해결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인해 오리온스만큼은 김승현의 뒷돈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번 사건이 정리되지 않을 경우 김승현이 은퇴를 불사할 수도 있다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다. 만약 오리온스가 “자정결의까지 한 마당에 예전 계약서에 명시된 뒷돈을 지급할 수 없다”고 버티는 상황이라면, 어차피 허리디스크로 선수 생활을 계속하기 어려운 김승현이 은퇴를 선택하고 대신 오리온스에 민사소송을 할 수도 있다는 추측이다.
실제로 김남기 신임감독이 사령탑을 쥔 오리온스는 김승현 없이 다음 시즌에 대비하고 있다. 오리온스 선수단의 한 관계자는 “합류를 하더라도 제대로 운동할 맛이 나겠냐. 일단 김승현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다음 시즌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김승현은 8일 재정위원회에 앞서 “마치 내가 돈만 밝히는 죄인처럼 여론에서 몰아가고 있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김승현이 미처 이어가지 못한 다음 말이 “나는 받기로 한 금액을 받아야겠다는 것뿐”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뒷돈 문화 왜 이 지경까지…
▲ 서장훈(왼쪽 사진). 방성윤(오른쪽 사진). | ||
그 규모가 수천만, 수억을 지나 수십억 원에 달하면서 신인 선수들의 드래프트 선발을 골자로 하는 프로농구가 1997년 출범했고, 성적지상주의로 인한 각 구단의 ‘뒷돈 관행’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서장훈(현 전자랜드)이나 방성윤(현 SK) 등 특급 신인들이 드래프트를 거부하고 미국진출 후에 국내로 유턴하는 방식으로 ‘계약금’조의 거금을 챙겼다는 소문은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다.
이들을 비롯해 대어급이라 판단되는 선수들을 대학 시절부터 뒤에서 조정하는 지도자와 측근들이 구단과 담판을 짓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방성윤을 모델로 삼아 거액의 계약금을 챙기려 했던 모 선수가 구단이 단호한 태도를 취하고 해외 리그 진출이 여의치 않자 조용히 신인최고연봉 1억 원을 받고 입단한 사실도 있다.
프로농구계는 자정결의를 한 2007년 이후 더 이상의 뒷돈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KBL도 뒷돈 방지책으로 구단으로부터 선수들의 소득세 신고 서류 등 국세청 세무자료를 제출 받아 꼼꼼히 조사하고 있다. KBL에 신고된 샐러리캡 한도 내 연봉 외에 별도로 지급하는 돈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한 조치다.
일단은 이 같은 구단들의 공감대가 성공적으로 연착륙하고 있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 같은 제도와 노력들은 예전에도 있어 왔다. 한 구단이라도 성적에 욕심을 내는 순간, 이 같은 약속은 쉽게 깨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 구단 관계자는 “뒷돈을 줄 수 있는 길은 수천 수만 가지도 넘는다. 원천징수서류에 포함하지 않고 어떤 형태로든 베니핏을 제공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왜 못하겠는가”라며 회의적인 시각을 나타냈다.
실제로 샐러리캡에 포함되지 않는 외적인 수입, 즉 모그룹의 CF 모델로 발탁하는 등의 경우는 얼마든지 있어 왔다. KBL이 광고 모델료로 얼마를 지급했는지는 조사하지 않기 때문에 이는 선수나 감독의 ‘추가 보수’를 지급하는 편리한 도구가 되고 있다. 모델의 인지도나 매체, 기간 등에 따라 많은 차이는 있지만 농구선수나 감독을 CF 모델로 기용할 경우, 대체적으로 1년에 1억 원 안팎의 모델료를 지불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아마추어 시절부터 선수의 형제나 친척을 모그룹 직원으로 채용하거나 부모에게 대리점을 내주거나 아파트 분양권을 제공하는 등의 수많은 ‘뒷돈거래’가 횡행했다. 이 모든 문화를 보고 배운 선수에게 “6억 원만 받고 조용히 입 다물라”는 요구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허재원 한국일보 체육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