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철우가 9월 18일 배구 대표팀 코치의 폭행 사건에 대한 기자회견을 했다.임영무 기자 namoo@ilyo.co.kr | ||
박철우는 이상렬 코치의 폭행을 알리는 기자회견 이후 심한 고통을 받았다고 한다. 더 이상 자신과 같은 일이 발생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용기를 낸 행동이었는데 그 후 예상치 못한 어이없는 소문들로 인해 더 큰 아픔을 느꼈던 것이다.
“가장 황당했던 건 내 여자친구와 관련된 기사들이었다. 내가 삼성화재 신치용 감독님 딸을 만나 김호철 감독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고 또 우리 팀 비밀이 혜인이를 통해 신 감독님한테 흘러 들어갔다는 등의 말도 안 되는 소문들이 기사로까지 나왔다. 내가 알리고자 했던 진실은 이 코치님의 폭행이었는데 그게 엉뚱하게 내 프라이버시로까지 확대돼 이상하게 변질돼 가는 게 정말 괴로웠다.”
박철우는 언론을 통해 잘 밝히지 않았던 신혜인과의 관계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우리가 만난 건 한 3년 정도 된다. 혜인이와의 교제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정말 많은 일들이 벌어졌고 숱한 억측과 오해도 많이 받았다. 처음에 혜인이한테 이성으로 호감을 느끼면서 많은 고민을 했었다. 현대캐피탈의 최고 라이벌 팀인 삼성화재 감독님 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저런 생각과 갈등만 반복하다보면 혜인이를 놓칠 것 같았다. 내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이고 싶었다. 난 혜인이를 누구의 딸이 아닌 그냥 신혜인으로서 만난 것이고 누구의 딸이라서 좋아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차분히 얘기를 꺼내던 박철우는 자신과 신혜인과의 만남이 ‘스파이설’로까지 확대된 것과 관련해서는 목소리를 높여 억울한 감정을 드러냈다.
“난 부모님한테도 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잘 말하지 않는 편이다. 하물며 여자친구한테 팀 상황을 말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람들은 소설을 너무 좋아하는 것 같다. 내가 상대팀 감독님의 딸을 만나니까 ‘혹시나’ 하고 상상하는 걸 진짜 그럴 거라고 믿는다. 사람들의 생각까지 내가 어떻게 할 수는 없지만 기사화하려면 최소한 무슨 근거라도 갖고 기사를 써야 하지 않나. 이번 일로 또 다시 혜인이한테 상처를 준 것 같아 굉장히 미안했다.”
박철우는 ‘스파이설’과 관련해선 지난 시즌 중에 이미 그런 소문이 돌고 있음을 알았다고 한다. 얼토당토 않는 소문이라 처음엔 무시하고 그냥 지나치려 했지만 자신의 귀에까지 얘기가 들리자 너무 힘들었다고 토로한다.
“그런 오해를 받으면서 경기하기가 참으로 힘들었다. 난 엄연히 현대캐피탈 소속 선수이고 우리 팀 성적과 동료 선수들이 중요하다. 팀 승리가 중요하고 그래야 나 또한 성적도, 연봉도 올라가는 게 아닌가. 우리 팀 정보를 혜인이한테 흘려서 혜인이가 그걸 신치용 감독님한테 전달한다는 스토리가 말이 되는 얘긴가. 설령 내가 그렇게 했다고 치자. 혜인이가 그런 말을 옮길 사람도 아니고 딸한테 그런 걸 요구하는 신 감독님도 아니다. 시즌 중에 그런 말이 들리니까 무척 괴로웠다. 김호철 감독님과 면담 요청을 하고 싶기도 했다. 혹시 감독님까지 날 오해하시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라이벌 팀의 감독 딸을 사귄다는 사실 때문에 예상치 못한 구설수에 자주 오른 박철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신혜인과 헤어질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 배구 국가대표 박철우가 이상렬 코치에게 폭행당한 사건과 기자회견 이후에 벌어진 일들에 대해 밝히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박철우에게 소속팀 복귀와 관련해 물었다. 이미 박철우나 김호철 감독은 불편할 수밖에 없는 관계에 처했다. 그러다보니 박철우가 현대캐피탈에서 나와야 한다는 의견도 있고 삼성으로 간다는 얘기가 농담처럼 흘러나오기도 했다.
“솔직히 감독님을 뵙기가 서로 편하진 않을 것이다. 나한테는 우리 팀으로 복귀하는 게 중요하다. 감독님과의 관계에 대해선 뭐라고 말씀드리기가 어렵다. 상당히 민감하고 대답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시즌 때도 편한 마음으로 운동을 하지 못했다. 이런저런 소문들 때문에 심리적으로 많이 위축이 됐었고 경기력에까지 지장을 받았다. 그런데 또 이런 일이 터졌고…. (한숨을 쉬면서) 다른 건 생각하고 싶지 않다. 팀에 복귀해서 다시 운동을 시작하고 싶다.”
‘삼성행’ 얘기가 나오는 부분에 대해서도 박철우는 단호한 태도를 나타냈다.
“내년이면 FA가 된다. 지금 삼성으로 간다는 게 말이 되나. 그리고 선수 이적은 선수의 의지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구단에서 결정할 부분이다. 만약 이런 일로 인해 삼성을 가게 된다면 난 차라리 은퇴를 선택하겠다. 기자회견을 연 것도 선수 생명을 걸고 한 일이다. 자꾸 날 이상하게 몰고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신혜인과의 교제가 알려진 뒤 박철우는 이상하게도 삼성화재만 만나면 맥을 못 춘다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다.
“나랑 혜인이가 구설수에 오르지 않으려면 내가 잘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팀이 이겨야 한다. 그걸 잘 알고 있는 내가 삼성화재와 게임을 치를 때 일부러 못할 수가 있겠나. 만약 삼성화재 감독님 입장에서도 딸이 사귀는 남자가 운동도 못하고 팀에 기여도 하지 못하는, 별 볼일 없는 선수라면 좋은 평가를 할 수 있을까? 더 잘하고 싶었다. 삼성화재를 만났을 때는. 더 열심히 해서 더 많은 점수를 내고 싶었다. 그런데 자꾸 그런 걸 의식해서인지 오히려 역효과가 난 적이 많았다. 잘하려는 욕심에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가다 보니까 게임이 잘 풀리지 않은 것이다. 마음의 병이 많았다. 부담, 시선, 위축, 욕심 등등이 겹치면서 경기력을 떨어트렸다. 결국 내 자신이 날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한 것이다.”
대한체육회로부터 형사고발당한 이상렬 코치에 대한 박철우의 생각이 궁금했다. 기자회견을 하기 전까지 인간적인 고민을 많이 했었다는 박철우는 (기자회견을)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이 코치님의 인생을 떠올리면 그렇게 강경하게 행동할 수 없었다. 그러나 흐지부지 지나치면 다른 쪽에서 또 터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막상 상황이 이렇게 되니까 내 마음이 더 불편하다. 밤마다 악몽만 꾼다.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가다보면 등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당장이라도 뒤에서 누군가가 뛰어나와 날 덮칠 것만 같다. 그래도 많은 분들이 내 행동을 지지해주고 격려를 보내주셨다. 물론 ‘내가 원래 불성실했고 행동이 건방졌다’며 직접 보지도 않고 추측으로 비난을 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진실은 밝혀지기 마련이다.”
박철우는 더 이상 아프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배구선수로서 인정받고 싶고 자신이 좀 더 좋은 선수로 성장해서 여자친구한테 자랑스러운 남자친구가 되고 싶다는 바람도 나타냈다. 여전히 표정이 어둡고 불편해 보였지만 쉽게 위로를 건네지 못했다. 그의 배구인생이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