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직은 축구보다 인터뷰가 더 어렵다는 김민우. 수줍음 많고 체구 작은 이 친구가 U-20 대회를 들었다 놓은 ‘작은 거인’이다. 박은숙 기자 espack@ilyo.co.kr | ||
김민우를 만나려고 찾은 연세대 축구부 기숙사. 4층 선수 숙소에서 김민우를 기다리다 우연히 신재흠 연세대 감독과 인사를 나누게 됐다. 신 감독은 월드컵대회에서 보여준 김민우의 모습이 소속팀에서의 실력 그대로라면서 “재능은 타고 났다. 그러나 그것만 믿고 망가지는 선수가 아니라 타고난 재능에다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는 성실한 선수의 전형이 김민우다”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신 감독은 덧붙여서 “어렵게 살아온 환경적 요인이 축구로 성공하겠다는 목표 의식을 뚜렷이 갖게 했다”며 김민우의 평범하지 않은 가정 형편에 대해 설명했다.
잠시 후 감독실 방문을 노크하고 들어온 김민우. 기자가 인터뷰하면서 사진도 찍을 거라고 말하자, 잠깐만 기다려 달라며 나간다. 트레이닝복을 벗고 멋진 사복으로 갈아입고 나타난 김민우와 함께 삼청동으로 향하던 중, 청와대를 지나치게 되자, 김민우는 청와대를 실제로 보는 게 처음이라며 호기심을 나타낸다.
시간이 지나긴 했어도 U-20월드컵 대회는 흥분을 자아내는 얘기들이 한가득이다. 하지만 워낙 수줍음 많고 인터뷰하는 걸 어려워하는 탓에 자연스런 진행이 어려웠다. 예를 들면 이렇다. “김민우한테 홍명보 감독은 어떤 존재?” “카리스마 있는 선생님이요” “그냥 거기서 대답이 끝이에요?” “네…” “그렇다면 바로 프로로 직행하지 않고 대학을 간 이유는?” “(고등학교) 감독님이 대학을 가라고 해서요”. 이런 질문과 단답형 대답들이 30분 동안 이어졌다고 생각해 보라.
잠시 인터뷰를 멈추고 일단 식사부터 하면서 김민우와 친해지기 작전에 돌입했다. 김민우가 먹고 싶다는 한식당에 가서 푸짐하게 음식을 주문한 후 가벼운 얘기를 주고받았다. 여자친구가 있는지, 대표팀에서 제일 짓궂은 선수는 누구였는지, 외모와는 완전 딴판이었던 김태영 코치의 장난 등 편한 분위기에서 얘기를 나누자, 곧잘 대답하며 웃음도 ‘빵’ 터트리는 등 약간은 편안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자리를 옮겨 카페에서 딸기주스를 시켜놓고 본격적인 ‘취조와 신문’이 시작됐다(인터뷰하면서 술이 아닌 주스를 마신 것도 실로 오랜만이다^^). 김민우의 축구 인생에 영향을 준 사람들을 주제로 인터뷰를 진행해 갔다.
김민우는 축구를 하기 위해 고향인 경상남도 진주에서 초등학교 5학년 때 혼자 서울로 유학을 왔다고 한다. 12세 때부터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 독립심이 남달랐지만 중학교 때는 숙소 생활의 고달픔으로 인해 식당에서 일하시는 어머니를 떠올리며 눈물 흘린 일이 많았다.
“사실 어려서부터 서울에서 지냈기 때문에 집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잘 몰라요. 가끔 한 번씩 갈 때마다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죠. 아버지요? 많이 아프셨어요. 당뇨병으로 오랫동안 고생하고 계시거든요. 어머니가 가장 역할을 하시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김민우의 아버지는 조광래 경남 FC 감독과 초등학교 시절 축구 선수로 활약했던 김성대 씨(55). 그러나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고등학교 졸업 후 축구를 접었고 사회생활도 그리 평탄치만은 않았다.
“아버지가 축구하는 모습을 많이 보지 못했어요. 가끔 조기축구회에서 공 차시는 걸 본 적은 있지만 젊은 선수들처럼 파이팅 넘치는, 인상적인 모습은 아니었거든요. 초등학교 3학년 때 축구를 시작하면서 아버지로부터 엄격한 훈련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 당시 하도 스파르타식으로 훈련을 받아서 그런지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는 그냥 ‘무섭다’예요.”
그래도 김민우는 축구를 시작한 이후, 축구에 대한 재미를 느껴가면서, U-17청소년대표팀에 뽑히면서부터, 그리고 U-20월드컵대회를 통해, 축구선수로 돈을 많이 벌게 되면 제일 먼저 부모님을 편하게 모시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효자다.
축구부 회비를 내지 못할 정도로 ‘가난’이란 단어와 떼려야 뗄 수 없었던 김민우가 계속 축구를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주위에서 도움을 준 지인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김민우는 언남고 축구부의 정종선 감독을 또 다른 ‘아버지’로 여길 만큼 정 감독에 대한 존경과 의지가 상당하다.
“아버지의 고향 후배가 정 감독님이세요. 체격이 왜소해서 고등학교 진학이 힘들어질 때 정 감독님이 절 불러주셨거든요. 감독님은 저한테 아버지나 다름없는 분이세요. 정 감독님 말고도 절 도와주신 분들이 너무 많아요. 꼭 축구로 성공해서 그 빚을 다 갚고 싶어요.”
김민우는 대학에 진학해서도 정 감독과 인연의 끈을 잘 이어가고 있었다. 정 감독 또한 착하고 여린 제자를 위해 인생의 멘토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 U-20 월드컵 독일과의 경기에서 김민우가 동점골을 넣고 홍명보 감독에게 뛰어가 안기고 있다. 연합뉴스 | ||
“처음엔 너무 신기했어요. TV로만 보던 축구 스타를 가까이서 보게 되니까 믿어지지가 않더라고요. 그런데 의외로 재미있는 면이 많으셨어요. 웃기도 잘 웃으시고요. 사실 감독님 위치에서 선수들에게 다가오기가 쉽지 않으셨을 텐데 모든 걸 다 떼고 선수들 눈높이에서 바라보시더라고요. 종종 존댓말을 하시며 선수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해주셨고요, 심하게 야단을 치거나 잔소리를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선수가 감독님 앞에서 엄살을 피우거나 훈련을 게을리하거나, 또 집중을 하지 않겠어요? ‘홍명보’란 이름만 들어도 알아서 잘할 수밖에 없어요(웃음).”
독일전에서 홍명보 감독과의 진한 포옹신에 대해서도 말문을 열었다. 김민우는 “그땐 아무 생각 없이, 너무 좋아서 그냥 감독님한테 달려갔던 건데, 나중에 사진으로 보니까 무척 민망했다”며 얼굴을 붉힌다. 홍 감독과 헤어지는 게 너무 아쉬워 귀국 후 그동안 감사했다는 인사 전화를 드렸는데 홍 감독이 문자로 ‘내가 한 건 하나도 없다. 너희들이 기대 이상으로 잘해줘서 내가 고마워해야 할 정도다’라는 대답을 들려줬다고.
“코치 선생님들도 모두 스타플레이어 출신이시잖아요. 그런데 모두 유명한 분들 같지 않았어요. 서정원 선생님은 선수들 스트레칭할 때 슬리퍼 숨겨 놓고 시치미를 떼는 등 장난 많이 치셨어요. 김태영 선생님도 좀 무서운 인상과는 달리 얼마나 애교가 많으신데요. 운동하면서 이렇게 좋은 분위기에서 인격적으로 존중받으며 운동한 게 흔치 않았던 것 같아요. 많이 그리울 것 같아요. 그 시간들이.”
김민우가 이번 대회를 통해 떠올릴 이름이 또 한 명 있다. 바로 기성용이다. 성인대표팀과 K-리그에 전념하기 위해 ‘홍명보호’ 합류를 고사했던 기성용이 만약 청소년대표팀에 참가했다면 김민우는 공격형미드필더가 아닌 왼쪽 풀백으로 뛰었을 것이다. 김민우는 기성용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성용이 형이 좋은 선수임은 분명해요. 같이 뛰었다면 대표팀에 많은 도움이 됐을 겁니다. 물론 제가 그 자리를 차지할 수는 없었겠지만 개인적으론 같이 뛰면서 성용이 형의 플레이를 직접 보고 싶었어요. 부러움요? 아주 많이 부러워요. 뭐 하나 부족한 점이 없어 보이잖아요. 전 아직 멀었어요. 실력도, 경험도…, 이제 겨우 시작인 걸요.”
김민우와 함께 U-20월드컵대회를 뛰었던 ‘절친’ 오재석이 자신의 미니홈피에 올린 ‘사랑하는 국민잡초 김민우에게’란 글 중에 이런 내용이 눈에 띈다. ‘내 마음에 있던 한을 눈 녹듯이 씻겨 내려줬던 한 방, 그리고 그간의 엄청난 너의 노력을 보상받았던 두 방, 마지막으로 세상에 너의 이름을 알릴 수 있었던 세 번째 방. 국민을 열광케한 이 3골이 너의 모든 것을 말해줄 수는 없지만 너와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게 내겐 가장 큰 감동이었다.’
2007년 U-17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훈련 도중 오른쪽 복사뼈가 부서지는 중상을 입은 김민우를 남겨놓고 경기에 출전하며 가슴 아파했던 오재석이 U-20대회에서 김민우와 함께 경기를 뛰며, 또 김민우의 골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감격에 겨운 눈물을 흘렸던 내용들이 담겨 있다.
비록 말 솜씨가 프로 선수들처럼 매끄럽진 못했어도 김민우의 때묻지 않은 축구에 대한 열정과 미래를 기대하게 만드는 재능, 그리고 그를 아끼고 응원하는 지인들의 사랑을 느끼며 풋풋한 감상에 빠져든 시간들이었다.
이명이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