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영무 기자 namoo@ilyo.co.k | ||
어느 종목이든 1위팀에 가보면 팀 분위기가 한층 밝고 여유롭다. 훈련을 위해 체육관으로 나오는 선수들의 표정도 지치고 피곤한 기색이 없다. 운동을 준비하면서 동료 선수들과 장난도 치고 어색한 농담에 울려퍼지는 큰 웃음소리는 ‘이방인’들의 마음까지 한결 가볍게 만든다. 김요한에게 ‘1위팀 선수’라고 불렀더니 단박에 ‘어색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프로 데뷔 이후 줄곧 꼴찌팀에 머물던 터라 지금의 1위라는 숫자가 크게 와 닿지 않는 것이다.
“아시아선수권대회 출전 이후 몸이 굉장히 힘들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개막전까지 컨디션을 끌어 올리려고 무리하게 운동을 했는데 그 여파가 지금 조금씩 나타나는 것 같아요. 발목에 통증도 심하고 온몸이 쑤시고, 극심한 피로감까지, 한마디로 종합병동이나 마찬가지죠. 그래도 성적이 좋으니까 마음은 편해요. 감독님도 코트에서 자주 웃어주시니까 경기하는 데 부담이 없어요.”
역시 성적이 좋으면 아프던 몸까지 가벼워지는 모양이다. 김요한은 좋지 않은 몸 상태로 삼성화재의 캐나다 용병 가빈, 현대 박철우에 이어 공격성공률이 3위에 랭크돼 있다(11월 21일 현재). 배구 전문가들마다 이구동성으로 “김요한이 많이 달라졌다. 수비약점을 보완한 이후 공격의 순도가 높아졌다”고 칭찬을 아까지 않는다.
“다른 건 모르겠고, 연차가 되다 보니까 배구를 보는 시야가 넓어지는 것 같아요. 여유도 생기고, 시합을 즐길 수 있고요. 시즌 전 이런저런 어려움들이 많았는데 잘 극복해 낸 것도 도움이 됐어요. (이)경수 형의 몸 상태가 지금 온전하지 않거든요. 제가 1, 2라운드 바짝 달리고 3라운드부터는 경수 형이 레프트를 맡아줄 거라 믿어요. 주전 경쟁이요? 경수 형이랑요? 에이, 제가 한수 아래죠.”
한창 김요한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데 김상우 코치가 깜짝 등장했다. 삼성화재에서 은퇴 후 한 시즌 동안 배구 해설을 하며 <일요신문>과 인연을 맺고 선수들 인터뷰하러 다녔던 당시의 ‘취재진’이 지금은 LIG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김 코치는 2008년 초, LIG 숙소를 찾아 김요한을 인터뷰한 적도 있었다. 김 코치는 “요한이랑 띠 동갑인데 의외로 속이 깊다”면서 “힘든 훈련도 거부감 없이 잘 소화해내고 팀 분위기에 잘 녹아드는 스타일이라 밖에서 보는 것처럼 튀는 행동을 잘 하지 않는다”고 후배를 치켜세웠다.
LIG는 개막전에서 대한항공을 꺾더니 삼성화재, 현대캐피탈까지 내리 무릎을 꿇게 만들었다. 그중에서도 1승30패라는 치욕스런 불명예 기록을 갖게 한 현대전에서의 승리는 LIG 선수들에게 무한 자신감을 고취시켰다.
“현대전은 우리가 1라운드 전승으로 가느냐, 이 기세가 꺾이느냐를 가리는 중요한 경기였어요. 유독 시합 전에 감독님께서 1승30패를 많이 강조하시더라고요. 팔라스카 있을 때 한 번 이겨보곤, 계속 지기만 했다면서요. 대한항공, 삼성화재를 이기는 것도 기분 좋았지만 ‘천적’으로 불리는 현대를 제압한 게 정말 짜릿했습니다. 이렇게 많이 이겨본 게 처음이라 신기하기도 하고(웃음), 역시 경기는 이기는 게 최고의 기쁨이란 사실도 새삼 절감하고 있습니다.”
LIG와 계약금 문제로 프로 입단을 거부하는 등 프로 데뷔 직전에 적잖은 마음 고생을 겪은 김요한은 주위의 넘쳐나는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섣불리 몸을 만들려다 부상까지 당하고 말았다. 프로 입단 전에는 신인왕 영순위에 꼽혔지만 실제 프로 유니폼을 입은 그는 코트보다 벤치를 달구고 있는 일이 훨씬 많았다.
“그땐 정말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죠. 뛰지도 않는 선수가 중계 화면에 더 자주 비치는 거예요. 이슈와 화제를 중요시하는 매스컴의 속성을 이해는 하면서도, 실력이 아닌 외모나 인기를 앞세우는 방송이나 언론의 반응에 많이 속상했어요. 신인인 데다 별로 잘 하는 것도 없는 선수가 여기저기서 인터뷰 요청을 받고 그러는 모습이 선배들 보기엔 얼마나 이상하겠어요? 그러다보니 거품 논란도 벌어졌고, 운동보다는 사생활에 더 신경을 쓴다는 등 이상한 소문도 나돌았죠.”
코트에서 ‘반쪽짜리’에 머물던 김요한이 크게 놀란 일이 있었다. 당시 사귀고 있던 신인 연기자 장 아무개와의 열애설이 스포츠 신문 1면에 나온 것.
“아무리 배구를 잘해도 신문 1면에 나오기가 힘든 일이잖아요. 그런데 제 열애설이 1면에 실리더라고요. 신기하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하고…. 그 후론 저에 대한 관심이 배구보단 열애 쪽에 모아졌어요. 여자친구가 경기장에 나타나면 어김없이 다음날 신문에 사진이 나왔죠. 많이 부담스러웠습니다.”
김요한은 지난해 그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대학 2학년 때 처음 만나 사귀기 시작해서 4년간 교제하다가 결국 각자의 길로 돌아서게 된 것. 헤어진 이유를 물었다.
“대부분의 운동선수라면 저랑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을 거예요. 여자친구랑 자주 만날 수가 없잖아요. 특히 시즌 때는 연락하기도 쉽지 않고, 경기장에 얼굴 보러 와도 잠깐 눈만 마주칠 뿐 얘기조차 나눌 수 없거든요. 그러다보면 사소한 다툼이 생기고, 그 다툼이 쌓이다보면 결국 헤어지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아요. 운동도 어렵지만 이성을 만나는 것도 어려운 일이더라고요.”
팔라스카, 카이, 그리고 피라타…. 모두 김요한과 인연을 맺은 용병들이다. 그 용병들에 대한 김요한의 느낌표를 들어봤다.
“팔라스카는 정말 배구 잘하는 선수였어요. 하지만 한국 배구와는 잘 맞지 않은 듯했죠. 파워도 최강이었고 강서브를 구사했고요, 스피드도 좋았는데 선수들과의 호흡에 문제가 있었어요. 카이는 정말 키가 컸죠(웃음)? 농구를 포함해서 가장 장신의 선수였을 걸요? 214cm였으니까요. 그런데 키가 커서 그런지 몸이 느리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전 지금의 피라타랑 제일 잘 맞는 것 같아요. 다른 팀 선수들이 밖에서 보면 저랑 피라타랑 잘 구분이 안 간대요. 우리 팀은 용병이 두 명이나 뛴다면서요 (웃음).”
한창 용병 얘기를 하던 김요한이 절친한 친구이자 ‘천적’ 현대캐피탈의 공격을 책임지고 있는 박철우에 대해 언급했다.
“블로킹할 때 가장 부담스런 선수가 철우예요. (권)영민이 형의 백토스는 정말 일품이거든요. 백토스가 빠르면 타점 잡기가 훨씬 좋은데 거기에 철우가 워낙 스피드가 있으니까 철우가 때린 공은 어지간해선 막기가 힘들어요. 아무리 친구 사이라고 해도 잘 안 봐주던데요(웃음).”
김요한은 대학 시절, 함께 해외 진출을 도모했던 문성민이 독일을 거쳐 지금은 터키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는 모습을 통해 종종 자극을 받는다고 말하면서 “축구에 박지성 선수가 있다면, 배구에는 문성민이 있다는 걸 해외에 알렸으면 좋겠어요”라고 문성민에게 응원을 보냈다. 그렇다면 김요한은 해외 진출에 대한 꿈을 포기한 걸까.
“지금은 일단 국내에서 최고가 되는 게 중요해요. 팀 우승도 이루고 싶고, 그 속에서 주역으로 뛰고 싶고요. 한국에서 최고로 배구 잘하는 선수가 돼야 외국에 나가서도 더 인정을 받는 거 아닐까요? 당분간은 해외 진출은 염두에 두지 않으려고 합니다.”
현재 포지션이 레프트지만 워낙 라이트에 출중한 실력을 겸비하고 있기 때문에 용병들이 제 몫을 못해줄 때 김요한은 라이트에서 뛰기도 한다.
“라이트는 며칠만 연습하면 금세 그 자리에 적응할 수 있거든요. 하지만 라이트를 전문으로 하는 선수는 죽었다 깨어나도 레프트를 볼 수가 없어요. 먼 미래를 봤을 때는 지금 힘들더라도 레프트에서만 뛰고 싶어요. 그런데 가끔 감독님께서 절 라이트에 내보내세요. 제가 살려면 피라타가 잘해야 해요^^.”
운동 잘하고 얼굴까지 잘생긴 선수들한테는 미확인 소문들이 따라 붙기 마련이다. 그중에서 한 가지가 ‘건방지다’는 것. 김요한도 그 소문의 당사자였다. 이전에는 그런 소문들에 감정적으로 대응했지만 이젠 그도 프로 데뷔 후 세 번째 시즌을 맞이하다보니 요령이 생겼다. “제가 건방지면 (문)성민이는 더 심한 말을 들어야 해요. 저보다 성민이가 더 잘생겼잖아요. 하하”
김요한은
출생 1985년 8월 16일 신체 키 200cm 몸무게 95kg 혈액형 AB형 소속 LIG손해보험 그레이터스 포지션 레프트 서전트점프 80cm 출신고 광주 전자고-인하대 데뷔 2007년 LIG손해보험 그레이터스 입단 수상 2009년 제15회 아시아선수권대회 득점왕상, 서브상, 인기상
배구계의 F4를 아시나요
우리도 F4 같죠 ㅋㅋ
▲ 배구계의 ‘은밀한 사조직’ E4. 왼쪽부터 황동일 한선수 김요한 박철우(합성사진). | ||
휴가 때도 시간이 날 때는 강남 등지에서 모임을 갖기도 하는데 워낙 장신들이다보니 쉽게 눈에 띄는 게 남다른 애로사항이다. 김요한은 3명의 ‘조직원’들에 대해 나름 개인적인 평가를 내렸다.
“철우 별명이 ‘땡칠이’다. 그런데 철우가 나더러 ‘치와와’라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땡칠이’보다는 ‘치와와’가 족보도 있고 훨씬 비싼 몸이라고 했더니 철우 하는 말이, ‘맛은 치와와보다 땡칠이가 훨씬 낫다’라고 했다. 여자친구가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철우는 잘 놀 줄 모른다. 선수는 나랑 가장 잘 통하는 친구인데 워낙 ‘깐죽’거려서 내가 ‘깐죽이’라고 부른다. 가끔은 ‘선수’라는 이름 대신 ‘산수’로 부른다. ‘탄산수’를 줄여서 말이다(웃음). 동일이 별명은 잘 알지 않나. 문성민이랑 함께 ‘문똘, 황똘’로 불렸다. 별명 그대로다. 실제 모습도.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